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경제 성장을 이끈 에너지, 미래를 위한 선결 과제 : 전력시장 개편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에너지 지형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일단, 수요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통계(2018년 기준)에 따르면, 1차 에너지 수요는 282.26Mtoe, 전기 소비는 571.93TWh인데, 이는 각각 1990년 대비 203.80%, 462.15% 증가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08.96%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경제 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써 에너지 수요가 많이 증가했고, 그 중심에는 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역시 605.78Mt로 161.33%나 증가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세계 7위(2017년 기준)에 해당하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사회 구조가 경제규모 대비 화석연료 의존도(1차 에너지 공급량의 85%)가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에너지 산업, 전력산업이 나아갈 길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확장이 필요하다. 2017년 이후, 태양광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으나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이 2.6%(2019년 기준)로 주요 44개국 중 31위로 여전히 후발 국가에 포함되며, 발전 용량 확대를 지원하지 못하는 제도, 전력 시스템의 한계로 지속가능한 확장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후진적인 전력시장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월 26일 <한국 에너지정책 국가보고서>에서 한국의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비효율적인 ‘전력시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전력 부문은 단일 구매자로 구성된 의무적 풀(Mandatory Pool)로 운영되고, 도소매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결정한다. ­… 그린 뉴딜의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제도적 장벽을 해소하고, 보다 유연한 에너지 시장 도입이 필요하다.”

 많은 국내 여러 전문가가 지난 15년 동안 반복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해외 분석 리포트에서 재확인한 셈인데, 국가 거시적 발전 방안으로 저탄소 경제를 위한 ‘그린뉴딜’ 계획은 수립했으나 근본적 틀은 접근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상황을 적확하게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대담한 목표 탄소 중립, 근본적 문제 해소 없이는 전진도 없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농업 기반 사회에서 출발해 경공업, 중화학 공업, ICT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전하며 경제성장을 일궈온 우리 국민의 저력이라면 못해낼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배터리, 수소 등 우수한 저탄소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디지털 기술과 혁신역량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200년이나 늦게 시작한 산업화에 비하면, 비교적 동등한 선상에서 출발하는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 최초로 탄소중립을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12월 10일, 탄소중립 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통해 그 내용을 구체화했다. EU와 영국, 그리고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최상단 목표로 놓고, 저탄소 경제 전환을 장기 발전 방안으로 수립하는 세계적 추세에 드디어 올라탔다고 볼 수 있다. 

거시적 방향 발표 뒤에는 세부적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다만, 지난 ‘그린뉴딜’ 계획에서 수소·전기차 인프라 확장, 재생에너지 용량 확장 등 양적 확장은 명확하나 이의 효과적인 활용과 지속성과 확장성을 지원하는 제도적 과제와 목표가 생략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탄소중립 선언 이후의 세부 계획 역시 어려운 부분은 덜어내고 양적 확장과 예산 투입 내용 이외에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기반 수립인 선진적 전력시장 형성이 포함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앞서, IEA의 지적처럼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도매든, 소매든 자생력·경쟁력 모두 있는 체계라 보기 어렵다. 시장의 기본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의 중요 기능은 가격결정(Pricing)과 참여자의 효능과 인센티브 부여이며, 시장설계는 이를 위해 여러 참여자에게 3R인 권한(Right), 책임(Responsibility), 역할(Role)을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정부와 한전 및 전력공기업에 거의 모든 3R이 편중되어 있으며 에너지 전환을 이끌 유인을 제공하기보다는 임시방편적인 대책을 반복적으로 수립해왔다고 볼 여지가 많다. 에너지 전환 비용을 시장을 통해 해소하고,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를 수립해야 하는데, ‘전기요금 상승’을 비정상적으로 통제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이러한 행태를 지난 십수 년간 반복한 결과 현재의 전력시장은 기본 기능을 상실한 누더기 또는 만신창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전력산업과 그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지에 있다. 더구나 탄소중립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력산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이다. 전력산업은 그 탄생 이래 다른 산업 부분을 지원하는 기반사업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 결과, 전기의 도소매 가격책정은 기본적인 전력생산원가를 고려하되 경제 상황 및 기타 여건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력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성장의 중심이 되는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력산업 구성과 전력시장은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으며, 더 이상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은 크게 거시적 방향과 실행 계획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력시장 제도 개편 및 비합리적 구조 개편(정상화)은 장기 방향으로 미루는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다만,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뒤로 미뤄왔던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가 선언된 이상, 선진적 전력시장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역시 더 이상 뒤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전력시장 운영 방식이 과거의 관행을 따르면 따를수록 탄소중립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뿌리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대한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연료비연동제, 그린요금제, 실시간 가격 책정 등 선행시장에서 그 효과성을 입증한 제도들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탄소 중립의 긴 여정으로 갈 수 없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