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화재 안전판’ Off-gas 감지시스템 도입한 티팩토리
열폭주 단계 이르기 전 PCS·메인차단기 OFF 화재 차단

▲이주광 티팩토리 전무가 본사 소재 빌딩 지하에 설치된 ESS룸에서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이주광 티팩토리 전무가 본사 소재 빌딩 지하에 설치된 ESS룸에서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이투뉴스] “지금 모니터링 센서 근처에 배터리 전해질 성분의 오프가스(Off-gas)를 조금 뿜어보겠습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스포이드병을 손에 든 직원이 사다리를 타고 ESS(에너지저장장치) 랙(Rack. 배터리함) 상단으로 올라서면서 말했다. 이상이 발생한 배터리는 내부과열로 압력이 증가해 외부로 오프가스를 방출하는데, 배터리 안전관리시스템(Safety Management System)이 이 성분을 감지해 정상 작동하는 지 시연해 보이기 위해서다.

‘삐~~삐~~’ 얼마 지나지 않아 컨트롤모니터 11번칸(#11)이 경보음과 함께 빨간색 'Detected'(검출)란 글씨로 바뀌었다. 센서가 해당 랙에서 오프가스를 감지했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 시스템은 PCS(전력변환장치), 전체 ESS룸 메인차단기 순으로 전원을 ‘OFF’ 시켰다. 외부 전력계통과 ESS를 완전 분리한 것이다. 이렇게 가스감지부터 전원차단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4~5초 남짓.

최형석 티팩토리 대표이사는 “국내외서 매일 두 팀 이상이 이 시설을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면서 “ESS는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언제든 불이 날 수 있다. 하지만 화재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확실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랙(Rack) 상부 환기팬마다 오프가스(off-gas) 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배터리 전해질 유사성분을 소량 분사하자 4~5초 사이 PCS와 전력계통 전원이 차단됐다.
▲배터리 랙(Rack) 상부 환기팬마다 오프가스(off-gas) 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배터리 전해질 유사성분을 소량 분사하자 4~5초 사이 PCS와 전력계통 전원이 차단됐다.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한 지식산업빌딩. '통제구역' 경고가 나붙은 지하 전기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편에 대여섯 평 규모 ESS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12월 정부 융자지원을 받아 설치된 1.4MWh 피크부하 저감용이다. 경부하 때 배터리에 충전해 놓은 전력을 피크부하 때 빌딩 내부로 방전시켜 전기료를 절감해 준다. 이날도 오후 4시 현재 SOC(충전잔량) 16% 상태에서 257kW를 방전하던 중 시연에 동원됐다. ESS룸 내부는 에어컨 냉기로 서늘했다.

앞서 이 시설은 정부 다중이용시설ESS 가동중단 조치로 준공 한 달도 안 돼 운영을 중단했다가 올해 3월 화재 예방시스템 설치 후 재가동에 들어가 현재까지 정상 운영 중이다. 어떤 유형의 배터리 이상이든 화재 발생 전 사전조치가 가능하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잇따른 국내 ESS화재에 대한 정부차원의 원인조사 결과 발표는 올해 상반기로 연기됐다. 그런데 이 업체는 아직 정확한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ESS화재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걸까?

“ESS화재는 충분히 예방 가능…국내 화재 예견”
“ESS에서 조만간 화재가 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자주 발생했다. 우린 그 시기를 운영기간이 조금 지난 2020년 전·후로 봤다.” 화재 예방을 자신한 것도 놀라운 데 한술 더 떠 ESS화재가 이처럼 문제가 될 것도 미리 예견했단다. 이 빌딩에 본사를 둔 티팩토리 최형석 대표의 말이다.

티팩토리는 낙뢰나 써지(Surge) 등의 위해(危害)에도 지속가동돼야 하는 이동통신전원장치 등을 주력사업으로 영위해 온 벤처기업. ESS 업력은 5년차를 넘어선다. 국산 리튬전지가 본격 보급되기 전 외산 인산철전지 등을 들여와 직접 ESS를 구성·운영해 온 경험이 있다. 가정용 단위 시장 확대를 예상하고 사업에 진출했다가 정부 대대적 보급정책 이후 대용량 상업용이 활황을 이루자 한화에너지·한전산업개발 등과 시공영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ESS화재는 2017년 국책연구개발과제 주관기업 선정을 계기로 관심을 가졌다. 그해 한전 등 8개사와 에너지기술평가원의 ‘ESS 신뢰성·안전성 향상 기술개발’ R&D과제를 수탁했다. 이동형 성능테스트 과제까지 포함된 102억원 규모 대형 연구개발사업이다. 해당 연구가 3년차로 접어들어 다양한 ESS 위해요인을 파악해 갈 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서 실제 화재가 터졌다.

ESS화재에 대한 접근과 해석은 영역별로 제각각이었다. 전압과 전류 등의 전기신호와 위상차, 온도, 아크 등의 현상에 집중한 전기분야는 대안으로 각종센서를 추가로 달자고 했다. 그런데 ESS 핵심설비인 리튬배터리는 엄연한 화학의 영역. 산업이 다르듯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가 같을 수 없다. 두 관점을 동시에 견지해야 명확한 원인규명과 해법마련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주광 티팩토리 전무(공학박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처럼 다양한 ESS가 다양한 용량으로, 다양한 장소에 대량 설치된 사례는 없다. 어찌보면 (화재는)당연한 결과”라면서 “이 문제는 전기‧전자‧통신‧화학·소방 등 전 영역이 참여해 시스템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각자의 언어로만 얘기해선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전기적 관점과 화학적 관점을 결합한 솔루션을 찾아나선 배경이다.

▲최형석 티팩토리 대표이사가 배터리 안전관리시스템(Safety Management System)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형석 티팩토리 대표이사가 배터리 안전관리시스템(Safety Management System)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기적 관점·화학적 관점 동시 견지 솔루션 필요
일단 불이 붙은 배터리는 특수용액으로도 진화가 안될 만큼 내부에 쌓인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하지만 배터리가 단숨이 이 상태로 치닫는 건 아니다. 첫 단계는 자신의 규격을 벗어난 전기적·기계적·열적 스트레스(Ause)가 배터리에 가해지는 상황. 이걸 막아주는 것도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역할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배터리 셀 전압이나 온도가 급격 상승한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체온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상범위를 벗어난 체온이 치명적이듯, 배터리내 발열도 위험하다. 셀이 스스로 발열해 인근 셀의 연쇄 발화를 일으키는 열폭주(Thermal Runaway)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리튬전지가 이 단계에 이르기 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있다. 셀 내부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 셀 케이스가 '퍽' 소리를 내며 터지고, 이때 외부로 오프가스가 방출된다. 배터리 셀 내부 전해질은 온도가 100℃ 오르면 압력이 100배 증가한다. 즉 이 가스가 방출됐다는 건 다음 단계인 연기발생(가연성 환경)이나 화재 등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이 결정적 신호를 놓치지 않고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초동조치가 이뤄지면 화재 예방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티팩토리가 미국 넥서리스(Nexceris)사로부터 도입한 배터리 SMS시스템은 열폭주 이전 발생하는 오프가스를 감지해 셀에 더 이상 스트레스가 가해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예방 장치다. 미량의 가스라도 감지되면, 즉각 부하(PCS, 외부계통) 측을 차단해 셀 온도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냉각되도록 해준다.

넥서리스는 2008년 미 해군 잠수정에서 발생한 리튬전지 화재사고를 계기로 R&D에 참여해 오프가스와 같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에 반응하는 센서를 개발했다. 이어 2016년 인증기관 DNV-GL은 미국 에너지부(DOE) 지원을 받아 다양한 배터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운전조건에서 화염시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오프가스가 열폭주보다 평균 7.4분 앞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SS화재 예방을 위한 골든타임(Golden Time)인 셈이다. 물론 이 시간은 SOC에 따라, 셀 이상 유형에 따라 수분내로 짧아질수도, 최장 몇일로 길어질수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작년 6월 발간된 해외인증기준 UL9540A는 셀, 모듈, 유닛, 설치 각 단계마다 오프가스 발생 시 셀 표면의 온도와 발생 가스 성분에 대한 상세 데이터를 기입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개정 예정인 미국방화협회 규격(NFPA855)은 ESS에 대한 화재실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ESS 확대보급에만 혈안이 돼 있을 때, 해외는 이미 이런시험과 안전기준을 만들어가며 ESS 안전성을 높이는데 부심하고 있었다.

이날 공개된 티팩토리 본사 빌딩 지하 ESS 시스템은 배터리 랙마다 상부에 감지센서를 장착했다. 센서는 공기흐름을 고려해야 하므로, 배터리 타입이나 랙 유형에 따라 설치위치가 달라진다. 모든 센서는 두뇌에 해당하는 컨트롤러와 연결돼 있고, 이 컨트롤러가 오프가스 감지 시 화재 예방을 위해 전원차단 등의 필요한 동작 지령을 내린다. ESS화재 원인을 불문하고 적용가능한 예방시스템이 개발됐다는 건 희소식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 적용 여부는 사업자의 선택이며, 적용 시 애초 고려하지 않았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주광 티팩토리 전무는 "전 세계 ESS시장의 30%가 한국이고, 가장 운영기간도 오래됐으며 유형도 가장 다양하다. 전 세계가 우리가 어떻게 이 사태를 극복하는지 지켜보고 있고, 결국은 기술적 성숙을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사람이든 배터리든 노화는 불가피하다. ESS는 언제든 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각 센서의 정보가 취합 처리되는 컨트롤러와 이상을 감지해 모니터에 경보신호를 노출시킨 모니터창(오른쪽 아래)
▲각 센서의 정보가 취합 처리되는 컨트롤러와 이상을 감지해 모니터에 경보신호를 노출시킨 모니터창(오른쪽 아래)

 

키워드
#ESS화재 #ESS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