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구조개편의 단초는 발전부문 경쟁도입이라는 틀에서 1990년대 4기의 민자발전 도입에서 비롯되었다. 구조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규모의 경제’, 공기업의 비효율성, 발전사 매각과 진입허용을 통한 민간자금 활용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IMF 극복을 위한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1년 전격적으로 시작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불과 2년 후인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잠정 중지되었고 지금까지 17년 간 오도 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 외관상으로는 발전경쟁, 전력시장, 망운영자 등 그럴듯하나 몇 개의 민간발전사업자(IPP)가 추가 진입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19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규제완화와 ‘비개입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많은 선진국들이 전력산업 규제완화를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했고 이어 중남미, 아태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대체로 독일, 이태리, 스페인 등 우리와 비슷한 산업구조를 유지하던 국가들은 전력회사 소유 발전사 매각을 통해 경쟁구도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미 다수 전력회사로 분할된 미국은 전력회사 송전망에 대한 ‘제3자 접근’(open access)을 허용함으로써 IPP가 자유롭게 전력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보다도 늦게 시작한 일본은 10개로 나누어진 지역독점 전력회사 중심에서 발전사업자의 전력판매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우리가 벤치마킹했던 영국, 호주 등은 발전과 판매를 완전 분할하여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M&A 과정을 거쳐 지금은 6개 발전사 10여개 지역공급사로 재편됐다. 

사실 우리의 발송배전사업 수직분할은 법으로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을 금지하는 독특한 구조이다. 2009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판매사업 경쟁은 멈추었고 한전의 판매독점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전은 현재 송전 및 배전 판매사업자이면서 발전자회사 6개사를 100% 소유하고 있어 실제로는 발송배전 통합전력회사나 다름없다. 발전자회사를 통해 원전, 석탄, 가스복합,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발전사업 운영과 투자를 하고 있으며, 해외사업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근래 들어 전력산업 재통합이나 한전의 발전사업 허용 등 근본적으로 전력산업 개편과 관련된 이슈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특히, 신재생발전 확대의 일환으로 한전의 인력이나 경험, 망운영자로서의 장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전력산업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국내 신재생사업의 비효율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부존자원과 입지문제, 난립한 사업자, 과다한 간접비용 등에 기인한다. 외국의 경우 주택 건물에 설치된 설비는 대부분 자가발전이며, 재생에너지 IPP는 유휴지나 황무지에 설치하는 대규모 설비에 주력한다.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은 이들 재생에너지 IPP의 경쟁력에 달려있다. 우리의 대규모 재생에너지사업은 대체로 발전사, 금융사, EPC, 지자체나 공기업이 SPC 형태로 진행된다. 설비준공 후 정부가 제공하는 구입방식에 따라 투자비를 회수하고 발전회사가 운영하는 구조다. 특히, 발전회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신재생 SPC를 통해 RPS 의무량을 충당하고 제반비용을 회수한다. 이러한 투자, 운영, 비용전가 및 보상체제에서는 경쟁력이 확보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신재생공급량이 늘어 인증서(REC) 가격이 떨어지면 사업성 악화를 이유로 수요량 즉, 정부 입찰물량을 늘려서 가격을 떠받치는 시장개입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과잉투자, 초과수익의 유인을 가지고 시장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높은 재생에너지 공급비용과 보조금인 REC 가격수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전력산업은 이제 양적 팽창이 어려운 시대다. 한전도 이제 발전이나 송전사업이 정체상태다. 밀양사태에서 보았듯 원거리송전망 신설도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제 원거리 송전수요도 재생에너지와 분산자원 확대로 점차 줄어들 것이다. 계통안정의 유지나 수도권 등 수급불균형에 따른 신규수요는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인력과 사업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 앞으로 전력회사 판매량이 줄어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선진국의 전력회사 판매량은 감소추세다. 각국의 에너지기업은 생존을 위해 과거의 틀에서 벋어나  사업다각화와 비즈니즈모델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전력산업 구조를 새로운 시각에서 짚어보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전력산업이 나가야할 방향과 원칙이 선행되어야 한다. 간추려 보면, 첫째, 전력산업의 구조를 독점, 또는 소수로 제한하기보다는 다수 참여자로 문호를 넓혀나가야 한다.  단지 몇 개 전원과 전력망을 통해 독점 공급자에 의해 운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자원과 기술은 무수히 많아졌고, 수요와 공급, 전력과 비전력이 통합되는 추세다. 둘째, 에너지에서 지자체나 지역사회의 책임과 역할이 커져야 한다. 물, 전기, 가스 등 필수재화를 공급하는 기능을 통해 에너지 분권이 진행되면 전력설비를 둘러싼 지역갈등이나 기피현상도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셋째, 한전에 발전과 판매를 겸업을 허용과 동시에 여타 발전사나 진입자도 발판겸업이 가능하도록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전력판매부분의 새로운 서비스와 일자리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원래 계획에 있던 발전자회사 매각이 이루어진다면 발전부문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마이클 포터는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인을 ‘개별 경제주체의 효율성과 역동성에 토대를 둔 패러다임 전환’에서 찾고 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경쟁도입에 따른 시스템운용이나 공급 안정성 등 기술적인 문제는 이미 대응책이 만들어졌거나 앞으로 해결될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의 재편을 통해 혁신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