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한국혁신학회 회장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기생충’이 며칠 전에 진행된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수상까지 4관왕의 업적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룬 제작자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작년 5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에 실시된 여러 영화상 시상식 이후 이루어진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역시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기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어떻게 ‘공생’(또는 공존, 봉 감독의 인터뷰는 영어로 co-existence라고 했다)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어디에나 있고 또한 같이 지낼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성원들이기에 영화의 캐릭터 누구도 악당(villain)으로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말이다. 

국가의 구성에서 사회의 다양한 계층별 구성도 그러하지만 산업의 구조 역시 사회의 구조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양한 산업 간에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3D라는 용어가 사용된 지 오래이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여러 산업정책을 내어놓을 때 마다 혁신의 대상이 되는 산업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산업은 어떠할까?  선두에 서서 앞서가는 산업일까?  다른 산업들과 공생 공존하는 산업일까, 아님 기생하는 산업일까?  

공학 및 산업계를 대표하는 기관인 한국공학한림원이 우리나라 산업역사 100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산업의 대표적인 100장면을 선정,‘꿈이 만든 나라’라는 제목으로 작년 연말에 출판했다. 1970년대 까지는 국내무연탄산업, 원자로개발, 전력망, 정유산업, 파시르 석탄광 등등 에너지 산업분야가 여러 번 선정되고 있다. 그때는 에너지산업이 이른바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는 산업 중 하나였던 것이다. 1960년대 10대 수출품 중에 세 가지가 광물이며, 대한중석이 중석의 수출로 획득한 외화를 바탕으로 포항제철이 설립되는 등 수익률이 가장 높은 산업 중 하나였다. 

그런데 1980년대서 20세기말까지는 대표할 만한 장면에 별로 나오지 않는다. 천연가스 도입과 200볼트 승압 등이 전부이다. 그 이유는 에너지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industry)에서 국가의 제조업을 뒷받침 하는 공공부문(utility)으로 변화됐기 때문이다. 에너지산업의 산출물이 시장에서‘가격’으로 그 가치가 결정되기 보다는 정부에 의한 ‘요금’으로 설정됐다. 시장에 내다팔아 이윤을 추구하기 보다는 국내 제조업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생필품으로 싸게 공급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석유위기가 끝나고 국내 무연탄산업을 구조 조정할 때만 해도 공공과 민간이 함께 가는 공생 구조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산업을 정부의 통제 아래 놓으면서 산업으로의 위상을 잃어 갔다. 우리나라가 95%의 에너지원을 수입하고 99%의 광물자원을 수입하게 되는 것을 보고도 자체 사업을 육성하여 이윤을 창출하기 보다는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한 제조업들이 요구하면 손해를 보면서도 팔아야 하는, 제조업에 기생하는 산업으로 점차 추락하여 갔다. 

에너지산업의 위상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정반대로 산업으로의 변신을 꾀한다. 1997년 국내석유제품가격 자율화와 2000년의 한국전력 및 가스공사의 민영화 정책으로 촉발된 산업화는 2009년 해외자원개발 촉진정책에 이르기까지 십여 년 동안 진행됐다. 석유제품에 정부고시제도가 아닌 시장가격을 도입하고, 해외 에너지사업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그 덕분에 21세기 초반 국내 정유산업은 반도체에 이은 제2의 수출 산업으로 등극했으며,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장면과 함께 100장면에 선정됐다. 오랜만에 산업으로서의 위치를 찾은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2013년부터 다시 산업이 아니라 공공부문으로 후퇴한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실패가 빌미였고 에너지산업은 그만 악당의 역할을 하게 됐다. 현 정부 역시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반면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에 성공한 통신산업은 정보통신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의 부가가치를 크게 올려놓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미래에 있다. 에너지산업이 공공부문으로 계속 남아 있으면서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하락한다면 다른 산업이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도 그러했듯이, 다가오는 4차산업 혁명시대에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에너지산업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산업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룬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산업혁신과 정책혁신이 나오기를 바란다.  봉준호 감독의 쾌거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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