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부하추종운전 사실상 불가능·위험
출력감발도 사전검토 미흡 규제도 불비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3,4호기(좌측 돔) 전경. 5월 첫 출력감발을 시행한 원전이다. 우측은 신고리5,6호기 건설 현장. ⓒ한수원 새울원전본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3,4호기(좌측 돔) 전경. 5월 첫 출력감발을 시행한 원전이다. 우측은 신고리5,6호기 건설 현장. ⓒ한수원 새울원전본부

[이투뉴스] 전력망의 수요-공급 평형 유지를 위해 전력당국이 지난 5월 전격 시행한 원전(신고리 3,4호기) 출력감발을 놓고 안전성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본지 5월 18일자 1면 ‘전력계통 초유의 원전 출력 감발’ 기사 참조) 100% 전출력 운전에 최적화 된 원전의 출력을 임의로 낮추거나 높이는 행위가 원전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원전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표적 경직성 전원으로 알려진 원전은 가스터빈이나 양수발전기처럼 변화하는 전력수요에 따라 수시로 발전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부하추종운전(Load-following)이 사실상 어렵다. 발전량을 줄이거나 늘리려면 우선 원자로 내 핵분열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핵연료 제어봉을 넣고 빼거나 붕산을 주입하는 게 가능하지 않고 적잖은 위험이 뒤따라서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원전도 발전설비이므로 이론상으론 출력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면서 “하지만 기저부하로 건설한 원전을 우리가 (부하추종용으로)그렇게 활용해 본 경험도 없고, 그 영향에 대해 분석해 본적도 없다. 말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출력감발 과정도 위험천만하다는 견해다. 원전은 갑자기 출력을 낮출 경우 제논이란 제어가 매우 까다로운 핵분열물질이 급증하는데, 이 물질이 쌓이면 작년 5월 한빛원전 1호기 과출력 사고나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예기치 않은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그렇게 출력을 조절한다 해도 설비소재 열충격과 후단 터빈과의 출력균형 유지 등은 별개 문제"라면서 "기당 5조원짜리 원전을 경험과 지식 없이 출력조절용으로 쓴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EMS(전력계통운영시스템)와 연계한 부하추종운전은 아니지만 전력당국과 사전 협의해 서서히 출력을 낮추는 소위 ‘감발운전’은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일부 원전운영국 선례가 있다. 원전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프랑스는 전력비수기 고육책으로 특정원전 출력을 낮추고 있고, 미국의 경우 엑셀사가 운영하는 프레어리아일랜드(PI) 원전과 몬티셀로 원전이 현지 계통운영자(MISO)와 협의해 최대 75%까지 출력을 낮춰 시험운영한 경험이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미국에선 경부하 때 전력을 생산할 경우 오히려 계통운영기관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PI원전은 올해 6월 정기검사에서 적절한 안전성 평가 없이 작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30번에 걸쳐 출력감발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미국핵규제위원회(NRC)의 중지명령을 받았다. 한때 50여기가 넘는 원전을 가동한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두 차례 출력조정 시험을 시도했으나 이 사실이 공개돼 전국적인 반대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일본은 현재 원전 출력제한 없이 태양광 출력제한으로 비상 시 수급균형을 맞추고 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프랑스는 인허가를 받은 설비에 한해 20% 안팎에서 출력을 조절하고 있지만 핵연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출력을 조정한다”면서 “국내의 경우 중수로는 기본적으로 부하추종이 가능하고, 경수로는 운영허가 때부터 이에 대한 인허가를 받지 않았다. 제한된 범위내 출력감발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본다”고 말했다. 실제 중수로 원전인 월성 1호기는 1980년대 4% 이내 출력변동을 1200회 가량 수행, 핵연료 이상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교수는 "출력을 내리고 올리더라도 속도제한이 있다. 너무 서두르면 설비에 스트레스를 줘 큰 문제가 된다"며 "기본적으로 원전은 저출력일수록 위험이 증가하고 애초 100% 출력을 전제로 운영하는 설비여서 출력제어 실패는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지난 5월 전력거래소는 한국수력원자력과 사전협의해 신고리 3,4호기 출력을 600MW 가량 감발운전했다. 연휴기간 전력수요가 연중 최저치까지 떨어졌을 때 불시 고장사고가 나더라도 계통주파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출력감발이 원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안전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조차 관련 기준을 갖추지 않고 있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최근 출력감발에 참여한 원전 ARP1400의 참조설계모델인 CE사 System80+는 1997년 미국 NRC 설계인증을 획득했으나 모두가 외면해 한번도 건설·운영된 사례 없이 2008년 인증이 소멸됐다"면서 "이는 우리가 참조할 감발운전 사례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감발운전이 가능한지 자체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기관이 이를 허용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비중확대에 대응해 적정규모 유연전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론 원전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수요에 맞추어서 일정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전력시스템에서 재생에너지의 출력이 변화하는 만큼 기존 발전기가 실시간으로 이를 보완해야 하는데, 원전은 출력조정에 따른 원자로 안전 문제로 고정출력 운전을 해 비중이 높으면 실시간으로 수급을 조정하기 어렵고 단위용량이 커 고장 시 계통 안정성에 큰 영향을 주므로 운전 중인 원전 양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만약 안전상 문제로 발전기의 출력을 줄이기 어렵다면 원전 정지가 불가피하다. 원전은 출력 변동의 경직성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와는 서로 보완재 관계가 아니라 대체재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고립계통이어서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력계통이 감당할 충격이 다른나라보다 크다"면서 "그럼에도 전력시장은 보조서비스(AS)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가계통에 어떤 전원이 도움이 되고 안되는지를 따져본 뒤 그게 걸맞은 보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