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그린뉴딜] 신재생 보급사업, 실적만 챙기고 관리 無
수도권 보급시설 직접 확인해보니 고장·미가동 '애물단지'
가정·상업용 대부분 'OFF'…"자기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나"

▲1kW 연료전지가 모든 세대에 설치된 강화군 한 공동주택. 가구당 3200만원을 보조해 연료전지를 설치했으나 운용하는 가구가 없다. 사진 우측은 한 가정내 베란다에 방치된 연료전지.
▲1kW 연료전지가 전세대에 설치된 강화군 소재 한 공동주택. 가구당 3200만원을 보조해 연료전지를 설치했으나 현재 운용하는 가구가 없다. 오른쪽 사진(사각안)은 한 가정 베란다에 방치된 연료전지다.

[이투뉴스] “제발 저 애물단지 좀 어떻게 해주세요. 베란다 공간만 차지해 세탁기도 못 바꾸고 있는데, 정부 돈 받고 한 거라 떼지도 못한다네요. 연료전지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해.”

김옥순 할머니(68)가 주방과 연결된 베란다 안쪽을 가리키며 진저리를 쳤다. 폭이 1.5m 남짓한 베란다는 각종 세제와 반찬통, 가스버너, 식자재 등으로 빈틈이 없다. 업소용 냉장고 크기 연료전지가 안쪽 공간을 차지하면서 그만큼 세간 놓을자리가 줄어서다. 연료전지는 꽤 오래전 가동을 멈춘 듯 전원플러그가 빠져있고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 쓴 상태다.

김 할머니는 “분양할 때부터 이 빌라에 저게 집집마다 설치돼 있었는데, 전기료나 가스비를 줄여준다더니 효과가 전혀 없어 지금껏 쓰지 않고 있다"면서 "이 동네(빌라)에서 저걸 쓴다는 집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강화군 강화읍 J빌라. 8세대 4개동 32세대 모두에 D사(옛 'F사')의 1kW 가정용 연료전지가 설치돼 있다. 2015년 건축 당시 건축주가 정부 주택용 연료전지 보급사업으로 보조금을 받아 설치한 뒤 분양 때 이를 입주자에 양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연료전지 보조금은 kW당 3200만원. 신(新)에너지를 확대 보급한다는 명분으로 32세대에 집집마다 대형승용차 한 대 값을 지원한 셈이다.

하지만 이날 확인한 이들 설비는 애물단지이자 고철신세다.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임모 씨는 “이사 올 때부터 꺼져 있어 연료전지 회사에 전화해 물어보니 '한 달 전기료가 15만원 이상 나오지 않으면 안 쓰는 게 낫다'고 했다"면서 “다 세금인데, 나랏돈을 쓰려면 효율적으로 잘 써야하고, (수혜를 받는 국민이)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수소·전기차와 함께 한국판 그린뉴딜 사업의 한 분야로 거론되는 연료전지 운용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도권 일대 일반 가정과 공동주택, 건물용 상업시설 등 3곳을 직접 둘러봤다. 공교롭게 3곳 모두 경제성이나 성능불만족을 이유로 설비를 가동하지 않았고, 공히 "가능하다면 당장 연료전지를 철거하고 싶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수도권 B시 C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47)씨는 부모님을 위해 연료전지를 설치했다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경우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와 고혈압 등의 지병으로 바깥출입이 어려운 어머니가 전기료 부담없이 에어컨 등을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2017년 7월 1kW를 설치했다. 

하지만 2년간 연료전지는 수시로 고장나 명절에도 속을 썩였고, 가스비 증가로 에너지비용 부담은 이전보다 늘었다. 이 설비에도 정부 보조금 2300만원이 들었다. 결국 김씨는 작년 4월부터 연료전지 가동을 전면 중단했고, 현재는 비좁은 베란다를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김씨는 "도시가스 직원이 보조금이 나와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했고, 시공사도 공사가 끝나면 자기부담금 1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완공 후 언제 그런말을 했냐며 발뺌 했다"면서 "아예 꺼놓으니 오히려 속 편하다. 누군가 가정용 연료전지는 설치한다면 뜯어말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리만 차지하는 걸 보면 속이 터진다. 원상복구 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사우나 지하 설비실에 미가동 상태로 방치돼 있는 20kW규모 연료전지. 정부보조금 6억원이 투입됐으나 가스보일러보다 비용이 과다하게 들어 채 2년도 사용하지 않고 가동정지했다.
▲수도권 한 사우나 지하 설비실에 미가동 상태로 방치돼 있는 20kW규모 연료전지. 정부보조금이 6억원이나 투입됐으나 가스보일러보다 에너지비용이 과다하게 들어 채 2년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돼 있다. 올해도 건물용 연료전지 보급사업에만 50억원 투입된다.

설비용량과 보조금이 큰 건물용도 사정은 마찬가지. 같은날 J빌라에서 50여km 떨어진 수도권 B시 주상복합건물내 A 대중사우나. 2층 560평 규모 사우나에서 사용하는 온수를 캄캄한 지하 5층 설비실에서 온수전용 가스보일러 6대로 공급하고 있다. 평균 5~15℃인 수돗물을 34~35℃까지 데우는데 쓰이는 도시가스비는 하절기 기준 한달 300만~400만원, 동절기엔 800만원까지 든다.

19년째 사우나를 운영하는 양모 사장은 '매달 100만원씩 5년간 60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연료전지 사업자 설명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지하 5층에서 지상까지 공기 배관과 열배관 4개를 뽑는 난공사와 상가동의를 무릅쓰고 2015년 5월 D사 10kW급 연료전지 2기를 설치했다. 여기에도 kW당 3000만원씩 모두 6억원이 정부 보조금이 쓰였다.

하지만 이날 지하실을 방문해 직접 확인한 연료전지는 세상과 격리된 채 방치된 고철에 불과했다. 양 사장은 "정부가 지원하는 에너지절약 사업이라 장소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해서 설치했지만 물이 1~2시간동안 서서히 데워지는데다 처음 가동할 때 전기가 많이 소비돼 쓸수록 손해"라면서 "비용이 절감된다면 쓰지말라고 해도 쓴다. 정부 보급사업이라 돈도 별로 안들이고 했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는 "에너지절약을 위한다지만 이런식이라면 대기업사업만 만들어주고 공적자금을 날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료전지 공급사 측은 전기료 누진제 완화 조치 등이 연료전지 경제성을 악화시켰다는 입장이다.

D사 수도권 영업서비스 부문장은 "초기엔 열수요가 적은 곳이라도 업계 전반이 보급을 늘리는데 급급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2018년 이후로는 열 사용량이 충분한 사우나나 목욕탕 위주로 보급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용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완화하면서 경제성에 문제가 생겼다"며 "제조사만의 문제라기보다 우리나라 전기·가스 요금체계 전반의 문제다. 독일의 4분의 1 수준인 전기료를 정상화하지 않는 한 연료전지 경제성 확보는 요원하다"고 해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정부가 주택용 연료전지 보급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787억원이다. 별도의 건물지원사업에도 2018년 29억원, 지난해 50억원, 올해 49억5000만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3GW규모 가정용 및 상업용 연료전지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들어선 그린뉴딜 사업의 한 축으로 연료전지 확대보급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보급사업으로 전국에 설치된 주택용·상업용 연료전지의 약 90%는 고장이나 경제성 저하로 운휴 중이란 게 업계와 당국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와 관련 에너지공단은 작년 상반기 전국 본부별로 연료전지 운용실태를 내부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그런 조사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정책 전문가는 "지열이나 태양열, 일부 태양광 보급사업도 유사한 문제가 많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는 안된다"면서 "보급정책의 근본으로 돌아가 기술기반 아래 보급속도를 조정하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전문기업 관계자는 "10년 넘게 보급사업을 하고도 관련 시설 가동상태나 폐기여부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자기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냐"면서 "각 부처 보조금 사업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직무유기이자 범죄행위"라고 직격했다.

<강화·경기·인천=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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