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혁신] HVDC로 경제적인 전력망 유연성 확보 가능
에너지고속도로 정의와 조건, 구현에 관한 제언 글. 김찬기 한전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 (처장)
[이투뉴스/김찬기]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자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고속도로라고 하니 대부분은 국토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초고압송전선로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7월 말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로 가는 뻥 뚫린 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첨단 전력망"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송전망 건설·운영을 맡고 있는 한전은 전력수급계획과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라 호남~충남~수도권을 잇는 교류망(AC)과 직류망(HVDC)을 건설하고 있다. 도대체 대통령실의 에너지고속도로와 한전이 깔고 있는 대규모 송전망은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 걸까? 에너지고속도로가 첨단 전력망으로 기능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HVDC 분야 최고권위자인 김찬기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의 견해와 제안을 들어봤다.
첫 경쟁서 직류를 누른 교류…중앙집중망은 단점도
전력망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에디슨의 DC(직류) 분산망(지역별로 DC망을 구성해 공급과 수요를 일치시키는 방식)과 테슬라의 AC(교류) 중앙집중망(수력발전을 교류로 장거리 전송해 도시로 공급하는 방식, 공급과 수요 분리)이 경쟁했다. 그러나 경제성과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 AC 중앙집중망이 선택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AC 중앙집중망은 대형발전기와 대규모 전력망을 통해 경제성과 신뢰성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대형화 된 교류 전력망은 운영이 어렵고, 한번 고장이 발생하면 복구가 어려우며, 대형 정전으로 이어지는 단점이 있다. 또 간헐성과 변동성을 가진 재생에너지의 수용에는 막대한 기술적·경제적 비용이 들고, 기존 대형 발전기와의 동시 운전도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그리드와 마이크로그리드와 같은 지능화·분산화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교류 전력망의 낮은 응답성과 전압안정도, 과도안정도 같은 본질적 특성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HVDC(직류송전 : PTP, BTB, MTDC, MVDC, DC Router)가 교류 전력망에 도입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DC 전력망은 기존의 대형 발전기 위주의 중앙집중식 전력망과 분산형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 유연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전력망의 구현이 가능하다.
송전망과 배전망
전력망은 송전망(Transmission Network)과 배전망(Distribution Network)으로 나뉜다. 송전망은 대규모 에너지를 장거리 송전하는 역할을 하기에 3상 전원으로 구성되고, 전압 변동률은 낮으면서 신뢰성과 안정성은 높으며, 고장 시 신속히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배전망은 최종 수용가와 직접 연결되며, 3상이나 2상 또는 단상 부하로 구성되기에 전압의 불평형과 고조파 함유율이 높고, 전력망의 구조가 방사형(Radial)이어서 전압 변동률이 크고 신뢰도가 낮기에 송전망과는 다른 형태의 DC 전력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주입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풍력단지처럼 대규모 재생에너지는 송전망에 연결하고, 양수발전이나 ESS와 결합해서 HVDC로 연계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반면 소규모 재생에너지는 배전망에 연결하며, 경제성을 위해서 부하와 소비를 직접 일치시키거나 BTB Router(아래 설명 참조)를 이용해 배전망 네트워크를 환상망(병렬구조)으로 재구성하여 전력망의 이용률과 신뢰도를 높인다. 혹은 별도의 DC망으로 재생에너지를 모아 계통에 주입하는 방식이 경제적이다.
HVDC의 특징과 장점
HVDC 시스템은 전력의 흐름을 원하는대로 쉽게 제어할 수 있고, 전력망을 부작용 없이 마이크로그리드처럼 작게 분리하거나 슈퍼그리드와 같이 대규모로 확장시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교류 전력망에서 문제가 되었던 안정도나 전력의 병목현상을 원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존 전력망의 송전능력을 최대 2배까지 확대할 수 있다. HVDC 시스템은 인위적으로 전력망의 구성을 바꿀 수 있으므로 최소비용으로 전력망을 최적의 전력제어, 손실 최소화, 안정도 극대화 그리고 고장 최소화를 구현할 수 있다.
[그림 1]은 기존의 교류 전력망과 전력망 사이에 DC 전력망(컨버터+DC+컨버터)을 설치해 전력망을 분리 혹은 합성할 수 있는 개념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림 2]는 전력망에 HVDC를 이용하면 교류 전력망의 송전능력을 최대 2배까지 늘리고, 교류 전력망의 병목현상이나 안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력망 신호등’과 ‘전력망 인터체인지’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고속도로의 정의
에너지고속도로는 단순히 지방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전송하는 HVDC나 765kV 송전선 건설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HVDC를 이용해 최소 비용으로 전력망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전력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 3]은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한 구체적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3] a)는 한국의 전력망이 전력의 공급과 수요관점에서 서로 분리된 클러스터(Cluster)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분리된 전력망의 클러스터를 서로 연결하고, 너무 거대해진 클러스터는 운영이 쉬운 형태로 작게 나누면서 필요에 따라 새로운 클러스터를 만들어가는 전력망을 미래의 전력망, 즉 에너지고속도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첫 번째, 서해안 대용량 재생에너지를 HVDC를 이용해 간헐성과 변동성을 자체 흡수하면서 기존 전력망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계통에 연계하는 방법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두 번째, 수도권·경남·호남권에 BTB HVDC를 이용해 분리된 전력망을 통합하면서 양수발전이나 ESS 혹은 열에너지나 가스에너지와 결합해서 전력망에 유연성을 줄 수도 있다. 세 번째로, BTB MTDC를 통신 Router나 전력망 신호등, 혹은 전력망 인터체인지와 같은 형태로 활용해서 디지털화된 스마트그리드와 지능화된 마이크로그리드와 결합하고, 필요에 따라 망을 변화시켜 재생에너지 수용성을 높이거나 대형 원전의 출력감발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다.
즉, 에너지고속도로는 전력망의 하드웨어적 유연성과 지능화를 통해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개념이다. [그림 3] b)는 에너지고속도로의 실제적인 적용을 보여주고 있다. 전력망을 합성하고, 분리하고, 열에너지 및 가스와도 결합시키면서 기존망의 이용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나타내고 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미래 전력망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담고 있어야 한다. 전력망의 하드웨어적인 유연성이 확보되면, 대규모 재생에너지 추가 수용과 기존 원전의 활용성도 높일 수 있게 된다. 또 전력망이 디지털 및 통신과 쉽게 결합할 수 있고, 전기와 열, 그리고 가스 등을 통합하는 궁극의 에너지혁명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글. 김찬기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 chankikim@kepco.co.kr
[BTB Router] : 전력망에서 통신용 라우터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러 개의 입출력 포트를 가진 DC 컨버터가 송전망이나 배전망에 위치하면서, 선로를 서로 연결하거나 차단하면서 전력망을 재구성하게 하는 컨버터이다. [그림 2] b) 참조, ‘전력망 신호등’이나 ‘전력망 인터체인지’로 비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