신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정책 시사
대규모 추진 원전·석탄 취소 불가피 '에너지정책 대전환'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부산 기장 한수원 고리원전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탈핵, 탈석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시사했다. ⓒ산업부

[이투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시사했다. 원자력과 석탄화력을 근간으로 한 가격 및 효율성 위주 정책을 안전과 환경(건강)을 우선 고려하는 정책으로,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를 고효율 산업구조로 각각 바꿔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피력했다. 이 과정에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하고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수명연장도 불허하기로 했다. 석탄화력 역시 신규 건설을 중단하면서 점차 비중을 줄여나가되 대안으로 LNG발전과 신재생에너지는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19일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선포식 기념사에서 새 정부의 탈핵·탈석탄 정책기조를 재확인시켰다. 예상보다 메시지는 단호했다. 특히 원전 안전에 대해선 "나라의 존망이 걸린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탈핵국가로 가는 출발이며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라며 "오늘을 기점으로 에너지정책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모아 나가자"고 운을 뗐다. 이어 가격과 효율성을 중시하던 그간의 에너지정책을 '개발도상국 시기의 에너지정책'으로 규정한 뒤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국민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하는 청정에너지 시대, 이것이 우리 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역설했다.

에너지정책 전환의 첫 단추는 점진적 원전 비중 축소, 이른바 '탈핵(脫核)'이 될 것임을 주지했다. 정부나 원전 당국이 금기 시하던 '탈핵'이란 용어를 대통령이 직접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경주 대지진으로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추정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한 뒤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선진국은 빠르게 원전을 줄이며 탈핵을 선언했지만 우리는 핵 발전소를 늘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약속드렸다. 이는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굳은 약속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승격하고, 원전 정책도 전면 재검토하겠다.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공언했다. 원전 비중 축소 방안에 대해선, 구체적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기존 계획 원전은 백지화 하고,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은 원천 금지하며, 건설 중 원전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른 시일내 결론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2022년과 2023년 준공 계획인 신한울 3,4호기와 2026~2027년 계획인 천지 1,2호기(영덕) 및 신규 원전 1,2호기(영덕 또는 삼척) 등 6기는 건설이 백지화 되고,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1기의 수명연장(계속운전. 고리 1호기 제외)도 어렵게 된다. 문 대통령은 "준비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 설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 수명을 연장해 가동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면서 "건설중인 신고리 5,6호기는 비용과 보상,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탈원전을 둘러싼 일각의 전력수급 및 비용 상승우려에 대해선 각각 '수십년이 더 걸릴 문제'이자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탈원전을 시작해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앞으로 수십년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라며 "저의 탈핵, 탈원전 정책은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국민들께서 안심할 수 있는 탈핵 로드맵을 빠른 시일내 마련하겠다"고 안심시켰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자정 영구정지한 고리 원전 1호기 앞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원전과 함께 석탄화력 비중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그 공백을 LNG와 신재생에너지로 채워나가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과 함께 미래에너지 시대를 열겠다면서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을 비롯한 청정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도록 하겠다. 원전과 함께 석탄화력 발전을 줄이고 천연가스 발전설비 가동률을 늘려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석탄화력 신규 건설 전면 중단, 노후 석탄화력 10기 임기내 폐쇄 완료를 재확인했다. 신규 석탄건설 중단이 거론된 만큼, 미착공 석탄화력으로 분류되는 고성하이, 강릉안인,삼척화력(포스파워), 당진에코파워 등의 신규 건설프로젝트도 전면 재검토될 공산이 커졌다.

에너지 세제와 산업용 전기요금 체제개편도 기정사실화 했다. 문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 세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에너지 고소비(다소비) 산업구조도 효율적으로 바꾸겠다"면서 "산업용 전기료를 재편해 산업부분에서의 전력 과소비를 방지하되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중소기업은 지원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또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을 위해 동남권에 관련 연구소가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국가 에너지정책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이번 정책방향 제시로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또 한번 큰 틀의 방향전환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불투명한 영역에 있던 신규 계획원전과 설계수명 만료 원전, 신규 석탄화력 등의 이정표가 분명히 세워짐에 따라 정부와 전력당국 차원의 관련 후속 정책 수립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정책 대전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분명히 가야할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를 계기로 원전 안전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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