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난치병은 치료가 아니라 관리가 포인트다. 제때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병세가 위중해지고, 그러다 한 번 더 방심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건강이 악화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에너지전환기와 맞닥뜨려 골든타임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우리 전력산업과 시장의 처지가 딱 그렇다.

지금까지는 관치의 힘으로, 요행으로 잘 버텨왔다. 숱하게 모르핀주사도 놓고 각종 대증요법을 다 써봤다. 그런 사이 처방전으로 쓰인 전기사업법과 하위 시행령 및 고시는 누더기 법전이 됐다.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전력시장 운영규칙은 어떤가. 온갖 수학기호와 지수를 총동원해 수십 년 종사자도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 흡사 각종 생명유지장치와 링거주사를 주렁주렁 매단 중환자다. 잠깐 한눈을 팔면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안정적 공급도 망가질 위기다.

당연히 이 단계에선 지금까지와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 필요하다면 개복수술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라 이국종 아주대 교수처럼 과감한 중증외상 전문의가 필요한 때다. 진즉 기능을 상실한 변동비반영시장(CBP)과 정산조정계수를 서둘러 적출해야 하고, 인체의 혈관에 해당하는 전력망도 신축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 한가하게 탈원전 논쟁을 벌이거나 한전 재통합 같은 되도 않는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 정부나 전력당국을 보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갓 의대를 졸업한 수련의다. 환자는 숨이 넘어가는데 장관과 국회가, 대통령과 국민(여론)이 모두 수술동의서에 서명해야 메스를 들겠다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중에 살 수 있도록 해야 진짜 의사가 아닌가. 최소 5년 단위, 가능하다면 10년 단위 산업·시장 재편안을 누군가는 그려야 한다. 최근 전력거래소가 1단계 단기 도매전력시장 개편안을 내놨다. 이런 속도라면 사후약방문이 될 공산이 크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