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수년 전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에 나섰던 업체 대표로부터 들은 황당한 이야기이다. 국제 입찰을 통해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사업을 진행하는 중 해당 국가 정부에서 대금결제를 무한정 연기해 내막을 알아보니, 대통령이 미리 책정한 사업예산을 마음대로 바꿔 본인 전용기를 구입하는데 써서 지급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 불신과 함께 황당함을 느꼈다며 속을 태우는 업체 대표 앞에서 본능적으로 피식 웃음이 새어나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국내에도 합리적인 사유 없이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이 중단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엔 지난 6월 지방선거 후 새로 선출된 지자체 단체장들이 전임 단체장이 결정한 사업을 관계자들과 별다른 논의 없이 보류하거나 아예 폐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결정된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를 새 단체장이 임의로 폐기하려하자 시민단체까지 나서 약속대로 사업을 재개하라며 집단시위에 나서는 곳도 있다.

반면 새 단체장이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개발업자들이 성시를 이루는 곳도 있다. 울산이나 전남 신안 등 해안지역을 끼고 있는 지자체는 대규모 태양광 및 해상풍력 단지 건설을 희망하는 국내외 개발업체들이 관청 문턱이 닳도록 찾아간다는 소식이다. 대개 정부의 재생에너지3020이행계획 이행을 앞세우고, 지역경제 개발을 목표로 두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곳도 일부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와중에 부랴부랴 개발이익 공유 및 난개발 방지를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통에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개발업자들이 벌떼처럼 들끓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민과 전문가들은 의견수렴이나 법규 제정 과정이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밟기보다 성급함이 앞선다고 우려한다.

재생에너지 개발여부 자체에 도덕적 잣대를 적용할 순 없다. 주민, 지역, 환경에 피해를 끼치는 개발을 옹호할 이유도 없다. 다만 결정권자들의 가벼운 의식은 탓할 만 하다. 그렇다고 지자체장들만 걸고넘어질 일은 아니다. 이익단체에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부 관료들과 시혜성 정책에 골몰하며 에너지에 낮은 이해를 가진 정치인들도 비난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편향된 시각으로 팩트를 외면한 보도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태풍에 피해를 본 소수 태양광설비 사례만 갖고 에너지전환 자체를 부정하는 침소봉대식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결정권을 갖거나 담론을 형성하는 이들의 낮은 수준에 불신의 눈길이 쏟아지는 이유다.

에너지는 의·식·주에 비견되는 기본적인 요구다. 특히 재생에너지 보급은 이를 넘어 미래와 환경가치까지 고려하는 시대적 요구다. 우리 사회와 결정권자들은 이 같은 무게감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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