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주장 근거를 대라" 풍력협회에 내용증명 발송
김종갑 사장은 회원사사장단 소집 간담회 요구로 뒷말

▲나주혁신도시내 한전 본사
▲나주혁신도시내 한전 본사

[이투뉴스] “일부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한 부분이 있어 한전의 대외 이미지 및 신뢰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붙임과 같이 명확한 근거 및 설명을 요청드리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민간사업자협회가 한전의 내용증명 공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달 7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전 발전사업 직접 참여 시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낸 것이 발단이다. 업계는 한전이 법적대응을 시사하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표명까지 입막음하려 한다며 공분하고 있다.

17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전 신재생사업처는 이달 14일 나주 빛가람우체국에서 한국풍력산업협회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협회 성명문 관련 근거 및 설명요청’이란 제목의 내용증명우편물을 발송했다. 협회가 이 문건을 수신한 건 16일이다.

내용증명은 통상 수취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기 전 공적문서를 발송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4쪽 분량의 이 공문은 내용증명 요건을 갖추기 위해 간인(間印)도 했다. 언제든 협회를 상대로 법적대응을 시작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셈이다.

이 문건에서 한전은 일전 협회 차원의 성명서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각 항목마다 자사 입장을 적시한 뒤 협회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및 사례”, “주장하는 근거” 등을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가령 한전이 송전망 건설을 후순위로 해 대규모 발전사업 보류나 장거리 계통연계로 인한 사업성 저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일전 협회 주장에 대해 “현재까지 추진된 풍력사업 발전허가와 관련해 계통접속을 부당하게 지연시킨 사례는 없다”는 식이다.

한전은 이외에도 신설 해상풍력사업단을 초법적 활동으로 규정한 근거, 한전이 REC가격 정산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산기준가격을 무리하게 하락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CEO(김종갑 사장)가 두 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요청했으나 협회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며 '사전 공감대 형성 없이 전기사업법 개정을 시도 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대라'고 추궁하기도 했다.

앞서 김종갑 사장은 협회 성명서 발표 이후 비서진을 통해 협회 회원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간담회 마련을 요구했고, 협회 측이 각사 CEO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자 이에 격분해 직접 회장사 대표와 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성명서에 대한 이번 법적대응 시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전은 현재 모 여당 의원실을 통해 재생에너지에 발전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을 밀고 있다. 하지만 독점 판매사업자이자 송전사업자로서의 공정성 훼손 우려는 여전하다. 

업계는 전력산업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전이 민간사업자들의 정당한 목소리까지 제압하려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A 발전사 관계자는 "성명에서 협회가 제시한 문제들은 표현으로는 다소 거칠더라도 민간사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수긍할 내용들로, 억지주장인냥 일일이 근거를 대라는 반응에 말문이 막힐 뿐"이라며 "이런 한전을 상대로 수십번 간담회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대 한전을 상대로 맞붙어야 득 될 게 없다는 게 이 분야의 불문율이지만, 한전 참여가 미칠 파괴력이 워낙 크기에 기업들이 마지못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이번 대응 역시 한전에 반기를 든 이들을 향한 뒤끝 정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 한 회원사 관계자는 최근 김종갑 사장이 요구했다는 즉석 간담회와 관련, "사장들을 모아놓으라고 한다고 사장들이 모아지겠나. 이런 요구는 나중에 망신당할까 민간기업도 하청기업에게 하지않는 갑질"이라며 "한전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관계자는 "협회는 성명서 발표 때 사업허가 대비 지역 연결가능망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는데, 한전은 원거리라도 사업자가 부담해 연결하라고만 말하면 그만인 접속규정을 들어 계통접속을 지연시킨 사례가 없다고 논점을 피하고 있다"며 "이렇게 하면서 망중립성을 지키겠다는 말을 믿으라는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본지는 한전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하고 메모를 남겼으나 회신은 없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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