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원 원인 규명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

▲시험 중인 엔트로피 합급
▲시험 중인 엔트로피 합급

[이투뉴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살인로봇은 주인공이 쏟은 액체질소를 뒤집어 쓴 뒤 순식간에 냉각돼 총을 맞고 산산조각 난다. 저온에서 충격에 약한 금속의 성질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극저온에서 강한 '엔트로피 합금'이 네이처지(Nature)에 보고되면서 그 이유에 대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었다. 국내 연구진이 그 비밀의 열쇠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화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박원석)은 국내외 7개 기관 및 9명의 전문가와 함께 6년여간 연구한 끝에 엔트로피 합금이 저온에서 더 강한 이유가 적층결함에너지에 있음을 규명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진은 실증 연구를 통해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산업에서 흔히 쓰이는 스테인리스강 대비 45%에 불과해 일반적 금속과는 달리 저온에서 충격에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바둑판같은 격자구조의 점에 원소가 박혀 있는 결정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금속에 힘이 과도하게 가해지면 규칙적이던 원소배열의 격자구조가 깨어지면서 불규칙한 적층결함(stacking fault)이 생긴다.

이 적층결함이 발생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바로 적층결함에너지다.

그런데 엔트로피 합금처럼 적층결함에너지가 낮은 금속은 힘이 가해질 때 원소배열이 대칭적으로 놓이는 쌍정변형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쌍정변형을 거치면 금속 내 입자 크기가 더 작아져 단단해지고 충격에도 훨씬 강해진다.

연구진은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낮고, 이로 인해 저온일수록 쌍정변형이 더욱 쉽게 나타나 충격에 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원자력연구원과 해외 첨단 중성자과학연구시설을 활용해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를 더욱 정교하게 측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기존에는 전자 현미경으로 일일이 관찰하면서 에너지를 측정했다. 이때 소재를 절단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실험적 오류가 발생했고, 한 번에 머리카락 굵기(100 마이크로 범위) 정도만 관찰할 수 있어 실험 결과가 불완전했다.

반면 연구진은 중성자 빔을 이용해 원자보다 큰 밀리미터 단위 크기의 소재를 한 번에 측정했다. 또 실시간으로 변형 중인 소재를 측정하면서 변형 공정 중의 결함 변화를 측정했다. 100여회 이상의 반복 실험으로 신뢰도를 높였다.

시험용 엔트로피 합금은 에너지 직접 조사 방식(Direct energy deposition)의 3D 프린팅 기법으로 자체 제작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엔트로피 합금의 고도화와 산업적 활용에 새 길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향후 연 3조원 규모의 국내 극저온 밸브, LNG 저장탱크 및 액체수소 저온탱크 시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약 50조에 달하는 극지 해양플랜트 소재부품 사업에 기초과학적 기반지식 및 생산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수소자동차 등의 첨단 미래 에너지소재 분야 등으로 엔트로피 합금 적용분야를 확대하는데 기여할 전망이다. 

우완측 원자력연구원 양자빔물질과학연구부 박사는“이번 연구는 두산중공업-KIST-충남대, 울산대, 순천대 및 일본 J-PARC 시설 연구자들과의 협업으로 가능했다”며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연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올해 1월호에 실렸으며, 게재 후 한 달여 만에 전 세계적으로 600회가 넘는 논문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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