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 에너지전환
"데이터 소유주체는 소비자"

[이투뉴스/채영진]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전환은 올해 에너지 산업계 주요 화두 가운데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될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에너지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DT, Digital Transformation)의 중요성이 좀 더 자주 거론되고 관련 논의가 확산될 것이란 사실이다. 이는 에너지전환 논의가 보다 현실적이며 구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소비구조 효율화,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 분산형‧소비자참여형 에너지시스템 도입 및 확산 등으로 특징되는 에너지전환은 과거 중앙집중식 에너지시스템처럼 단순한 설비투자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너지생산과 유통 및 거래, 소비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에서 다양한 에너지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스템과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에너지데이터를 설비운영을 위한 단순 입력자료로만 활용하던 과거와 양태도 크게 달라졌다. 컴퓨팅 능력의 향상, 5G(5세대이동통신)로 대변되는 통신기술의 발전, 인공지능(AI) 및 클라우드의 확산 등 기술변화가 에너지공급-수요 체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수집-유통-활용에 대한 인식을 근원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전력소비데이터의 경우 전력산업 내부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데이터 활용에 한계가 있지만, 다른 산업부문의 데이터와 결합하면 매우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지고 경우에 따라 소비자에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과거 에너지데이터가 설비운영이나 통계수집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면, 최근의 에너지데이터는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그 활용도가 더욱 커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먼저 공급측면의 데이터 활용을 살펴보자. 공급단계의 설비운영 관련 에너지데이터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발전과 송전, 배전 설비 유지보수를 위해 관련 운영데이터(D)와 네트워크(N), 그리고 인공지능(A), 이른바 ‘DNA’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즉 에너지기업들이 그동안 활용하지 못했거나 활용도가 미미하던 공급단계의 데이터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 자산관리, 생산 효율 향상, 유지보수 효율화를 자동화‧고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사업모델 혁신이 결합되면 이것이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만일 사업모델 혁신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위의 노력들은 단순한 프로세스나 기능개선 등에 주력하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 기술 우대, 재생에너지 비용 반영, 연료비 연동제 등 전력산업 사업모델 개선이 디지털 전환에 중요한 이유이다.

또한 공급부문의 디지털 전환은 무차별적인 데이터 공유‧유통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공급 부문의 산업 데이터는 필연적으로 영업비밀 보호 이슈가 뒤따르기 때문에 개별공급 부문의 성공적인 모델을 다른 부분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무차별적인 데이터 공유보다 바람직한 데이터 활용 전략이라고 판단한 수 있다. 한편 소비부문의 에너지데이터는 공급부문과는 상이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소비부문은 타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이며 실제로도 가장 많은 에너지 신산업이 출현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에너지 신산업의 가장 큰 비중은 수요자원시장이었고, 이 시장에서는 수요 측 소비데이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부문 에너지데이터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를 염두에 두면서 최대한 다른 부문과의 융‧복합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아쉽게도 에너지 소비부문은 에너지 신산업, 산업간 융‧복합이라는 거창한 비전에 걸맞지 않게 에너지소비 데이터 활용이 지지부진하다. 실제로도 많은기업들이 에너지 소비자 데이터 활용과 관련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으나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소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관련 공기업들이 개인정보보호를 명분으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경쟁자 출현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민간기업은 에너지소비 데이터 취득 및 활용에 애를 태우고 있다. 가까스로 이를 극복한 일부 기업도 큰 틀에서 아직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사안마다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에너지소비 데이터를 통해 독창적인 사업모델을 개발하려는 기업 입장에 이런 현실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비록 데이터 3법 개정으로 인해 가명정보 활용 등이 더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에너지 신산업 관련 기업이나 신규 창업 희망자들에게 에너지소비 데이터 취득과 활용은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다. 에너지신산업을 육성하고,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정책방향과 현실은 딴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실마리는 에너지소비 데이터의 소유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에너지소비 데이터의 소유 주체가 이 데이터를 취득‧관리하고 있는 공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제3자가 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소비자 동의를 받는 절차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이 경우 제3자 활용을 위한 에너지 데이터 유지관리와 관련 비용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별도의 공적인 전문기관 설립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이 공적기관은 소비 데이터를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이관 받아 가명정보처리, 보안, 데이터 관련 서비스를 요청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에너지 신산업 확산과 산업간 융‧복합 촉진을 위해 관련 서비스를 매우 저렴하게 제공하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소비자 동의를 거친 데이터가 늘어나면, 소비 데이터 활용도 역시 증가할 것이다. 또한 독립적인 공공기관이 관련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데이터의 품질과 신뢰성도 매우 높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때 기존 에너지공기업들은 스스로 이 시장에 진출해 다른 기업의 시장진출을 억제하기보다 큰 틀에서 신규진입 기업들을 돕는 후원자나 마중물 역할에 주력하고,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너지가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돈이 흐른다’는 것이 과거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에너지가 흐르고 돈이 흐르는 양방향으로 데이터가 흘러가는 것’이 새 시대의 새 패러다임이다. 돈이 흐르지 않거나 에너지가 흐르지 않아도 큰 문제이지만,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로 잘 흘러야 한다. 에너지산업과 다른 산업이 융‧복합되면 돈의 흐름만큼이나 데이터의 흐름도 중요한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인프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필수 기반시설이다. 누구나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면, 혹은 경우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인프라다. 데이터도 마찬가지이다. 영업비밀, 개인정보호보 등의 법적 규율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에너지 생산-수송-거래-소비 관련 데이터가 어느 한 기업의 영구적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 자산이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렇게 될 때 디지털 전환이 에너지전환과 연계되고 그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채영진 박사 mahatma@kpx.or.kr

[용어설명] 디지털 전환 :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시키는 일을 말한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ICT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나 산업 및 시장을 창출한다.

수요자원시장 : '아낀 전기'를 파는 전력시장이다. 수요자의 자발적 참여로 전력 소비패턴을 조정하는 것으로, 수요관리사업자가 전기사용자(주로 기업)가 감축한 전기를 판매해 그 수익을 서로 나누는 방식을 시장을 형성한다. 전력수요가 높은 시기에 고비용 발전기를 대체해 전체 공급비용을 절감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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