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긴급설명회 최대 2천억원 소요 안전대책 발표
"ESS 만드는 회사로서 우리가 더 해야한다고 결정"

▲삼성SDI가 국내용 자사 모듈(셀의 집합체)에 화재를 초기에 진화하는 특수소화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14일 태평로 긴급설명회에 동원된 모듈
▲삼성SDI가 국내용 자사 모듈(셀의 집합체)에 화재를 초기에 진화하는 특수소화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14일 태평로 긴급설명회에 동원된 모듈

[이투뉴스] 세계 5대 이차전지 기업(2018년 전기차용 기준)이자 국내 최대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공급사인 삼성SDI가 ESS 화재사태 진화를 위한 배수진을 쳤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대로 계속 화재가 발생하면, 시장의 신뢰를 잃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회복불능 상태로 붕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SDI(사장 전영현)는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허은기 시스템개발팀장(전무), 임영호 중대형전지사업부장(부사장), 권영노 CFO(부사장) 등 주요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설명회를 열고 ‘ESS화재 근절을 위한 고강도 안전대책’을 전격 발표했다.

작년부터 추진한 고전류‧고전압(Surge) 차단장치 부착 등 안전성 강화대책을 이달 내 완료하는 한편 국내에 이미 설치됐거나 새로 공급하는 모든 배터리 모듈(조립체)에 특수 소화시스템을 추가 적용해 예기치 않은 전지(셀) 발화가 전면적인 화재로 확산되는 걸 사전 차단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배터리 회사가 자사 제품에 화재를 상정한 소화시스템을 적용하는 건 국내외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일련의 연쇄 ESS 화재에 대한 삼성SDI의 위기의식과 그 대응수준을 방증하는 대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임영호 부사장은 “작년 5월 이후 배터리 관점에서 더 개선하고 안전성 확보할 것이 무엇인지 1년간 최선을 다했고, 이번 조치가 완료되는 이달 이후엔 지금과 같은 유형의 화재는 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ESS 안전에 대한 우려가 조금이라도 가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SDI가 공개한 특수 소화시스템은 발화상태에 도달한 셀이 화재로 진전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특정온도에 다다르면 자동으로 특수약제를 셀에 분사, 불꽃을 소화(消火)함으로써 문제가 해당 셀에 국한되도록 해준다. 부품화를 거쳐 이달초 생산한 모듈부터 내부에 장착됐다.

신개념 열확산차단재를 셀과 셀 사이에 삽입해 일종의 방화벽도 구축했다. 차단재는 800℃의 내열성능을 갖는 운모(Mica. 광물의 일종) 복합재질로 알려졌다. 소화약제 분사로 초기 불꽃은 잡혔으나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셀 열이 인접 셀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상상태의 셀 주변 온도는 최고 500℃까지 상승하지만 차단재를 삽입한 인접셀은 50~150℃ 이내로 온도가 제어되고 10여분 뒤에는 자연상태로 회복돼 열충격에 의한 전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이들 시스템이 정상 동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00% 충전된 모듈과 특정 셀로 자체 강제 발화시험도 했다.

▲허은기 삼성SDI 전무(시스템개발팀장)가 ESS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허은기 삼성SDI 전무(시스템개발팀장)가 ESS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허은기 전무는 “셀 내부 벤트(Vent. 오프가스가 배출되는 곳)가 터진 뒤 시스템을 미적용한 셀은 계속 열이 발생하면서 주위로 불이 옮겨 붙지만, 특수시스템을 적용한 경우엔 소화약제가 분사돼 초기불꽃을 잠재우고 내부 열이 식으면서 자동으로 화재가 차단된다. 최근 강화된 UL 소방법에서도 성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이들 소화시스템을 국내서 운용중인 1000여개 기존 사업장 ESS에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권영노 CFO는 "각 사이트마다 여건이 틀려 정확한 산출은 어렵지만, 대략 1000억원에서 2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가용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빠른시간내 조치가 완료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이미 기존 화재 피해보상에 230억원 가량을 투입한 상태다. 이번 추가 대책은 화재 원인과 관계없이 시장 신뢰를 회복시켜 ESS 생태계를 복구하는 게 최우선이란 경영진 내부 판단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앞서 작년말부터 삼성SDI는 기존 ESS에 과전압 차단용 SPD(서지방지기)와 과전류 차단 모듈·랙 퓨즈, 운송·취급과정의 배터리 손상 파악을 위한 충격감지 센서 등을 설치·부착했다. 또 배터리 이상신호를 감지해 운전 정지하는 펌웨어 업그레이드 등의 안전성 강화대책을 이달 내 모두 마무리 할 예정이다.

임 부사장은 "이렇게 하면 지금까지 경험한 이벤트(화재)는 다 막아질거라 보지만, (다른 원인으로 전혀 안난다고)아무도 장담은 못한다. 다만 이런식으로 불이 더 나면 산업자체가 붕괴되니 ESS를 만드는 회사의 책임과 의무로 우리가 더 해야한다고 결정했다. 해외 운영시스템은 이런 시스템이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SDI 측은 이번 조치가 국내용에 한하며, 자사 배터리 하자로 인한 리콜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임 부사장은 "현장을 계속 가보니 그냥 (배터리)관리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용측면에서 너무 열악한 곳이 많다. 10년, 20년 정상 운영될 것 같지 않아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리콜이 아니다"라면서 "우리 전지는 SOC(충전률)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한다. (조정은)안전성 조치하면서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응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선택과 집중이 돋보이는 조치로, 시장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송중 검지센서는 그동안 사각지대였던 배송중 이력까지 셀 전주기관리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확실히 엿보인다. 향후 장기대책으로 자체 실증형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1000여개 기존 운영 사업장에 특수소화시스템을 설치하고 제성능을 확보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란 우려도 니온다. 한 방재시스템 전문가는 "열폭주 이전에 정확한 이상감지가 중요하다. 새 제품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기존 ESS에는 어떻게 적용하겠다는건지, 정확한 센싱이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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