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도 있다. 한국의 에너지산업과 시장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외형만 커졌을 뿐 공기업 독점 구조, 경직적인 시장제도, 빈번한 정치개입 등은 그대로다. 방송‧정보통신‧금융처럼 시시각각 지형을 달리하며 진화를 거듭해 온 산업들과 비교된다. 심지어 20~3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이렇게 변화가 더딘 건 그다지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렴하고, 넉넉하고, 질 좋은 에너지를 언제든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아무리 시장 혁신을 주장해봐야 가슴에 와닿지 않았을 터다. 정부 정책은 수요증가에 맞춰 차질 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만 혈안이 됐다. 공급자 중심의 산업구조와 비효율, 비(非)시장적 규제가 고착화 된 계기다.

물론 애초 싸고, 무한대로 쓸 수 있으며, 양질인 에너지는 없었다. 당장 그렇게 보일 뿐 언젠가 누군가 그에 상응하는 제값을 치르게 마련이다. 이미 골칫거리가 된 미세먼지와 환경성 질환, 눈덩이로 불어나는 공기업 부채, 원전 안전 위험 등이 대표적이다.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 등은 좀 더 긴 거치기간을 거쳐 가까운 후대 몫으로 청구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런 고민의 대안으로 현 정부는 에너지전환이란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에너지전환은 석탄·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LNG를 늘리는 일만으로 간단히 실현되지 않는다. 에너지산업이 하드웨어라면, 시장은 이 산업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려면, 구동프로그램(시장제도)도 걸맞게 새로 깔아야 한다. 이런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시스템이 멈춰서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는 에너지산업의 본질적 변화나 시장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잘 모르고 있거나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당장 부품교체가 필요한 사안을 땜질수리한 뒤 후임자에 떠넘기거나 최첨단 시스템을 십수년전 번들 프로그램으로 구동하려고 한다. 이 와중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남의 제상에 감놔라, 배놔라 시시콜콜 훈수를 두니 배(船)가 산으로 가지 않으면 이상할 일이다. 10년 뒤 에너지산업과 시장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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