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다소비기업, 직접구매 이어 자가발전으로 이탈
설비량 2028년까지 7260MW로 증가 예상 제련·반도체·철강·화학 등 앞다퉈 신규 건설
[이투뉴스] 전력다소비 대기업들이 도매시장에서의 전력 직접구매에 이어 자가발전소 건설을 통한 전력시장 이탈을 도모하고 있다. 제조업 전반의 공급과잉과 수요침체로 경영환경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잇단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자가발전을 통한 전력 자급자족이 비용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전기사업법과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르면 자가발전은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무관하게 건설이 가능한데다 자가소비분을 제외한 잉여분을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또 정부로부터 까다로운 진입규제와 용량규제를 받는 발전사업자와 달리 의향만으로 건설·폐지가 가능해 전력다소비기업들의 규제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이투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작년말 기준 500kW이상 국내 상용자가발전기 설비용량은 6597MW로 2023년 대비 6.7% 증가했고, 같은기간 발전량은 3만9156GWh(기가와트시)로 1년 새 13.7% 늘었다. 지난해 국내 전체 발전량의 6.2%에 해당하는 적지않은 양이다. 69개사가 모두 131기의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업종별 설비용량은 철강이 전체의 67.1%를 차지하는 가운데 기계 17.4%, 비철금속 4.7%, 석유화학 4.0%, 정유공장 2.8% 등 제조업 비중의 98.4%에 달했고, 사용연료별 용량은 부생가스 23기 3274MW, LNG 41기 2392MW, 화학공정열 21기 590MW, 정제가스 9기 202MW, 폐기물 24기 48MW, 바이오에너지 5기 40MW, 석탄3기 29MW 순으로 집계됐다.
설비량과 발전량은 최근 7년간 꾸준한 증가세다. 2018년 3821MW(2만2258GWh)에서 2020년 4464MW(2만6418GWh), 2023년 6184MW(3만4437GWh) 순으로 늘어났고,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오는 2028년 설비량은 7260MW, 발전량은 4만GWh를 각각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다만 자가발전은 전력계획에 신규설비로 반영해야 하는 기존 발전사업과 달리 환경영향평가나 공사계획인가 등만 받으면 건설이 가능해 당국의 규제나 총량관리에서 자유롭다. 정부도 기업을 상대로 한 개별조사로 물량만 파악할 뿐 진입·폐지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한 당국자는 "전기본과 별도여서 우리도 행정절차가 진행된 뒤에나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가발전소 건설은 전력사용량이 많은 대기업이 해외 직수입LNG나 가스공사의 저렴한 개별요금제 연료를 조달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고려아연이 2022년부터 온산제련소에서 237MW 가스발전기를 운영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2023년과 지난해부터 이천과 청주 반도체 공장에서 각각 567MW, 579MW 대형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후속 건설 예정 발전소도 적지 않다. 에쓰오일은 울산공장과 샤힌 프로젝트에 각각 120~150MW 안팎의 가스발전기를 설치할 계획이고, 현대제철은 2028년까지 당진제철소 전기로 전력용으로 500MW급 자가발전소를 지을 예정이다. 전력직접구매도 추진 중인 LG화학은 직수입 가스로 100MW급 자가발전소를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변수는 LNG가격과 전기료다. 지금은 연료가격이 저렴하지만 수요가 늘거나 에너지 수급위기 시 언제든 발전원가가 상승할 수 있고, 산업용 전기료의 경우 다른 종별 대비 과도한 인상으로 직접구매제나 자가발전을 이용한 한전이탈이 가속화 되면서 하향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전력 유관기관 관계자는 "산업용이 비싸다보니 기업들이 빨리 짓고 당장 싸게 쓸 수 있는 가스 자가발전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자급자족이 우선이라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총량에 잡히지 않는데다 탄소배출도 전력이 아닌 산업부문으로 잡혀 통계에서 빠지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전기본 규제를 받는 발전사들은 자가발전이 기업의 또다른 체리피킹 선택지가 되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신규 가스발전사업과 집단에너지사업은 용량시장에 편입돼 총량규제를 받고 있고, 이 경매시장에 구역전기사업을 추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저렴한 한전 산업용 혜택을 누리다 이탈하려는 기업 입장에선 자가발전이 유용한 우회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자가발전기가 우후죽순 들어오면 전력수급계획 수립 때 전망한 예비율에 따라 건설한 발전기들이 불필요해질 수 있고, 결국 수급계획도 엉망진창이 된다"면서 "12차 전기본부터는 사전에 건설의향을 정확히 조사하고, 기업 유·불리에 따라 어떠한 제재도 없이 직접구매제나 자가발전으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