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새 정부가 들어섰다. 선거 공약에 따르면 새 정부는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세먼지 배출량 30%를 줄이기 위해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미착공 석탄화력발전소 신설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취임 후 이러한 전망은 에너지정책의 변화로 눈에 띄게 감지된다. 대통령 업무지시 제3호로 6월 한 달 동안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놓고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공사가 29% 정도 진행되어서 이제 건설을 중단하게 되면 엄청난 보상금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바빠서 빨리 가야하는데 교통체증으로 길이 꽉 막히면 참 답답하다. 멀리 있는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는데 왜 차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는가? 한 차가 떠나고 그 다음 차가 떠나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줄이 길수록 그 신호를 받아서 내 앞의 차가 움직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긴 줄을 선 자동차가 출발하기까지 오래 걸리듯이 에너지산업에서는 변화가 천천히 나타난다.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왜 그럴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의 탐사, 개발, 생산, 가공, 수송, 저장, 소비  등에 엄청난 규모의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부문의 설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대규모 자본이 소요된다. 건설기간도 길다. 발전, 송전, 변전, 배전 인프라 외에도 천연가스를 액화하고 LNG 형태로 수송하며 이를 다시 저장하고 기화하여 파이프라인으로 배달하는 모든 설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이러한 사정은 석탄, 석유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큰돈이 들어가는 설비를 건설해야 하므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결국 금융, 건설, 운반, 운영 등 설비의 건설과 조업 그리고 이를 위한 자금의 조달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장기계약이 필수적이다. 단기간에 바꾸려고 해도 쉽게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LNG 도입계약, 발전소와 전력 판매사업자간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기간은 적어도 20∼30년이다. 원전을 건설하는 데에도 10년 이상 걸리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도 최소 7∼8년은 잡아야 한다. 모든 것이 장기적으로 계획되어 건설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에너지 설비의 건설을 멈출 수 없고 돌아가는 설비도 중단하기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에너지산업은 트랜드에 민감한 정보통신산업이나 고정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서비스산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9 개월 만에 갤럭시노트를 만들어냈다. 반도체산업에서는 18 개월 만에 집적도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Moor’s Law)이 지배한다. 오늘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 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고 새로 문을 연다. 그러나 이 같은 순발력과 기동력을 에너지산업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자동차 크기가 다르면 운전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대형버스나 트레일러를 운전할 때에는 멈추고 회전할 때 충분한 제동거리를 확보해야 하고 속도를 크게 낮춰야 한다. 급정거는 매우 위험하고 급출발은 거의 불가능하다. 방향전환을 할 때에도 급회전은 안 된다. 

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에너지산업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와 같이 지나치게 건설기간이 길고 경직적인 설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원구성은 바꾸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올해 발표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부터 설비 중심이 아닌 연료중심의 계획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현재 건설 중인 설비를 취소하고 전원구성을 급격히 바꾸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른다. 일련의 로드맵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설비계획이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계획은 미래의 결정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현재 내린 결정의 미래를 다루는 것이다.(Long-range planning does not deal with the future decisions, but with the future of present decisions.)”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명언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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