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대만에서 벌어진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대만보다 우리나라가 더 시끄럽다. 국민투표에서 ‘원자력발전소를 2025년까지 완전 중단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관련 조항 폐지’ 안건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언론은 대서특필을 마다하지 않았고, 원자력 등 수많은 관련 단체와 학회가 성명을 쏟아내자 반대 진영에서도 반박기사로 대응하고 나섰다. 

보수언론과 원전산업계는 대만 국민투표 결과를 해석하면서 ‘탈원전 정책 폐지’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대만 국민이 나서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으며, 찬성비율이 60%에 달했다는 세세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특히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우리나라 에너지전환 정책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환경단체 및 재생에너지업계는 대만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언론과 원전산업계가 침소봉대한다고 성토한다. 원전폐기를 선언한 전기사업법이 없어지더라도 대만의 탈원전은 예정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만 국민이 화력발전량을 매년 1%씩 감축하는 것은 물론 석탄화력 추가건설 금지를 압도적으로 찬성한 점을 들어 에너지전환 추세를 거스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을 놓고 양측이 정반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각자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 상황을 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보수언론은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이 소재를 끌어다 쓰는 경향이 다분하고, 원전산업계는 왜 우리만 탈원전을 추진하느냐며 ‘기-승-전-원전살리기’에 목을 매고 있다. 환경단체 및 재생에너지업계 역시 이번 일로 어렵게 결정한 에너지전환 정책흐름이 꺾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측면이 엿보인다.

기계적 중립이 아닌 실제 팩트는 어떨까. 먼저 대만 국민이 민진당 정부가 추진한 ‘2025년 원자력발전소 완전 가동중단’ 정책을 뒤집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국민투표 안건이 된 것도 야당과 국민의 청원에서 시작됐다. 정부 불신과 함께 대규모 정전사태를 겪으며, 전력수급에 대한 불안요인이 한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만의 탈원전 시계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모두 6기의 원전 중 2기가 이미 폐쇄됐고, 나머지 4기도 2025년이 되면 설계수명이 끝난다. 새로 짓던 발전소는 완전 해체해 버렸다. 대만정부 역시 원전폐지를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공식화했다. 탈원전 정책에 불만이 많은 대만 국민들도 ‘석탄화력 줄이기’를 동시에 결정했다는 점에서 원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결론까지 도달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와 대만은 상황이 완전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가 2023년까지 수명이 다하는 고리와 월성 6기를 폐기하더라도 현재 짓고 있는 신고리 및 신울진 원전 5기가 가동되면 원자력발전량은 더 늘어난다. 아울러 현재의 원전 정책이 계속된다고 가정해도 이들 발전소는 2070년 언저리까지 가동, 앞으로 50년 동안 완전한 탈원전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나라 원전정책은 ‘감(減)원전’ 또는 ‘원전 속도조절’ 정도가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그럼에도 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정부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정책수립 과정에서 제대로 된 국민의견 수렴절차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선공약에 넣고 당선되면 국민이 해당 정책을 지지해줬다고 판단해선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정권마다 바뀌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에게 여러 상황을 제대로 알리고 입법화 과정을 거치는 등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정책이 절실하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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