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2020년 수상한 기후 현상 : 긴 장마 뒤, 연속적인 태풍

2020년, 코로나 19는 압도적인 특이성으로 다른 이상 징후들을 덮고 있다. 그러나 50일 넘게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가 물러가자마자 초대형 태풍들이 연속적으로 한반도를 습격하고 있다. 이상 기상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기상청은 1~6월 시베리아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5도 이상 높아졌기 때문에, 한반도의 날씨가 크게 요동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상한 기상 현상의 기저 원인에는 ‘기후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올해 초 가장 큰 이목을 끈 전 세계적 재난은 호주의 대형 산불이다. 화재 지역의 면적은 한반도의 절반에 달하며, 50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으며, 일부 동식물이 멸종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기후학자들은 이 재앙의 원인 역시 기후변화라 말한다. 지난해 호주의 평균기온이 관측역사상 가장 높고 가장 건조했는데, 이를 기후변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선 번개로 인해 20여 개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고, 이 중 가장 큰 2개는 해당 지역 역사상 2~3번째 규모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위터에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다면 캘리포니아에 오라”는 글과 함께 검은 연기가 자욱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2020년은 고난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블랙스완(black swan)의 발현인 코로나19와 함께, 그린스완(green swan)의 서곡을 알리는 기후변화가 야기한 자연재해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태양광, 풍력 그리고 원자력?

기후변화가 야기한 오랜 장마와 3차례의 태풍으로 여기저기 설치된 태양광 설비가 망가지고, 얼마 있지도 않은 육상 풍력발전기가 태풍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가 기후변화에 취약한 발전원이다”고 목소리 높이며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비판한다.

한편 지난 9월 3일 9호 태풍 마이삭(MAYSAK)으로 고리원전 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가 멈추고, 10호 태풍 하이선(HAISHEN)으로 월성원전 2,3호기 마저 멈추자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커졌다. 일부에서는 “기후위기에 원자력발전소는 대안이 아닌 위험이다”며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 방증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주장 모두가 타당하다면, 우리의 에너지 정책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재생에너지 확장일까?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원자력 건설에 나서야 할까? 특히, 2020년 현재 전 세계 발전원 투자액 중 66%(국제에너지기구 기준)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집중되어 있는데, 방향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기후변화 대응 : 이산화탄소 감축과 재해 대응력 강화

기후변화 대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탄소 감축을 통해 기후 변화 발생 원인을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행히도 계속 거세질 기후 재앙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데 있다. 

저탄소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 모두 그 효과성이 인정받는다. 그러나 재난·재해 대응 측면에서는 어떤지 보다 세부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경험처럼, 태풍은 물리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대형 건물에 있는 일부 유리창과 시설을 파손할 수 있지만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작은 주택과 수많은 소규모 시설물을 완전히 망가뜨리기도 한다. 동일한 논리가 발전 시설에 적용될 수 있다. 원자력 발전기와 같은 대형 발전 시설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지만, 발전소 부지 내 전력 설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발전과 같은 소규모 시설물 일부는 망가뜨릴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며칠간 멈춰 섰을 뿐이지만 태양광, 풍력 설비는 완전히 망가졌기에 기후변화에 더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과연 타당한 생각일까?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 바라보면, 부서진 태양광, 풍력 설비는 전체 시스템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매우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 또한 2018년부터 정부는 재해 취약 지역인 산지에 태양광 설치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신규 설치는 급격히 감소했다. 물론, 점차 거세질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전 기준이 더 상향될 필요가 있다.

반면 원자력 발전은 파괴가 아닌 멈추어 섰지만, 전체 전력 계통에 끼치는 파급력이 클 수 있다. 원자력 발전기는 대형 설비로 그 용량이 보통 1GW에서 1.4GW에 이르기에 운영이 중단되면 전체 전력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3일 안전을 위해, 운영이 정지된 원전 4기는 전체 전력 수요의 7%인 4.13GW의 출력을 내고 있었다. 태풍이 예고된 상황이라 이를 대비하기 위한 예비력을 충분히 여유 있게 준비하여 블랙 아웃(Black Out) 혹은 순환 정전 등의 대형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재난/재해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떨까? 특히 우리나라 원전 설비는 부산, 울산, 경남 등 특정 지역에 원전이 다수 설치되어 있어, 초거대 태풍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기 공급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시스템 운영 관점에서 우리의 원자력 발전의 설치 지형은 재난/재해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후재난에 취약하기 때문에 태양광과 풍력 확산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은 매우 부적절하다. 재생에너지 확장은 전 세계가 함께 가는 비가역적인 방향이기에,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게 확장하고, 더 안전하게 운영하는 방법은 없을지에 대한 논의와 정책 수립이 시급히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 경제성 문제와 불피해 원칙(Do no harm)에 따라 기로에 놓여 있는 대형 가압경수로에 대한 투자보다는 미국 민주당 바이든 진영의 그린뉴딜에 포함된 재난 대응력과 안전도가 높은 소형원자로(SMR) 기술에 대한 R&D 관점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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