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전기차는 리튬이온배터리 안에 저장된 힘으로 달린다. 현대자동차가 만드는 니로나 코나 EV모델은 64kWh 배터리를 장착하고 약 400km를 주행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1900여명을 63빌딩 1층에서 꼭대기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 응축된 힘이다. 배터리는 힘이란 물리력을 화학적 형태로 바꿔 농밀하게 저장했다가, 언제든 이를 다시 힘, 또는 다른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용한 장치다. 장차 재생에너지가 주력 발전원으로 발돋움하는데도 꼭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일까, 우리 정부의 ‘배터리 사랑’은 유별났다. ESS 충전 전기료 특례제도를 도입해 산업용 경부하 요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단가에 심야충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태양광발전과 연결한 설비에는 최고수준의 보조금(REC 가중치 5.0)을 주고, 넉넉한 시설자금 융자도 줬다. 이렇게 원전 4기규모(4500MW)로 전국에 설치된 배터리들은 햇빛이 좋은 대낮의 태양광 생산전력을 빨아들였다가 수요가 적은 야간시간에 이를 계통에 토해냈다. 다른 쪽에선 기본료까지 할인받은 배터리들이 이 전력을 헐값에 다시 충전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사달은 2년도 안돼 났다. 하루에도 두 번이나 ESS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났다. 1년 반 사이 무려 21건다. 이미 300여곳의 다중이용시설에 278MWh가 설치된 뒤다. 수조원대 배터리를 동시 운영중단하는 초유의 조치가 취해졌다. 막대한 운영손실을 누가 보상할지,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간 우리 배터리기업들은 중국의 엄청난 물량공세와 일본의 전략적 제휴 틈바구니서 넉넉한 내수시장 덕에 나름 좋은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조사 결과에 따라 막대한 배상책임은 물론 신뢰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정부 당국이 화재원인 조사 발표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력질주하다 넘어진 국산 배터리들이 하루 빨리 재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인 모양. 안으로 굽는 팔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어설픈 봉합이다. 정부 발표와 후속조치에도 추가 화재가 발생하면, 그땐 배터리 산업뿐만 아니라 어렵게 만든 ESS산업 생태계가 공멸한다. 신뢰는 철저한 자기반성 위에 다시 쌓인다. 충분한 조사와 실험, 검증을 거쳐 대책을 내놔야 한다. 가능하다면 ‘한국 ESS화재 원인과 대책’이란 백서라도 만들어 국제적으로 떠벌리면 더 좋다. 

어렵고 어려운 리튬배터리와 화학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 분야를 좀 안다는 분들은 화학분야가 전기공학과 비교할 수 없이 변수가 많고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배터리는 전력계동에서 따로 분리해도 내부에 그대로 상당량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 배터리 내·외부에 어떤 이유로 이상이 발생하고 차단장치가 제기능을 못하면, 언제든 대형화재로 이어져 인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다. ESS화재 조사발표보다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 중요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