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사)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 동국대 겸임교수(경제학 박사)

▲김태호 사)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김태호 사)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이투뉴스/김태호] 올해는 에너지, 산업,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대전환이 시작된 한 해이다. 그린뉴딜에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선언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50년까지 우리 몫을 해내겠다는 국제사회와의 확약이다. 이제 에너지 공급과 소비, 기업의 생산과 경영 모든 단계에서 탄소저감을 고려해야 하고, 시민들의 소비행태와 기업을 향한 사회책임이행 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이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기후보호의 녹색라벨이 따라 붙게 되는 셈이다.

2015년 197개국이 협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2도 아래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약속이다. 2018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낸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맞추려면 205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0’인 탄소중립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지했다. 그런면에서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기후협약 재가입과 탄소중립 이행의지를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 정부도 잰걸음을 걷고 있다. 2025년까지 녹색전환에 30조1000억원, 저탄소·분산형에너지에 35조8000억원, 녹색기술 확보에 7조6000억원 등 그린뉴딜분야에 모두 73조4000억원을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또한 대통령은 탄소중립 이행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도국가로 도약을 꾀하자고 강조했다.

여러 그린뉴딜 수단 중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는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보급은 적극적 정책보조 등으로 지난 20년간 크게 확대 되었고, 중소기업이 생산과 보급 부문에 적극 참여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기존 기간산업과는 달리 나름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방식을 두고 시민이 참여 할 수 있어 민주적 산업이라 말한다.

다만 그간의 성과와는 달리 정책이나 제도는 확연히 노화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탄력성이 떨어지고, 규제의 규제가 연속되고 있다. 소규모 민주적 에너지 생산방식으로 여겨졌던 산업의 특성이 수백MW단위 대규모 사업으로 변화했다. 즉, 대기업 중심이 되었고, 대규모 건설회사들이 사업권을 따내기에 이르렀다. 소규모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규제와 님비로 입지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 중앙정부는 임야규제, 고용의무화 등 규제 압박수단을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은 연일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제 재생에너지 보급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낡은 RPS제도를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 탄소중립선언의 성공은 재생에너지의 성공과 필연적 인과관계에 있는 만큼 더 시간을 끌어선 안된다. 완전히 새로운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것부터 손을 대야 한다. 효과적인 디테일 처방으로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다. 2050년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세부정책이 필요할까?

태양광 모듈 부문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서 FIT(발전차액지원제)와 RPS제도 등을 시행해 왔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고 성과 또한 적지 않다. 아직 미미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율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형식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국민 개인이 투자자로 기간산업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탄생했다. 바야흐로 시민이 전기를 생산하는 시대다. 에너지생산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글로벌시장에서 재생에너지 국산화 점유비율은 낮다. 일각에선 태양광 내수시장에서조차 국산비율이 낮다며 산업 전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요한건 어떤 정책이든 정부가 보조금정책을 세울 땐 초기부터 우리기업과 산업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쟁력 있는 국산화 분야를 선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식 보급방식을 채택하는 한편 신사업의 국민적 수혜폭 증대 방안을 숙고해 어떻게 하면 같은 예산으로 공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산화 정책은 기본 철학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선언을 계기로 그간을 정책과 지향점들을 국산기술 확대에 맞춰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즉 국산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모든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국산화 비율을 높인다는 건 현명한 접근이 아니다. 경쟁력 없는 산업이나 기술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글로벌 시장에 내다팔 수 없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식은 안된다. 우리가 정말 잘 할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하고, 막무가내 지원이 아닌 경쟁유도식 지원이어야 한다.

이번 탄소중립선언을 계기로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강점을 보유한 산업이 무엇인지 판별해야 한다. 그런맥락에서 모듈생산은 태양광 밸류체인 중에서도 가장 경쟁력이 우수한 분야다. 미국 주택용 태양광보급시장에선 국내기업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셀을 수입해 이를 고효율로 가공한 뒤 'Made in korea' 상품으로 미국에 전량 수출하는 중소기업도 있다. 출발은 늦었어도 수출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모듈시장이 바로 국산화율 제고의 핵심일 수 있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국산화가 재생에너지 보급제도에 앞서 고민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치사슬의 어느 지점에서 세계 최고가 될수 있는지 고민하고 지금이라도 RPS제도를 그런 관점에서 수정 및 보완해야 한다.

▲해외 태양광기업 모듈생산 라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해외 태양광기업 모듈생산 라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태양광모듈 ‘탄소인증제’ 전면 재검토 필요
태양광모듈 분야의 이러한 국제경쟁력을 감안하지 않고 최근 시행된 탄소배출량인증제도는 그래서 무성한 뒷말을 낳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 REC공개입찰시장에서 저탄소시장과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입찰에 응모하는 태양광모듈별로 탄소배출량을 검증해 등급을 나눴다. 이른바 '태양광모듈 탄소배출등급 차등화제도’를 채택했다. 이 제도는 폴리실리콘부터 모듈에 이르는 전 밸류체인을 따져 3개 등급(1등급, 2등급, 등급외)으로 모듈을 차등하고 있다. 10점 만점에 1등급은 10점, 2등급 4점, 3등급(등급외)은 1점을 각각 부여, 가격계량평가(70점)와 별개로 심사한다. 결국 등급외 모듈이 입찰에 선정되려면 1등급 모듈 대비 입찰가를 대폭 삭감해 응찰해야 한다. 

본 제도를 두고 태양광시장은 불만이 가득하다. 하반기 REC 정규시장 입찰 결과, 1등급과 3등급간 차이는 kWh당 20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발표 과정의 긴급성에서도 제기된 문제이지만, 금액 차를 두고도 시장은 일대 혼란이다. 곳곳에서 발전사업자들이 시위에 나섰으며, 모듈제조 중소기업 또한 파산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고민과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 제도로 수혜를 볼 기업은 대기업 두곳 정도인데,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산업부가 이처럼 사업환경이 어려운 시기에 시장혼란을 가중시키는 제도를 면밀한 검토없이 긴급 시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묻는 목소리가 많다. 가전이나 철강처럼 에너시소비가 많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분야는 놔두고 굳이 탄소감축에 기여하는 태양광모듈에 이런 정책을 우선 적용한 배경이 무엇인지 갸우뚱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아래의 논리로 이번 탄소배출차등화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효과가 작고, 수혜 범위가 대기업에 한정된 금번 제도를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진행한데 대한 시장의 문제제기는 상당부문 옳다고 판단된다. 우선 탄소인증제는 폴리실리콘에서 모듈제작 전과정까지 투입되는 에너지의 이산화탄소 환산량을 등급화 했으나 각 공정이 어느나라에서 이뤄졌느냐에 따라 등급이 크게 갈린다. 또 이 등급은 REC입찰 시 낙찰과 고정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1등급은 인센티브를 그 외는 가혹한 패널티를 적용받는다고 볼 수 있다. 고정가격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1등급, 2등급 그리고 등외 제품은 발전소 설치 시부터 어떤 등급을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동일한 100kW급 발전소라도 국산 웨이퍼를 사용한 1등급 제품(A)은 중국산을 사용한 등급외 제품(B)보다 매출에서 상당한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모듈의 탄소인증제는 사업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격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를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소통과 홍보부족이다. 이것이 탄소인증제의 첫 번째 문제이다. 시민이 설치하는 태양광발전소는 매출이 생명이다. 요즘처럼 인허가가 어렵고 화재 등 유지보수 비용이 예상 외로 많은 상황을 고려하면, 시민투자자가 사전에 검토할 수 있도록 충분히 홍보하여야 한다. 그런데 제도시행 불과 몇 개월 전에 이를 고지했다. 

두번째 문제는 이미 준공해 버린 발전소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즉, 공사 당시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는데 다 짓고 이미 운영 중인데 매출을 삭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사업자들은 소급 적용은 검토조차 안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소규모 시민투자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입찰시장에 우선 적용했다는데 있다. 공기업이 추진하는 대규모 수의계약시장은 적용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시민투자자가 봉’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어설픈 정책으로 시장 불만은 폭발했다. 추운 겨울날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충분한 홍보 기간이 선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발전소를 하나 지으려면 입지선택과 인허가부터 최소 1~2년이 걸린다. 그런데 그 기간을 보내고 발전소를 짓고 있는데 모듈선택을 등급외로 했다고 난데없이 패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참, 희한한 정책이다. RPS시장이 작은가. 보조금 시장에는 사전 예고 없이 새 정책을 적용해도 되는가. 얼마나 많은 일반시민투자자가 이미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지 정부와 정책당국자들은 알지 못하는가. 시민의 소액투자라고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국산화 제고란 명분은 알겠으나 향후 제기될 형평성 논란과 특혜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건지, 진정한 국산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귀결될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호 사)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동국대학교 겸임교수(경제학 박사) kim@e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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