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올인 아닌 방사선 분야 등 활로 충분…정부도 적극 지원할 것
온라인 메타순환평가, 양극형 연구개발 강화 등 에기평 혁신 앞장

▲임춘택 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임춘택 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이투뉴스] 우리나라 에너지기술개발을 위한 정부 연구자금을 관리·집행하는 에너지기술평가원이 달라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하는 기관에서 오히려 평가를 받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과제 선정도 어정쩡한 연구목표가 아닌 첨단원천기술 확보와 시장진입 가능성 등 양극형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평가원이 먼저 변해야만 에너지R&D 전체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다양한 분야에서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변화의 시작에는 지난해 6월 4대 원장으로 취임한 임춘택 원장이 있었다.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들과 마주한 임 원장은 달변에다 박학다식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국방, 항공·우주, 에너지 분야까지 거침이 없었다. 정부 에너지전환정책에 맞서고 있는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시작으로 청와대 행정관,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 및 원자력·양자역학과 교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융합기술원 교수를 거친 그의 경력이 배경이 됐다.

“에기평은 갑질을 하던 기관이다. 감사받을 때만 을이고 나머지 연구기관을 상대할 때는 항상 갑이었다. 하지만 갑질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지금은 70%는 갑이고, 30%는 을이다. 평가원이 권한과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고객에게 다가서는 형태, 즉 갑과 을이 50대 50으로 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뀌도록 더욱 채찍질을 가할 것이다”

임춘택 원장은 갑질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갑질이라고 판단하면 모두 갑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1년에 한 번 고객만족도조사 수준의 평가를 했지만, 갑질 근절을 위해 조사 횟수나 강도를 대폭 높였다. 정부 평가와 함께 자체적으로도 분기마다 평가를 하고, 콜센터 및 이메일 제보 등을 통해서도 수시로 확인한다. 특히 모든 제보나 불만을 원장이 직접 체크하면서 허투루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개발과제 선정과 평가 역시 크게 바꿨다. 먼저 이도저도 아닌 과제를 줄이고 세계 최초 아이디어(첨단기술성) 이거나 글로벌 시장경쟁력(시장진입성)이 있는 연구과제에 집중 지원하는 양극형 연구개발(스마일커브)로 바꿨다. 지난해 30% 정도 이렇게 지원했고, 올해는 80%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온라인 메타평가를 도입한 것도 눈에 띤다. 온라인 평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참여가 쉽지 않은 국내외 우수전문가를 평가위원으로 참여시켜 참여율은 2배, 과제당 검토시간도 5배가량 늘었다.

“가장 먼저 평가위원이 평가하면 이를 다시 책임평가위원, 전담기관, 주관기관 식으로 순환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해 신뢰성을 높였다. 그동안 바쁘고 멀리 있어 참석이 어려웠던 전문가들이 밤이든 아침이든 스스로 시간날 때 평가를 진행하는 형태다. 모든 것이 온라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평가원 업무 역시 결재 등 대부분의 업무를 언제든지 외부에서 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도 만들었다”

임 원장은 요즘 에너지벤처금융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고 투자를 하고 싶은 곳도 많지만 이를 연결해주는 전문가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궁극적으로 펀드를 활성화시켜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기업을 돕는 한편 중소기업의 스케일업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그는 실제 사립학교 교직원공제 이사장 등 금융투자사를 만나본 결과 금융부문에서도 태양광 등 에너지 분야 투자에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는 전언이다.

“국방과 항공우주,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 등 3가지 분야에서 주로 일했는데 공통점이 모두 보수적이었다. 물론 이전에는 안전한 에너지설비 운용과 안정적인 수급 등 보수적 가치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기술발전과 민간 진입으로 이제는 진보적 가치와 혁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도 변하고 있는 등 글로벌 흐름이다. 우리나라 역시 보수적 가치에서 벗어나 개방과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임춘택 원장은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발전의 안전 신화는 깨졌다고 진단했다. 이전에는 어느 정도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안전을 확보한 것으로 봤지만 자연재해 등 설계기준 이상의 사고가 나면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안전-해체-폐기물-수출 등 4대 분야를 중점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원전에만 올인할 것이 아니라 의료용 및 산업용 등 방사선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는 성장산업이지만,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한계가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시장이 모두 축소되는 추세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전환정책은 원자력 미래방향과 일치한다고 본다. 국내 많은 학회 중에서 기득권과 결탁해 정치화된 곳은 원자력학회가 유일하다. 특정 정치집단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학회가 특정 정당만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원자력계 시니어들이 이제 그만 정치적 색채에서 벗어나 후배들이 새롭게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특히 이른바 고속로 등 미래형 원전 개발은 어불성설이라며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PR 14000이나 이를 개선한 수준의 원전만 수출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댔다. 앞으로는 방사선 의료, 식품·농업, 종자계량, 비파괴 검사나 투시 등 비발전 분야 R&D가 중요한 만큼 이를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보수언론과 경제지에 대해서도 공정한 보도를 주문했다.

“수소 분야의 경우 수소차와 연료전지, 두 가지를 집중 육성하겠다. 특히 그린수소(여유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하는 수소)에 우선해서 갈 것이다. 연료전지를 검토해보니 SOFC(고체산화물형)는 발전분야에서 해볼만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수소는 시장경제가 이미 작동이 되고 있는 만큼 모든 것을 정부주도로 지원할 수는 없다. 수소경제가 갈 수 있느냐는 시장이 결정하고 만들어 갈 것이다”

임춘택 원장은 전기차 시장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울러 당분간 전기차가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것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시장 전체를 좌우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소차의 경우 대형 트럭이나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 비행기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에너지가 자원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넘어 가는 등 지식산업이 된 만큼 고급인력 양성도 중요한 과제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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