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2차전지 전문가' 박철완 서정대 교수
"태양광 딥사이클 불허하고 SOC운영 바꿔야"

[이투뉴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를 처음 만난 건 지난 8월 중순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 조사결과와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다. 당시 박 교수는 “불을 끄지 않고 덮어놔 불씨가 살아있다”고 했었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ESS 화재가 재발할 것이란 경고였다. 심지어 “탐욕스런 업자들에 의해, 재생에너지 연계용에서 (화재가)날 것”이라고 유형까지 못박았다.

예언은 적중했다. 같은달 30일 예산군 태양광연계용 ESS를 시작으로 9월 24일과 29일엔 평창풍력과 군위군 태양광연계용에서 정부 대책발표를 무색하게 하는 1~3번째 추가 화재가 발생했다. 세 건 모두 재생에너지 연계용이고, 특히 1, 3번째 화재는 배터리회사가 충전률(SOC)을 재상향한 사업장이다. 

지난달 말 박 교수를 다시 만났다. 나머지 퍼즐조각을 맞춰볼 요량에서다. 그는 각종 2차 전지 국책 연구개발사업과 산업화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1세대 2차전지 전문가다. 박 교수는 “산업부가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골든타임을 실기했다”면서 사정당국 감사와 조사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화재 재발을 예고한 인터뷰 전반부는 8월 첫 대면에서 오간 대화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 정부가 조사결과와 대책을 발표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불이 났는데 불을 안 끄고 덮어놨다. 불씨가 살아있는 거다.”

- 전문가를 총동원해 조사와 시험을 벌였다고 하지 않았나

“제대로 된 조사데이터를 공개한 것이 있나. 도대체 조사위가 뭘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기름에 불을 붙이면 불이 붙는다는 식이다. 불이 어떻게 하면 난다는 것과 화재원인이 무슨 상관인가. 사고조사보고서란 걸 내놨는데, 사고별 분석데이터가 없다.”

- 특정 전지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는 설(說)도 있다.

“억측일거다. 기업을 보호하는 건 실수를 해서 시간을 벌어주면 개선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번처럼 대형사고이고 피해자가 분명하다면 불가능하다. 물론 국익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두둔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건 개인이권이 걸려있어서 그런거다. 이번의 경우 그저 조사위 자체가 무능한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한 건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뿐이다.”

- 조사위를 잘못 꾸렸다는 얘기인가

“리튬전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섰다. 그리고 사고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이 조사위에 포함돼 있었다. 몰라서도 못하고, 뭔가 시인하자니 자기 잘못이 되니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책임자로 나섰다.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고 엉망진창이다. 5개월이면 시간은 충분히 준거다. 다른 사고조사도 그 정도 준다.”

- 세계 최고 배터리기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한국 아닌가

“세계 최강은 일본 파나소닉이다. 우린 리튬이온전지에 국한돼 있다. 다 이유가 있다. 전지산업 자체가 80년대 중소기업 보호산업이라 90년대 중반에 규제가 풀린 뒤에나 대기업이 신산업이라고 서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우리 전지산업은 기초가 약해 사고가 나면 항상 수습이 잘 안된다. 지난 10여년 사이 규모는 커졌는데 내실이 없다. 기술력 등을 포함해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파나소닉, 중국 CATL 그 다음이 우리기업들 정도다.”

- 화재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의심하는 화인(火因)은?

“확인된 건 없다. 다만 SOC를 100% 가까이 쓰면 안된다. 우리가 일반 스마트폰 배터리 SOC를 0~100%까지 쓰는데, 이렇게 완전충전‧완전방전하는 걸 딥사이클(Deep cycle)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쓰면 전지 수명이 금방 끝난다. 리튬이온전지의 특성이다. 완충‧완방전할 때 활물질 열화가 빨리 일어난다. 그 사이 구간에서 쓰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 그 기준으로 보면 현행 ESS 운영조건은 가혹하다

“바로 그거다. 이렇게 쓰면 안된다. 해외에선 그렇게 안쓴다. 그 사이 구간을 잘라서 쓴다. 물론 전지회사마다, 사업자마다 쓰는 패턴이 다를거다. 하지만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를 5.0이나 준다는데 당장 수익을 생각하면 0~100 구간을 돌리는 것과 20~80% 쓰는 것 중 어떤 걸 선택하겠나. 사업자들이 따르겠나.”

- 수많은 연구개발 인력을 보유한 전지회사도 이 점을 간과했을까

“몰랐으니 사고를 치지 않았겠나. 어찌보면 기능직 수준인데. 교수들도 모르는 사람 천지다. 유독 리튬이온전지가 그렇다. 자동차용 연축전지는 50~100% 구간을 써야 한다. 방전되면 아예 쓸 수 없다. 이런 건 소니가 90년대 중반에서 연구해서 밝힌 내용이다. 처음부터 연구한 사람들은 아는 내용일거다.”

- 정책을 추진할 때 정부가 사전에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행정고시 출신들이 뭘 알겠나. 어찌보면 이 지경까지 온 가장 큰 책임은 산업부 아래서 전문영역을 담당해 온 각종 협‧단체들에게 있다. 전지 부문은 전지협회가 문제다. 아무것도 모른다. 이번에 ESS 사고가 터져 맡기려고 하니 정부는 당황스러웠을거다. 말이 협회지 과거 전지조합을 협회로 키운거다.”

- 사고조사위서 모의실험도 했지만 헛심이었다.

“실험방법도, 유형도 맞는 얘기가 하나도 없더라. 심지어 불량과 결함의 차이도 구분 못한다. 불량은 특정 제품만의 문제이고, 결함은 광범위한 생산공정 문제다. 결함이라면 리콜해줘야 한다. 현재 상태로 법적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결함이라고 했기에 전지회사가 져야 한다. 불량은 그냥 교체로 끝나는 거다. 왜 결함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조사위가)그냥 아무말 대잔치를 했다. 전지시험 한다고 180사이클을 돌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도 하나로. 노트7 사태 때는 1000개 이상을 시험했다. 사고조사위 구성되기 전까지 났던 화재 현장부터 제품까지 확인한 것도 없다더라. 그냥 아무것도 안한거다.”

- 화재가 재발할 거라고 보나 ( * 추가화재 발생 전인 8월 중순 건넨 질문) 

“탐욕스런 업자들에 의해, 그리고 재생에너지 연계용 쪽에서 날거다. 주파수조정용(FR)과 피크부하 저감 쪽은 그래도 정상적으로 쓰니까 낫다. 그 쪽은 작업 실수나 기준을 지키지 않아 난 화재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연계용이다. 처음 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정책을 세팅할 때부터 잘못됐다. (SOC를) 낮춰 쓰게 해야한다.”

- 이대로 ESS를 운영하면 배터리가 얼마나 버틸까

“어느 순간 사업자들로부터 불만이 나오게 될 꺼다. 용량이 절반으로 줄 수도 있을테니. 무슨 배짱으로 지금처럼(딥싸이클로) 쓰는지 모르겠다. 적정 구간 안에서 써야 한다. 가량 재생에너지용처럼 하루 1 싸이클씩 365회 딥싸이클로 돌리면 잔량이 급전직한다. 10년전 사업기획 단계에서도 리튬전지를 ESS로 고려하지 않았다. 낮에 태양광 발전한 것을 왜 저장했다가 쓰나. 그건 송·배전이 꽉 찼을 때나 또는 독립형 에너지자립섬에서 쓰는거다. 시작부터 잘못된 거다. ESS를 어느순간 발전기로 인정하면서 REC 혜택을 주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모든 게 정책설계 문제로 귀결된다. 총체적 난국이다. 설계자들의 무능 탓이다.”

-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ESS)산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애초 재생에너지 연계용은 성립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사이클 횟수가 반복될수록 심각해지기 시작해지는 때가 머잖아 올거다. 그때부턴 도미노로 터질 수 있다. 그냥 셀이 고장나면 차라리 다행인데 화재로 이어지면 어찌되겠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당이 안된다. 애초 해선 안 될 사업이다. 아예 기저부하가 없는 나라에서 시도했다면 모를까.”

▲박철완 서정대 교수
▲박철완 서정대 교수

- 같은 배터리를 쓰는데 전기차 화재는 드물다

“전기차로 10만km를 달리려면 400km 주행가능 배터리에서 250 사이클 충전이면 된다. 또 주행하다가 언제든 중간중간 충전을 하니 전지성능 자체가 잘 유지된다. 그런데 태양광 ESS는 어떤가. 딥사이클로 365일 돌린다.”

- 애매모호한 조사보고서 탓에 보상논의가 쉽지 않다.

“국과수 보고서 등을 보면 일정 패턴이 있다. 그럼에도 법적 분쟁이 났을 때 근거로 사용될까봐 항상 뒷부분에 ‘직접적인 논단은 불가’라고 썼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배터리에서 전기적 발화가 있었다거나 랙(Rack)에서의 발화로 추정된다고 적시돼 있다. 발화지점 상당수가 배터리 모듈이다. 발화점이 왜 하필 배터리모듈인가, 발화지점과 발화원은 같은가, 그런 것들을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 위원회 구성했는데 눈치를 보면서 말을 바꾼다. 셀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파손된건가, 아니면 시스템 문제냐, 누적된 시스템 문제에 의한 셀 피로누적이냐 알아봤어야 했다.”

- 화재위험이 낮은 대체재는 없나

“리튬전지를 쓰는 이유는 현존 2차 전지 중 에너지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론 에너지밀도를 낮추면 안전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대체재 중 아직 그럴만한 전지가 개발된 게 없다. 리튬전지도 에너지밀도를 점점 높이면서 그 전에 쓰지 못하던 영역까지 쓰고 있다. 그런데 랩탑용처럼 소형 단셀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수천~수만개 단위로 가는 ESS는 장기성능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 전지회사들은 이제껏 그런걸 검증한 적이 없다. 그에 준하는 가속수명 사이클 테스트라도 해야 한다. 지금은 현장이 테스트베드다. 무서운 현실이다.

- 이 사태의 최고 책임자라면 어떻게 수습하겠나

“정부안에 책임질 사람은 전부 떠나고 애먼 사람들만 남았다. 아주 문제가 많은 조직의 형태 그대로다. 우선 주된 화재가 태양광이란 사실을 봐야한다. 태양광의 딥사이클 충‧방전을 불허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군(群) 별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SOC를 다시 차근차근 올려가며 한계를 파악하고, 화재가 나면 포인트를 잡아 허용치를 도출해야 한다. 그 뒤에 새 법적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그동안 전지회사들은 용량대로 판매하다보니 매년 성능을 개선한다고 암페어만 높여왔다. 사실 개발된 기술의 80% 수준으로 보수적으로 돌려야 한다.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가 그렇다. 오버클러킹으로 속도를 높일 수 있더라도 장기성능 안전성을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외서 ESS 화재가 드문 건 알아서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린 정말 무모하게 돌린다. 어쨌거나 이젠 출구전략을 고민할 때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 정부 스스로 제 머리를 깎을 수 있을까?

“큰 일이 벌어졌는데 아직도 공공으로서 할 일을 안 하고 있다. 자기 몸사리기, 자기보신 뿐이다. 공무원으로서 역할을 안하고 있다. 게다가 정권이나 정치권도 무관심하다. 우선 정치권이라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해 줘야 한다. 그 첫 관문은 국정감사다. 최소 문제제기가 제대로 있어야 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국회 차원의 협의가 필요하다. 애초 사고조사위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거다. 감사원 감사로 가서 사고조사위 전반도 들여다 봐야 하고, 그걸 토대로 수사로 확장해 정책 전반을 다 들여다봐야 한다. 산업부에 분명 기회를 줬음에도 안됐다면 국회가 해야 한다.”

- 조사가 이뤄진다면 사정당국은 살펴볼 부분은

“산업부가 제대로 절차를 밟아 정책을 추진했는지, 배터리 제조사들은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했는지, 시험인증기관들은 인증을 제대로 해준건지 등이 핵심이다. 그 중 첫 단추는 안전인증인데, 그걸 정부가 하면 안된다. 최종적으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기업이 인지하도록 해야 다시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 왜 정부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했나. 지금은 자체 해결이 안되는 단계다. 산업부는 자신들의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골든타임을 실기했다.”

-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어떤 배터리 회사들은 서로 송사를 벌이고 있다.

“ESS 화재가 계기가 됐을거다. 이 분야는 계속 적자를 내던 사업부문이다. 그 사이 제대로 된 보상이 없어 이미 분위기가 깨져 있었고, ESS정책으로 모처럼 수지가 좋아져 덕 좀 보려는 틈에 화재가 터지니 ‘디아스포라’ 신세가 됐을거다. 그런데 막상 규모의 경제 경쟁이 시작되면 가장 중요한 게 경험 있는 인력이다. 새로 직원을 뽑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증설 경쟁으로 가면 경험 있는, 숙련된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고 항상 사고는 그런 게 부족해 터진다. 소송을 건 쪽이 워낙 위기라 이렇게 할수밖에 없다는 강한 위기의식을 느꼈을거다. ”

- 국산 이차전지 산업의 미래는 밝나

"일본이 규모면에서 왜 한국에 따라잡혔나. 원래 리튬이온 원천특허는 일본업체 몫이었는데 특허료 인상을 요구하자 산요나 소니, 마쓰시타가 특허 무효화 전략을 폈다. 하지만 장벽이 사라지자 한국과 중국의 진입이 수월해졌다. 자기들 스스로 울타리를 부순거다. 지금 배터리 회사들 소송전은 과거 일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거다. 위기의식을 갖는 건 맞고 그게 단기적으론 옳지만, 중장기적으론 필사(必死)의 길이다. 국내 경쟁사가 아니라 중국기업에 이미 뒤처지고 있다. 경험과 기술력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박철완. HE is … ]

서울대 공과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전기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美 드렉슬대 기계공학과 초빙 조교수, 경원대 바이오나노학과 학연교수 등을 거쳐 산업부 차세대전지 이노베이션센터장,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전지 연구센터장 등을 지냈다. 미래형자동차 성장동력사업단 하이브리드자동차분과 기획위원과 산업기술혁신 5개년계획 차세대 전지 분과 총괄책임 등으로 정책기획에도 관여했다. 현재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과기부 직할기관 상임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산업부 전·현직 고위관료들 이름을 줄줄 꿸 정도로 부처 내부 상황에 밝다. 2011년 미래차 시장을 조망한 '그린카 콘서트(오토앤북스)'를 펴냈고, 2012년엔 새누리당 선대위에서 디지털종합상황실장으로 정치에 참여한 이력도 있다. 박 교수는 "지금은 특별한 지지정당 없이 양쪽 다 친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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