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 열(熱)을 외면한 탄소중립은 공허하다

홍희기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전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2025-11-10     채제용 기자

[이투뉴스] 정부는 최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고 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공단 등 핵심 기관이 산하로 편입되면서 탄소중립 이행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열에너지 부문의 탈탄소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얼마 전 공개된 내년도 에기평 기획대상주제 122개 목록에 열에너지 관련 항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정부가 강조하는 열에너지의 중요성과 실제 정책 자금 배분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는 아직 정책 현장에 닿지 못한 셈이다.

국내 신재생열에너지는 이미 15년 전부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당시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는 이른바 '일몰 선언'과 함께 태양열, 지열 등 열에너지 분야는 보급 지원과 R&D 예산에서 급격히 소외됐다.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태양광, 풍력 등 전력 생산에만 집중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는 국가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열에너지 소비가 전기에너지보다 약 두 배 많은 구조를 유지해왔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열 부문의 탈탄소화 없이는 탄소중립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최근 미활용 에너지 발굴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논의되는 미활용 에너지의 대부분은 폐열, 수열, 하수열 등 냉난방용 열에너지다. 정부는 버려지는 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수십 년간 축적된 태양열, 지열 등 검증된 재생열 기술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미활용 에너지 활용에 필수적인 히트펌프 보급에는 힘쓰면서, 정작 그 토대가 되는 재생열 기술 개발과 보급은 외면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엄청난 국고를 투입해 세계적 수준에 오른 국내 기술들은 이미 탄소중립 시대의 확실한 해결사들이다. PVT 복합열원 히트펌프 시스템은 전력과 열을 동시에 생산하고 고효율 냉난방에 활용하는 융복합 기술이다. 데시컨트 제습 시스템은 제습에 필요한 전기를 열로 대체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 열회수환기장치(ERV)는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핵심기술이다. 이들 기술은 단순히 실험실 수준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성숙기술들이다.

검증되고 상용화 단계에 이른 이들 기술을 정책적으로 홀대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와 기술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이다. 신규 R&D 과제 발굴도 중요하지만, 지열, 태양열 등 검증된 재생열 기술과 PVT, 데시컨트 제습, ERV 같은 상용화 단계 국내 기술의 보급 및 활성화가 훨씬 시급하다. 정책 자금과 보급 제도가 검증된 기술을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로드맵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정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말로만 열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과감한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에기평의 기획대상주제 선정 과정에서 열에너지 분야를 배제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둘째,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에 걸맞은 R&D 예산 및 정책 자금배분을 시행해야 한다. 

셋째, PVT, 데시컨트 제습, ERV, 태양열 및 지열 히트펌프 등 검증된 기술의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전력 중심의 RPS(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와는 별도로 건물 및 산업 부문의 열 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RHO(재생열에너지 의무공급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