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통계청
(대전=뉴스와이어) 2006년08월14일-- 통계로 본 8.15광복 이후 경제ㆍ사회 변화상

1. 국토 및 인구

국토면적‘49년에 비해 6.4% 늘어나

o 국토면적은 1949년 당시 9만3,634㎢였으나 간척사업 등을 통해 국토면적이 확장되어 2005년에는 9만9,646㎢로 6.4% 증가.

- 농경지면적은 1960년대 후반까지 증가하였으나 점차 감소하여 현재는 1950년대 수준임.

- 대지면적은 2,533㎢로 전체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1960년 1,205㎢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였음.

총인구‘49년에 비해 2.4배 증가

o 총인구는 1949년 2,018만9천명에서 1967년에 3천만, 1984년에 4천만을 넘어섰으며 2005년에는 4,829만4천명으로 1949년에 비해 약 2.4배가 증가.

o 65세 이상 노년인구비율은 1955년 3.3%에서 2005년 9.1%로 3배 가까이 높아진 반면, 유소년은 41.2%에서 19.1%로 절반이하로 떨어져 고령화 및 저출산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

o 15세 미만 유년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노년인구의 비율인 노령화 지수는 1955년 8.0%에서 2005년 47.4%로 5.9배 높아졌으며, 15~64세 연령층이 65세 이상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노년부양비도 6.0%에서 12.6%로 2배 이상 높아짐.

o 가구는 1955년 379만1천가구에서 2005년 1,588만7천가구로 4.2배로 늘어났으나, 평균가구원수는 5.5명에서 2.9명으로 가구당 2.6명이 줄어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음.

2. 취업ㆍ가계ㆍ물가

취업자 중 여성의 비중 증가 추세

o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인하여 여성의 취업자 구성비는 1963년 34.8%에서 2005년 41.7%로 6.9%p 증가한 반면 남성은 65.2%에서 58.3%로 6.9%p 감소.

o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에 따른 산업의 고도성장 및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산업별 취업자의 구성비가 크게 변하였음.

- 1963년에 농림어업 63.0%, 광공업부문 8.7%,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 28.3%로 후진 농업국 형태의 취업구조에서 2005년에는 7.9%, 18.6%, 73.5%로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비중이 크게 높아져 불과 30~40년 만에 선진국 형태의 취업구조로 변하였음.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지출 중 여가 및 교육비의 비중 크게 늘어

o 2005년 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소득은 325만원으로 1963년에 비해 543배가 증가하였으며, 소득증가와 더불어 생활의 질이 크게 향상.

- 1963년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소득은 5,990원, 가계지출은 6,330원으로 소득을 5.7% 초과하였으며, 그 중 식료품비가 61.3%로 소비지출의 2/3정도를 차지.

- 소득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26.6%로 1963년에 비해 절반 이상 낮아졌으며, 식료품비 중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7.5%에서 2005년에는 48.5%로 증가.

- 교육비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여 1963년 4.8%에서 2005년 11.6%로 증가하였으며, 자가용 승용차, 이동전화 및 인터넷의 빠른 보급 등으로 교양오락 및 교통ㆍ통신비 비중이 1963년 3.3%에서 2005년 22.4%로 7배 정도 증가.

‘65년 1만원이 2005년에는 351원으로 화폐가치 크게 하락

o 1965년에 비해 소비자물가는 28.5배, 생산자 물가는 16.6배 상승.

-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965년 당시 1만원의 화폐가치는 2005년 현재 소비자물가로는 351원, 생산자물가로는 601원으로 하락.

- 상품가치로 환산하면 1965년 당시 1만원 가치의 상품을 2005년 소비자물가 기준의 상품가치로 환산하면 약 28만원 가치의 상품에 해당.

3. 국민계정ㆍ증권

1인당 국민소득은‘53년 67달러에서 2005년 16,291달러로 243배 증가

o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13억달러에서 1972년에 100억달러대, 1986년에 1,000억달러대, 1995년에 5,000억달러대를 돌파하여 2005년 현재 7,875억달러로 1953년에 비해 605.8배 증가.

o 1인당 국민소득(GNI)은 1953년 67달러에서 1977년에 1천달러대, 1989년에 5천달러대, 1995년에 1만달러대를 돌파하여 2005년 현재 1만6,291달러로 243배 증가.

종합주가지수 1,500p 눈앞에

o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1963년 100억원에서 2005년 665조750억원으로 약 66,508배 증가.

o 주식거래량은 1970년 7천9백만주에서 2005년 1,164억4천만주로 1,474배 증가.

o 연평균 주가지수는 1980년 108.9p에서 2005년 1,073.6p로 964.7p가 상승, 연말 주가지수는 1980년말 106.9p에서 2005년말 1,379.4p로 마감되어 종합주가지수 1,500p시대를 바라봄.

4. 농ㆍ수산업

2004년 농가인구는‘49년의 절반 수준

o 농가수는 1949년 247만4천호에서 1970년대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여 2004년에는 124만호로 1949년의 50% 수준까지 감소.

o 농가인구는 2004년 341만5천명(총인구대비 7.1%)으로 1949년 1,441만6천명(총인구대비 71.4%)의 24% 수준이며, 농가당 인구는 2004년 2.8명으로 1949년 5.8명보다 3명이 감소.

o 2004년 농촌인구의 연령계층별구조를 보면 유소년인구의 비율은 10.3%로 1970년 45.2%에 비해 1/4수준으로 감소하였으나, 노년인구 비율은 29.4%로 1970년의 4.9%에 비해 6배 수준으로 증가하여 농촌인구 3명 중 1명은 65세이상 노년인구.

경지면적은‘49년에 비해 11.2% 감소, 농가 호당 경지면적은 1.7배로 증가

o 경지면적은 1969년까지는 계속 증가하여 231만ha에 이르렀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주택 및 공업용지 전용 등의 영향으로 2005년에는 182만4천ha로 1949년 대비 11.2% 감소.

o 농가 호당 경지면적은 1949년 83a의 1.7배인 143.3a로써 농가수의 감소로 경작규모가 크게 증가.

o 작물생산은 1970년대까지는 식량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서 식량작물 생산에 치중하였으나, 이후 국민소득의 증대와 식생활의 변화에 따른 식품소비행태의 변화로 점차 과수, 채소, 특용작물 등의 비중이 크게 증가.

어가인구는‘48년의 절반 수준, 어업생산량은 5.4배 증가

o 어가수는 1948년 17만1천호에서 어족자원 고갈과 간척사업, 환경오염에 의한 어장 감소, 이촌 등으로 계속 감소하여 2004년 7만2,500호로 57.6% 감소.

o 어가인구는 1948년 52만1천명에서 2004년 20만9,900명으로 59.7% 감소.

o 어업생산량은 1960년 47만M/T에서 2004년에는 251만9천M/T로 5.4배 증가.

5. 제조업

2004년 제조업부문 사업체수는‘55년 대비 13.2배, 종사자수는 12.7배 증가

o 제조업부문 사업체수는 1955년 8,600개에서 2004년 11만3,300개로 13.2배 증가.

o 제조업부문 종사자수는 1955년 22만1천명에서 2004년 279만8천명으로 약 50년간 12.7배로 증가.

- 특히 조립금속제품, 기계 및 장비제조업 종사자는 1955년 1만9천명에서 2004년 147만8천명으로 77배 증가.

- 섬유ㆍ의복 및 가죽제품제조업 종사자는 1955년 9만3천명에서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증가하였으나, 1980~9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면서 점차 감소하여 2004년 32만1천명으로 3.4배 증가하는데 그침.

철강,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이 주력산업으로

o 조강생산은 1962년에 13만M/T이었으나, 2005년 4,782만M/T으로 370여배 증가.

- 1968년 포항제철소의 탄생과 함께 세계적 철강 생산국이 되었으며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 등 산업 발전의 원동력 구실을 하고 있음.

o 자동차는 1962년 1,800대 생산에서 2005년 370만여대를 생산하여 2,060여배 증가하였으며 259만여대를 수출.

- 1975년 현대가 “포니”를 생산함으로써 세계 15번째 자동차생산국이 되었으며. 1985년에는 “포니엑셀”을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 1990년대 부터 고속성장을 거듭하여 2004년에는 세계 5위 생산국이 되었음.

o 선박은 1970년 1만2천GT 생산에서 2004년에는 1,260배 증가한 1,514만3천GT을 생산, 그 중 1,513만4천GT을 수출.

- 1973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탄생으로 세계적 조선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여 이후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세계적인 조선소들이 건립되었고, 1970년대 이후 세계경기의 호황으로 인한 선박의 수요증가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여 2002년에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이 되었음.

o 반도체는 1980년 생산 11억5천만달러에 수출 10억6천달러였으나, 2005년에는 생산 371억9천만달러, 수출299억9천만달러로 각각 32배, 28배 증가.

- 1980년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64KD램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반도체 국가로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1998년 1G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반도체 선두국가로 도약했으며 D램, SD램, 낸드플래쉬 등 메모리분야에서 10여년간 세계 선두를 유지.

6. 에너지

2004년 원유도입량은‘64년에 비해 142배, 원유도입 비용은 2,298배 증가

o 1964년 원유도입량은 약 584만Bbl, 원유도입 비용은 1,3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중화학공업 등 에너지 과소비적 산업구조와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등으로 원유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여 2004년에는 도입량 8억2,579만Bbl, 도입비용은 약 299억달러로 각각 142배, 2,298배로 증가.

o 에너지도입단가는 1964년 배럴당 2.2달러였으나 2004년 36.2달러로 상승 경제성장의 크나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급상승하여 1981년 35.51달러까지 도달한 이후 점차 하락하였음. 1990년 걸프전 등으로 다소 등락은 있었으나 하락 안정세를 유지했음. 그러나 1990년 후반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0년부터 고유가시대로 돌입 상승추세가 계속되고 있음.

1차에너지 소비는 석탄에서 석유, 가스와 원자력으로

o 1차에너지 총소비량(석유환산)은 1961년에 974만8천TOE였으나 2005년에는 2억2,933만3천TOE로 23.5배 증가하였으며, 1인당소비량은 0.38TOE에서 4.75TOE로 12.5배 증가.

o 에너지원별 구성비를 보면 1961년에는 석탄이 32.4%, 신탄 및 기타 57.8%로 석탄이나 땔나무 등이 주된 에너지원이었으나, 2005년 현재 석탄 23.9%, 석유 44.3%, LNG 13.1%, 원자력 16.0%로 석유, 가스 및 원자력의 비중이 크게 증대.

- 석유 및 가스의 소비가 급속히 늘고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경제성장의 부담요인이 되고 있으며, 대체에너지원으로써 원자력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

-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석탄 및 석유의 소비량은 1961년 약 395만TOE였으나 2005년 1억5,634만TOE로 39.6배 증가하였으며 1차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1년 40.5%에서 2005년 68.2%로 27.7%p 높아짐.

전력생산은‘48년의 525배, 1인당 전력소비량은‘60년의 150배

o 총발전량은 1948년 694GWh에서 2005년 36만4,639GWh로 525배 증가했으며,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5년 6,883KWh로 1960년 46KWh에 비해 150배 증가.

o 종류별로 보면 1948년에는 수력이 34.9%, 화력이 23.8%였으나, 2005년 현재 수력 1.4%, 화력 58.3%, 원자력 40.3%로 화력과 원자력이 주된 발전형태로 변하였음.

- 원자력 발전소는 1978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 울진원전6호기까지 총 20기의 원전이 가동되며 14만6,800GWh를 생산하여 총발전량의 40.3%를 차지하며 점차 비중이 증대.

7. 건설, 운수, 통신

주택 보급률은 102.2%, 건설 주택의 87.3%가 아파트

o 주택보급률은 1965년 81.3%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 감소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수도권 신도시 건설 등 아파트 건축이 크게 늘면서 점차 증가하여 현재는 주택보급률 100% 이상을 달성.

o 1980년 이전까지는 단독주택 건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아파트 건설이 주를 이루면서 2004년 현재 주택건설의 87.3%를 아파트가 차지.

o 주택에 대한 투자율도 1965년에는 GDP의 1.5%로 미미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크게 증가하여 4~5%대를 유지하고 있음.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건설과 함께 1990년 8.8%, 1991년 8.9%로 최고의 호황을 맞이하였으나, 이후 IMF체제 등 침체기를 거쳐 2004년 5.1%로 회복.

2005년 현재 10가구 중 9가구 이상이 자가용 보유

o 자동차 등록대수는 1955년 1만8천여대였으며 그 중 승용차는 7천여대에 불과하였으나 경제성장과 함께 빠르게 증가하여 1990년대 후반기에 1천만대 시대를 열었으며, 2005년에는 1,500만대 시대에 진입.

o 자가용은 1970년에는 100가구당 1대 가량 보유하였으나, 2005년에는 10가구 중 9가구이상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자가용 1,460만대 중 승용차는 1,080만대로 73.9%를 차지.

2004년 항공여객 운송은‘66년에 비해 국내선 98배, 국제선 206배 증가

o 항공여객 운송은 1966년에 국내선은 19만명, 국제선은 13만명이었으나, 2004년 국내선은 1,889만명, 국제선은 2,693만명으로 각각 98배, 206배로 증가.

o 화물운송은 대부분 해운운송을 통해 이루어지나, 항공기 이용 증가에 따라 항공운송량도 크게 증가.

- 1966년~2004년 해운화물 운송량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 국내선은 230만톤에서 1억1,560만톤으로, 국제선은 840만톤에서 7억4,360만톤으로 각각 50배와 88배 증가하였음. 이는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국내 물류 증가와 국제간 교역 확대로 인한 결과임.

- 항공화물 운송도 크게 증가하여 국내선은 1966년 1천톤 규모에서 2004년 41만톤으로, 국제선은 7천톤에서 257만톤으로 크게 증가.

2004년 현재 10명 중 7~8명이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

o 1949년 유선전화 가입자는 천명당 겨우 2명 정도였으나, 2004년에는 2명당 1명이 가입하였음. 특히 2000년대부터는 무선이동전화가 일반화되어 2004년 이동전화 가입자는 천명당 758명으로 성인이면 대부분 셀폰이나 PCS폰을 휴대.

o 우리나라의 인터넷서비스는 1982년 서울대학교와 구미의 KIET(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간의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을 시작으로 1994년 상용화 이후 전사회적 정보화혁명을 타고 인터넷 이용자와 시장규모가 급격히 증가하였음. 1999년에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되어 2004년 현재 천명당 235명이 가입.

8. 무역, 국제수지, 외환

수출 2천만달러에서 2,844억달러로, 1차산품 수출국에서 첨단제품 수출국으로

o 수출은 1948년 2천2백만달러에 불과하였으나, 2005년 현재 2,844억2천만달러로 무려 12,928배 증가.

- 1990년 이후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구조적 결함의 누적으로 IMF체제 등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경제 위기의 극복과 IT산업의 비약으로 2005년 무역수지는 232억달러 흑자를 거둠 .

o 1960년 수출상품 구조는 1차산품이 45.4%, 경공업제품이 45.4%로 노동집약적인 저가상품이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중화학제품의 비중이 증대되어 2005년에는 총수출액 중 89.6%가 자동차, 반도체, 선박, IT제품 등 중화학제품이며 그 중 IT제품의 비중이 2000년 39.5%, 2005년 32.4%에 이르는 등 첨단산업제품 수출국가로 변모.

세계교역의 변두리에서 중심국으로 부상

o 수출품목수는 1960년 712개에서 2005년 8,486개로 12배, 수입품목수는 1,439개 품목에서 10,014개로 7배 증가하였으며, 수출상대국은 59개국에서 227개국으로, 수입상대국은 50개국에서 222개국으로 증가하여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와 교역을 하고 있음.

o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에 수출 0.03%, 수입 0.27%였으나, 2005년 수출비중은 2.8%로 90배, 수입비중은 2.4%로 9배 높아져 세계 10위권의 교역 중심국으로 부상.

채무국에서 1천억달러 이상 채권국으로

o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도입과 원자재 및 기술도입 등으로 외채가 누적되었으며, IMF위기가 발생한 1997년 대외채무가 1,742억달러에 이르렀으나 1998년 이후 수출 호조로 무역 수지가 흑자를 이루면서 점차 감소. 그러나 2002년 이후 다시 증가하여 2005년 현재 1,900억달러에 이름.

o 대외순채무는 1997년까지 계속 증가하여 681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이후 점차 감소하여 2000년부터 채무보다 채권이 많은 채권국으로 전환되었으며, 2005년말에는 순채권 규모가 1,187억달러에 이름.

o 외환보유액은 1960년 1억6천만달러에서 1996년까지 증가추세였으나 1997년 당시 204억달러로 떨어져 대외 단기채무의 1/3도 못되는 수준으로서 대외지불능력이 상실된 상태였음. 그러나 1998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5년말 현재 2,104억달러로 단기채무의 3배 이상 보유.

9. 교육, 과학기술

국민의 학력수준 크게 상승, 여성의 25.4%가 대졸 이상

o 1947년에는 초등학교 졸업이하가 95.0%, 대졸이상은 0.6%에 불과하였지만, 2005년 현재는 초등학교 졸업이하는 19.1%, 중졸 11.2%, 고졸 38.3%, 대졸이상이 31.4%로 국민들의 학력수준이 크게 높아짐.

o 여성의 학력 구성비는 1947년 초등학교 졸업이하가 97.9%, 대졸이상은 0.1%였으나, 2005년 현재 여성의 25.4%가 대학 이상 졸업자로서 여성의 능력과 사회적 위상이 크게 높아짐.

교원1인당 학생수는 고등학교 이하는 감소, 대학은 증가

o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인 교원1인당 학생수는 중ㆍ고등학교는 크게 개선되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함. 그러나 초등학교는 2003년 OECD평균 17명에 비해 아직 열악한 편이며, 대학의 경우 크게 못 미침.

o 초등학교 교원1인당 학생수는 1952년 60.2명에서 2005년 25.1명으로, 중학교는 41.8명에서 19.4명으로, 고등학교는 37.9명에서 15.1명으로 모두 반 이하로 줄어듬. 반면에 대학은 1972년까지는 개선되다가 1973년 이후 점점 열악해져 대학교의 경우 교원1인당 학생수가 1952년 25.7명에서 2005년 37.8명으로 증가.

2004년 GDP대비 연구개발 투자는‘67년의 7.5배로 증가

o 1967년 GDP대비 연구개발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38%(48억원)에 불과하였으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연구개발비의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 IMF체제로 접어들면서 다소 감소하였으나 경제위기극복과 함께 다시 증가하여 2004년에는 GDP대비 2.85%(22조1,853억원)로 1967년 투자비(比)의 7.5배로 늘어남.

o 연구개발비 부담은 1967년에 정부가 87.0%를 부담하였으나, 점차 민간 부담이 증가하여 1980년에는 정부와 민간이 거의 반반을 부담하게 되었으며, 2004년에는 정부가 24.5%, 민간기업이 75.0% 분담하여 연구개발투자가 민간기업 위주로 바뀜.

10. 보건, 여가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7로 감소, 의료서비스의 질이 크게 향상

o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여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였으며 이에 따른 의료수요의 증가,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 및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보건의료시설 및 인력이 크게 증가.

- 병ㆍ의원수는 1953년 4,306개에서 2004년 47,378개로 11배 규모로 늘어났으며, 의사수는 6,000여명에서 10만7,000여명으로 18배 정도 증가.

-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953년 3,347명에서 2004년 468명으로 약 1/7로 감소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이 크게 향상.

2005년 현재 평균수명은‘71년에 비해 15.6세 연장

o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의 소득수준 향상과 영양섭취의 개선, 의료기술 및 서비스의 향상에 의해 국민의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됨.

- 1971년 성별 평균수명은 남자 59세, 여자 66세였으나 경제의 번영과 함께 점차 증가, 2005년 현재는 남자 75세, 여자 82세로 연장되어 지난 34년 동안에 남여 수명이 약 15~16세 늘어났으며 매년 5~6개월씩 늘어난 셈.

- 남녀의 평균수명차는 1971년에 여자가 남자에 비해 7.1세 높았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그 차이가 점점 늘어났으나, 이후 점차 줄어들어 2005년 현재 6.7세로 약간 줄어든 상태.

40여년간 17세 청소년 남자는 9.9cm, 여자는 4.2cm 더 커짐

o 식생활의 향상과 함께 청소년들의 체격 및 체형도 크게 향상.

- 1965년 17세 남자의 신장은 163.7cm, 여자는 156.9cm이었는데 2004년 남자는 173.6cm, 여자는 161.1cm로 각각 9.9cm, 4.2cm 커졌으며, 체중은 남자 54.3kg, 여자 51.0kg에서 남자 68.1kg, 여자55.8kg으로 각각 13.8kg, 4.8kg이 증가.

- 특히 남성은 신체가 전반적으로 매우 건장해졌고, 여성은 앉은키에 비해 하체가 크게 길어졌음.

해외여행자는‘60년 8천명에서 2005년 950만명으로

o 해외여행자수는 1960년 8천여명에 불과하였으나 2005년 950여만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이는 외국인 입국자의 약 2배 규모임. 소득 향상에 따른 경제적 여유 증대와 1988년 해외여행 자율화 정책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

o 해외여행으로 소비하는 1인당 금액은 1960년 582달러에서 2005년 1,612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으며, 외국인 1인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1,093달러의 1.5배를 쓰고 있음.

o 국제간 여행수지는 1973년~1990년까지 다소 흑자를 기록했으나 1991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05년에는 100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기록.

11. 재해, 사고

2005년 교통사고 사망자수는‘51년보다 7배 증가, 사고 건당 사망률은 1/26로 감소

o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자동차 보유의 빠른 증가와 더불어 교통사고도 급증. 1951년에는 자동차 사고가 1,200여건에 불과하였으나 2005년에는 21만여건으로 177배가 증가.

o 인구 10만명당 사망자수는 1960년 5.6명에서 2005년 13.2명으로 2.4배 증가.

-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는 1951년 77.4명에서 2005년 3.0명으로 줄어 교통사고 시 사망률은 1/26로 감소.

건국 이후 최대의 자연재해는‘59년 사라호 태풍

o 풍수해의 피해는 1958년 사망자 161명 피해액 263억원으로 해마다 피해규모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음.

-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힌 태풍은 1959년 영동과 영호남을 덮친 “사라호”로 사망ㆍ실종 849명, 이재민 37만여명.

- 가장 강력했던 태풍은 2003년 남해안을 휩쓴 태풍 “매미”로 초속 60m로 부산항의 크레인을 붕괴시킬 정도였으나 재난대응시스템의 체계화 등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명피해는 129명에 그침.

o 1958년 화재발생건수 1,547건, 사망 112명, 2005년에는 32,340건에 사망 505명으로 발생건수는 21배, 사망자 수는 4.5배로 증가.

- 광복이후 최대의 피해를 낸 화재는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로 사망 163명, 부상 63명 등 226명의 인명피해를 냄.

o 산불 발생은 1953년 225건에 2,748ha의 임야를 태웠으며, 2004년에는 544건에 1,588ha의 임야가 소실.

- 광복이후 최대의 산불은 1999년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로 임야 30,000여ha, 주택 70채, 가축 335마리 등 큰 피해를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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