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사설] 그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소송을 벌여온 배터리 제조업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정보유출 싸움은 SK의 패소 판결로 가닥지어지고 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유출 관련 소송판결문에 따르면 SK측은 LG화학 출신 직원으로부터 양극재와 음극재 관련 상세한 레시피 정보를 빼냈으며 취득한 자료를 다른 위치로 모두 이동시키고 이메일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LG측은 지금까지 SK이노베이션이 직원을 빼가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배터리 공정기술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K측은 자연스러운 전직이었을뿐 기술을 빼간 것은 없다고 반박해 왔으나 이번 판결문은 SK이노베이션에 책임이 있음을 명백하게 밝혔다.

SK로 전직한 직원이 유출한 배터리 레시피 파일에는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 니켈·코발트·망간 등을 조합하는 비율과 함께 양극재와 음극재를 얇게 코팅하는 방법 및 이들을 일정 크기로 절단하는 방법 등 배터리 제조의 핵심비결이 망라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측은 이번 소송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3만4000개에 달하는 파일과 메일을 삭제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유출된 정보량은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SK는 LG화학 직원들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면접 과정에서 양극재와 음극재를 만들기 위해 고체 혼합물을 녹여 액상 형태로 만드는 슬러리 조성법이나 양극재·음극재 코팅속도 조절법 등 공정기술을 유출했다는 것.

판결문은 특히 LG가 2017년 12월 대전지방법원에 자사 직원들의 국내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SK의 본격적인 증거인멸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증거인멸은 LG화학 출신 직원이 삭제한 리스트가 남아 있는 휴지통을 비우지 않은 채 자신의 컴퓨터에 담긴 파일 자료를 ITC에 증거로 제출하는 바람에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ITC의 최종 판결은 올 10월5일까지 나올 예정이나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최종 판결에서 관세법 위반 여부, SK의 미국내 수입 금지조치 등에 관한 결정이 나올 경우 SK가 폴크스바겐 미국공장에 배터리를 공급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작년 3월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16억달러를 들여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에서 관행처럼 돼 있는 사람과 기술 빼가기 등 전근대적 관행이 미국에서 철퇴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최종 판결은 양측은 합의 여하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국내 기업끼리 미국에 나가 소송전을 벌이는 등 추태를 보인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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