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부서들 정지원인 규명 및 조사 '뒷짐'
전기위원회도 '신뢰도 위반 아냐' 물러서

[이투뉴스] 산업통상자원부와 전기위원회가 자칫 대규모 광역정전과 안전사고를 초래할 뻔 했던 ‘원전 6기 동시 정지사건’을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없이 어물쩍 덮고 가려하고 있다. 산업부는 계통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와 원자력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을 관할하면서 안정적 전력수급과 계통운영을 책임지는 부처이고, 전기위원회는 계통운영에 관한 감시를 담당하는 기구다.

본지가 산업부 전력산업과·에너지안전과·원전산업과·분산에너지과 등에 확인한 결과 정부는 이번 원전 다수호기 정지사건과 관련해 별도 원인규명이나 조사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 A과장은 “그 사안은 원자력안전법상 원자력안전위원회 소관”이라고 했고, B과장 역시 다른 부서명을 거론하며 “그쪽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진행사항을 알아보겠다”던 C과장은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태풍으로 닷새(3~7일) 사이 전체 원전의 4분의 1(5300MW)이 정지하고 이중 4기가 디젤발전기로 비상 냉각하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음에도 에너지 주무부처 어느 곳 하나 이를 제대로 챙기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전기위원회도 '먼저 나서기 애매하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강승진 전기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심각성을 인지했고, 중대한 사안으로 본다”면서도 “법령을 검토했으나 결과적으로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어서 위원회 (조사)권한이 있는지 봐야한다”고 말했다. 

전기사업법(제17조 2의 4)은 전력계통 신뢰도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산업부 장관이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전 4기가 시차를 두고 멈춘 지난 3일 최저 주파수는 신고리 1호기가 처음 정지한 때의 59.84Hz였다. 정부 신뢰도 고시기준(60Hz에서 ±0.2Hz)을 가까스로 넘겼다. 그나마 전력수요가 하루 중 가장 적은 시간대라 파급 영향이 적었다. 

만약 피크시간대였다면 주파수 급락으로 변전소내 저주파계전기(UFR)가 동작해 광역정전으로 이어질 뻔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모 대학교수는 “30년 가까이 일한 사람도 원전 6기가 이렇게 취약하게 나가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주간 피크 때였다면 상상하기 싫은 (정전)상황이 전개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원안위 차원의 조사를 전력계통 전문가가 참여하는 범부처 합동조사로 전환하거나 산업부 차원의 별도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전설비만 들여다보는 원안위 조사로는 계통을 포함한 명확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3일 새벽의 경우 원전 이외 3개 가스발전기와 36개 송·변전설비까지 크고 작은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다년간 전력관제 업무를 수행한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수원 설명대로 고장이 염기(소금)에 의한 것이라면 왜 주변의 더 많은 한전설비에선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원안위가 그런 부분까지 알 수 없다. 관련 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해 원전기동과 정지에 관련된 모든 절차나 발전사 대응, 실시간 복구 적절성까지 점검해야 다음에 같은 사건이 발생해도 대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발전사는 관제업무에 적극 협조해야 하지만, 한수원은 관행적으로 급전지시 바깥에 있는 발전기인냥 비협조적이어서 신속한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면서 "별것 아닌 사건을 침소봉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초강력 태풍이 원전지역 인근을 지날 것으로 분명히 예견된 상황에서 적절한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원안위 책임도 무겁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다수 호기가 동시에 정지하면 그만큼 비상발전기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을 확률도 높아진다"면서 "역대급 태풍이 다가와 계통 등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면 불시정지 사태가 벌어지기 전 안전한 방식으로 원전을 세웠어야 했다. 사건 전·후 원안위 대응은 나태하기 이를데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주 소재 터키포인트원전은 1992년 허리케인 엔드류가 상륙하기 12시간전 원자력규제기관인 NRC 지시로 수동정지했다. 만일의 계통사고로 원자로에 전력공급이 끊기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처럼 최악의 멜트다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NRC의 이같은 사전조치 덕분에 터키포인트 원전은 9000만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고도 닷새간 안정적으로 디젤발전기를 가동하면서 허리케인 위기를 모면했다. 국내 전력예비율은 원전 6기 동시 정지에도 불구하고 30% 안팎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박 교수는 "앞으로 자연재해는 더 세질 것이고 그에 따른 불시정지도 잦아질 것"이라면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지켜만 보고 있다가 사건이 벌어진 뒤 '한수원 조치가 끝나면 재가동을 승인하겠다'고 하는 게 우리나라 원자력 규제기관의 수준이다. 더 큰 사고의 전조가 아니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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