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RE100산단, 정공법은 시장과 가격
[이투뉴스] 새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RE100 산업단지를 어떻게 구현할 지 정부 공무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파격적인 전기료 할인혜택도 검토하라"는 '깨알 지시'까지 내렸다. (이달 10일 수석보좌관 회의) 범부처 합동 태스크포스팀(TF)이 청사진을 만들고, 국회와 연내 특별법까지 제정할 태세다.
RE100 산단은 개념상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산단을 말한다. 일단 공급이 충분해야 하니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입지는 제한적일 것이다. 정부는 RE100 산단을 '규제제로' 지역으로 지정해 기업의 활동제약을 없애고 교육과 정주 지원 등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무역규제로 바뀐 RE100 캠페인을 저렴한 전기료로 대응할 수 있다니, 이론적으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관건은 어떻게 '파격적인 전기료'를 만들 것인가이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정공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원가를 낮추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단가(LCOE)는 아직 해외 대비 비싸다. 부지, 금융, 인허가, 전력망 접속, 각종 규제, 설비·기자재 등에 투입되는 비용이 더 많다. 전 세계 3분의 2 이상의 국가는 2023년부터 화석연료보다 저렴한 재생에너지 LCOE 혜택을 누리고 있다. 전력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어떤 비효율이 원가를 높이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
하지만 매번 정부는 시장·구조혁신 같은 정공법 대신 임기응변책을 동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려하게 등장해 슬그머니 종적을 감춘 에너지정책사업들에 기록이 남아있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구역전기사업, 에너지신산업과 에너지자립섬 프로젝트, 그린뉴딜, 최근의 분산에너지특구까지 이름은 달라도 경로는 유사하다. 산업구조는 그대로 둔 채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으로 보조금을 얹어주고, 지자체와 기업들은 잔칫상을 해치우는데 급급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RE100 산단도 그렇게 흘러가지 말란 법이 없다. 당장은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일치에 따른 유통비용(송전비용) 감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한 투자융자 지원 등을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정공법은 시장과 가격이다. 수도권 소비자나 기업은 제값을 지불하고, 지방공급자와 소비자는 기여도와 희생만큼의 보상을 받는 지역별요금제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발전소가 몰린 곳으로 수요(기업)를 유치하는 건, 수요가 있는 곳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보다 갑절은 어렵다. 어디든 공짜 점심은 없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