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이야기는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다. 어릴 때, 읽은 기억이 있을 ‘신드바드의 모험’과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담긴 <천일야화(One Thousand One Nights)>는 1001일 동안 지속된 이야기의 힘을 나타내는 대명사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술탄(당시 이슬람 제국의 세습 군주)이었던 샤 리아르는 매일 한 명의 처녀와 결혼한 뒤 아침에 목을 잘라 죽인다. 이런 비극이 3년간 지속돼 나라가 비탄 속에 뒤덮여 있을 때, 대신의 딸인 세라자드가 샤 리아드 술탄과 자원해 결혼하는데, 끝나지 않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그녀 스스로의 목숨을 구한다.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하여 그녀를 살려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미래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여러 이야기가 담길 수 있겠지만 우선 태양광 이야기로 시작해보겠다.

“태양에너지는 인류의 오래된 꿈이다. 태양의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직접 활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 생산으로 발생하는 모든 환경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꿈은 180여 년 전인 1839년 프랑스 물리학자 베크렐(Becquerel)이 발견한 전해질 속에서 빛이 비치면 전력이 증가하는 광전지 효과(photovoltaic effect)에서 시작한다. 44년 후, 1883년 미국의 발명가 프리츠(Fritts)는 에디슨의 석탄 발전소와 경쟁할 수 있기를 꿈꾸며 최초의 태양전지를 발명했다. 그러나 1% 미만의 전기 변환 효율은 가능성만을 잉태했을 뿐이다. 진정한 태양전지의 꿈은 1954년 미국 벨연구소(Bell Labs)에서 실현시켰다. 비록, 작은 장난감 관람차에 태양전지를 부착해 움직이는 시연이었지만 당시 뉴욕 타임스에서는 인류가 소중히 간직해왔던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다는 평으로 그 놀라움을 알렸다. 4년 후, 1958년 태양전지는 인류의 2번째 인공위성 뱅가드 1호와 함께 우주로 나아갔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 태양빛으로 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2000년 이후 온 세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18년 현재, 1970년대 중반 대비 태양광 발전의 비용은 100분의 1 이하로 하락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비용(LCOE)는 약 65%나 하락했다. 2030년까지는 추가로 40%가량이 떨어지고 많은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태양광의 180년의 역사, 그리고 10년 후의 미래 속에는 우리를 설레게 만들어주는 ‘무한 에너지, 우주, 에너지 자립’과 함께 실현가능성을 선명하게 해주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담겨있다. 우리는 태양광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무한한 에너지인 바람에너지 풍력 역시 태양광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과학기술의 영역에 있어, 이야기는 그 기술과 사람들의 물리적 거리(physical distance)와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 모두를 가깝게 만들어 준다. 무한한 태양에너지 활용의 꿈은 과학기술자, 자본가, 정부의 마음을 계속해서 움직였고 R&D 투자의 지속, 산업의 확장, 기술의 발전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시키며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꿈은 비로소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2019년 1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소경제시대’를 선언했다. ‘수소경제’라는 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는 특정 지역에 한정하여 얻을 수 있는 자원이나 청정에너지인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역시 지역에 따라 그 비용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특정 지역에서는 스스로 수요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많은 재생에너지가 저렴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때, 수소는 훌륭한 에너지 저장 매개체(Energy Carrier)로 재생에너지의 과잉 생산을 효과적으로 저장하여 필요한 곳으로 운반할 수 있다. 한편,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음에도 총 사용량 기준에서 바라보면 화석연료가 50% 이상의 에너지를 차지하는 시대는 50년 이상 계속될 전망이다. 화석연료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을 통해 수소를 생산한다면 전이 과정(Transition Period)에서의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수소는 천연가스처럼 수송, 산업 공정, 열에너지 이용 등 다양한 용도에서 연료로 직접 활용될 수 있으며 연료전지 기술과 결합되어 無탄소 발전, 철도, 선박, 자동차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2002년 저술한 <수소혁명>에서 자원고갈에서 자유롭고, 무공해 에너지원인 수소가 궁극적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수소경제의 꿈의 유일한 단점은 경제성이다. 아직, 수소를 저장하고 이동하는 비용은 비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구상을 ‘신기루’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수소경제 선언은 이미 2005년 나온 바 있으며, 그때의 구상이 지금 하나도 맞은 게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15년 전, 수소경제와 지금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재생에너지의 비용 하락과 빠른 확산은 아직 10년이 지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태양광과 풍력은 가능성이 높은 자원이었지 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신기루였다. 재생에너지의 비용이 하락할수록 궁극적인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비용 역시 낮아진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수소에너지의 미래는 에너지 전환의 궁극적 모습을 담고 있다. 

물론, 수소 에너지의 활용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이웃국가 일본은 2050년, 수소경제의 꿈을 향해 선두에서 달려가고 있다. 독일을 포함한 다수의 유럽 국가 역시 재생에너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수소경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호주, 중국 역시 수소경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공동체의 꿈을 향한 궤도에서 수소경제는 가능성 높은 후보이다. 많은 가능성이 있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의 도전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태양광이 우주에서 땅으로 내려와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기까지 수많은 불가능성을 극복해 나가며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혀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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