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부족 우려했던 투자자 선물 등 자산 매각
수요 종전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 증가세 예상
[이투뉴스] 국제 유가가 하락 장세에 들어선 듯한 모양새다. 2014년부터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원유가가 6주 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근의 유가 하락은 원유 공급 전망이 갑자기 뒤바뀐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원유 거래자들은 원유 부족으로 원유 선물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최근 내년 초부터 원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유가 하락세가 한층 속도를 더하고 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87달러까지 오르고, 미국 원유가 77달러 이하로 거래됐던 10월 초 이래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이상 떨어졌다. 이들 두 벤치마크는 지난 52주 내 최고가에서 20% 이상 하락한 완전한 하락 장세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원유는 뉴욕에서 거래가 시작된 지난 30년 역사상 가장 긴 하락 장세를 맞았다. 12개 거래 세션에서 연속해서 가격 하락을 경험했다. 지난 13일에는 2017년 11월 16일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55.69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유가 하락의 원인들 중 하나로 최근 유가 급등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유가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 상당수 에너지 전문가들은 유가가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급상승세를 이어가지 말았었어야 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원유 선물가는 지난 10월 3일 4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OPEC 회원국내 3위 원유 생산국인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연장을 시장이 받아들이면서다. 지난 9월에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경고로 시장에서는 하루 80만 배럴의 원유가 줄었다. 이에 따라 일부 원유 수입국들이 공급처 확보에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원유 재고를 늘리며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주식 시장 매각
원유 선물가가 최고가를 찍은 1주일 후 S&P 500 주식 중 3분의 2가 교정 구간(주식이 직전 최고치에서 약 10% 하락)에 진입했다. 투자자들은 원유 선물을 포함한 위험 자산을 매각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원유와 주가는 늘 같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지난달 이들 두 자산은 긴밀히 연결됐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자들은 원유 수요 불안정이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면서 주식과 자산 덤핑에 뛰어들었다.
◆수요 약화 전망
지난 10월 OPEC과 국제 에너지 기구(IEA)는 세계 원유 수요량이 종전 전망치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원인으로 무역 긴장에 기인한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금리 상승, 경제 신흥국들의 환율 약세 등을 꼽았다.
경제 예측 전문가들은 지난 10월 유가가 또다시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특히 인도와 터키, 인도네시아에서 원유 수요가 더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 IEA는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고유가는 미국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과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경제적 손실이 더 심하다”고 밝혔다. 지난 두달간 무역 상대국들과의 평균 통화 가치 대비 미국 달러는 3% 가까이 상승했다. 이에 따라 미국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가 다른 통화를 보유한 국가에게 더 비싼 실정이다.
◆생산량 확대
세계 최대 원유 생산 3개국은 사상 최고치로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15개 OPEC 회원국들도 단합해 원유 증산에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도 원유 생산량은 지난 8월 하루 1100만 배럴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IE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지에서의 감산량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전년대비 하루 약 300만 배럴 상승한 지난 8월의 엄청난 증산 이후 미국은 (생산) 속도를 늦추려는 사인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IEA는 미국의 올해 생산량이 하루당 210만 배럴, 내년에는 추가적인 130만 배럴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도 원유를 최대치로 생산하고 있다. 앞서 러시아와 다른 원유 생산국들과 함께 OPEC 회원국들은 지난해 1월 생산량을 제한했다. 유가 하락을 잡고 세계 원유 과잉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량이 줄어들자 지난 1월 OPEC은 원유 증산에 동의했다. 그 결과 원유 생산량 증가와 수요 감소가 예상되면서 현재 시장 전반에 걸쳐 내년부터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게 됐다.
◆이란 경제 제재 완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8개국이 향후 6개월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것을 허가했다. 이 결정은 유가 상승을 완화시켰다. 이에 대해 에너지 헤지 펀드사 어게인 캐피탈의 존 킬더프 설립 파트너는 “OPEC과 원유 시장 거래국들에게 계산을 힘들게 해놨다”고 지적했다. OPEC 회원국들은 이란산 수출에서 예상 하락분을 상쇄하기 위해 더 많은 원유를 생산했다. 그러다 미국의 완화 조치가 오히려 문제를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지난 몇 년간 시장 균형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지만 현재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 조치로 인해서) 과잉 공급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요 상승 전망이 불안정하고 유가가 하락하자 OPEC과 연합국들은 원유 감산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OPEC의 원유 감산 조치가 100만 배럴 규모가 적절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가 하락을 위해 OPEC의 증산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에너지부 장관은 원유 감산 영향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상황을 역전시킬 결정을 내리기엔 시기가 이르다”고 최근 말했다. OPEC 회원국들은 비엔나에 모이기 전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게도 감산을 설득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편, OPEC과 연합국들이 원유를 감산할 경우 오일 전쟁의 치킨 게임에서 미국 셰일 생산자들이 승자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OPEC의 합의점 도달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분간 불안정한 흐름을 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유가 방향은 12월 6일 OPEC의 비엔나 회의 결과에 따라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애틀=조민영 통신원 myjo@e2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