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에너지전환 위해 시장자유화 불가피"
"효율적 에너지전환 위해 시장자유화 불가피"
  • 이상복 기자
  • 승인 2021.03.11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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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도 텍사스 정전사태 쟁점 규명 본격화
석광훈 "전력·가스 총괄 독립규제기관이 필요”
▲텍사스 정전사태의 원인과 시사점을 놓고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홍종 단국대 교수, 강부일 전력거래소 수급계획팀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노재형 건국대 교수,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좌장),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황태규 GS EPS 상무,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텍사스 정전사태의 원인과 시사점을 놓고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홍종 단국대 교수, 강부일 전력거래소 수급계획팀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노재형 건국대 교수,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좌장),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황태규 GS EPS 상무,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투뉴스] 지난달 15일 오전 1시 25분(현지시각)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 주(州) 전력계통·시장운영기관인 ERCOT가 초유의 10.5GW규모 순환단전 조치를 전격 시행했다. 기록적인 한파로 난방용 전력수요가 급증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7GW에 달하는 가스발전기들이 동시에 멈춰서면서 예비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2월 평균기온이 영상 11℃인 텍사스의 이날 기온은 영하 18℃(오스틴시 기준)까지 떨어졌고, 며칠 사이 30cm가 넘는 눈이 내렸다. 전력수요는 전날밤 69.2GW로 이미 역대 피크값을 경신했다.

ERCOT는 즉시 16.5GW, 280만 가구의 전력공급을 차단했다. 이런 상황에선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공급을 중단하는 순환단전을 해야 전력망 주파수 하락에 의한 최악의 전계통 정전(일명 ‘블랙아웃’)을 막을 수 있다. 18일 자정 단전조치 해제 시 까지 최대 20GW, 최장 70시간이 넘는 정전이 이어졌다. 이 기간 가스‧석탄‧원전 누적 정지용량은 30GW, 누적 정전 가구수는 450만에 달한다. 여전히 진영에 따라 원인을 놓고 해석이 제각각인 ‘2.15 텍사스 정전사태’ 얘기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텍사스 정전이 “풍력발전과 그린뉴딜 탓”이라거나 “재앙의 원인은 민영화다”, “전력시장 자유화 참사다”, “원전을 닫고 재생에너지를 늘린 결과”라는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런 가운데 전력 전문가들 중심으로 이번 사태를 둘러싼 쟁점과 논쟁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8일 오후 포럼이 주최한 ‘텍사스 정전의 실체와 전기요금 폭등이라는 오해와 진실’ 토론회 발제를 통해 그간 일부 언론이나 정당이 정전사태 원인으로 지목한 사안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석 위원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한때 이번 사태의 원인이 풍력발전 때문인 것처럼 보도됐으나 실은 발전기 종류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설비가 15일부터 연료공급부족이나 설비고장으로 정지하거나 감발했다.  

실제 ERCOT가 계절별수급특성과 기상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설정한 발전원별 가용설비용량(SARA Capacity)과 이번 정전기간 발전원별 실적을 비교하면 가스발전은 계획(55.7GW) 대비 55%, 석탄발전(13.6GW)은 58%, 원전(5.2GW) 79%, 풍력(7.1GW) 57%, 태양광(0.3GW) 259% 등으로 태양광을 제외한 모든 전원이 계획대로 출력을 내지 못했고 특히 순환정전 당시 발전량의 60%이상을 맡고 있던 가스발전의 대량 공백이 컸다.

석 위원은 “미국에서의 일부 정파적 보도와 달리 실제 모든 종류의 발전기가 설비고장으로 정지하거나 감발했다”면서 “기후재난 앞에선 모든 설비의 공급신뢰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 ‘전기요금 폭등’ 보도 역시 전체 주택용 고객의 0.3%(2만9000여호)만을 점유한 특정 전력회사(Griddy)의 요금제라고 일축했다. 

201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그리디는 매월 10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싼 도매요금을 그대로 소비자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늘려왔다. 평균요금은 저렴하지만 혹한이나 혹서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면 요금도 급등한다. 하지만 200여개 텍사스주 대부분의 전기판매사들은 이런 방식의 무모한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텍사스 전체 주택고객은 1140만호이다. 

정전원인이 경쟁 전력시장에 기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초점이 엇나갔다는 지적이다. 텍사스는 2011년 2월 단발성 한파 때 여름고온에 최적화 된 가스전과 발전시설 탓으로 최장 8시간의 순환정전을 경험했다. 하지만 당시 FERC(연방에너지위원회)나 PUC(텍사스 공공재위원회) 등의 연방 규제기관이 권고한 에너지시설 단열조치 설비보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터빈건물이 옥외에 노출된 사우스텍사스 원전 1호기가 한파에 급수펌프 고장을 일으켰다. 

석 위원은 “우리나라도 이상고온으로 9.15 순환정전을 경험했고, 작년 9월 태풍 마이삭 때는 방수처리 부실로 고리원전 5기가 정지했다. 발전설비 기후재난은 공기업이나 민간경쟁 여부와 관계없이 규제당국 기후변화 적응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으로 전력시장 체제와 무관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촉발한 원인으로 2011년 정전 이후로도 발전·가스설비 단열규제를 소홀히 한 PUC와 RRC(철도위원회), 700만호까지 늘어난 텍사스주 전열난방주택 등을 지목하며 “여기에 가스와 전력부문 규제 칸막이가 사태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석 위원은 “상호의존관계인 전력과 가스시장 총괄 독립규제기관이 필요하다”면서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이런 문제에 대비하려면 전력시장 개방과 무관하게 규제기관 독립을 준비하고, 가급적 전력과 가스를 총괄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텍사스 순환정전이 ‘민영화 부작용’이란 일각의 지적은 전력시장에 대한 몰이해 탓으로, 오히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에너지전환은 가격신호로 소비자 반응을 유도하는 시장자유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노재형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전력시장의 효율성과 리스크에 대한 소고’란 제목의 발제에서 “미국 대부분 주는 전력시장 자유화 이전에도 민영회사가 전력을 공급해 민영화 때문이란 건 말이 안된다”면서 “정확한 용어는 전력시장 자율화나 전력산업 규제완화다. 그럼에도 전력시장 자유화가 정전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노 교수에 의하면 텍사스 전력시장은 공급용량 부족 시 시장가격 상한을 kWh당 한화 9000원까지 허용하는 ‘Energy Only Market’으로 시장참여자들의 합리적 행위를 통해 신뢰도를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한다. 텍사스시장 예비율이 10% 이하로 낮게 운영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신 이 시장은 그만큼 가격과 신뢰도에 대한 리스크도 크다. 

반면 미국 북동부 전력시장인 PJM이 용량시장과 에너지시장을 동시에 가져가고, 한국은 에너지시장과 용량요금(CP)을 병행하는 시장이어서 가격변동이나 신뢰도 리스크는 낮되 효율성은 떨어진다. 북미신뢰도관리기구(NERC)가 ERCOT에 대해 수요반응 등을 활용해 전력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지만 신뢰도 리스크는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한 배경이다.

노 교수는 그러면서 "경쟁이 가능한 상품이라면 가격을 한계비용으로 낮추는 시장자유화가 바람직하다. 이제 전력은 AMI(양방향계량기), EMS, AI, IoT(사물인터넷) 등의 기술발전으로 가격 비탄력성을 해소함으로써 시장경쟁으로 공급이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면서 "간헐성이 높은 재생에너지가 늘면 더 많은 소비자가 참여하기 위해 가격신호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시장자유화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논란과 일각의 아전인수격 해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텍사스는 미국 어느주보다 전력시장에 압도적인 투자를 해왔고, 그 과정에 소비자 가격이 하락해 그 이득을 소비자들이 보고 있었는데 극심한 기후변화 리스크 투자는 방기한 것"이라면서 "어쨌든 변동요금제를 택한 사람들은 가격이 저렴할 때 그만큼 이득을 취했다. 앞으로는 기후변화가 빈번해 질 수 있으므로 같은 독립계통인 우리 역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사건의 본질 규명보다 의도를 갖고 몰아가기 바쁜듯 하다. 텍사스주나 우리의 9.15 정전은 공히 기상이변에 대한 대응력 부족이 원인인데, 과거에 우리도 본질을 제쳐놓고 한전과 전력거래소 조직문제로 가져갔다"면서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더 늘어나면 계통에 주는 영향은 더 커지고 중앙집중식 통제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좀 더 시장 설계를 유연하게 가져가고 전향적으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부일 전력거래소 수급계획팀장은 "텍사스 정전은 결국 천연가스 생산 및 공급차질을 원인으로 판단한다. 다만 우리는 예비율이 4.4%일때 단계별 조치에 들어가지만, 텍사스는 0.2%에 들어가고 우린 수요자원(DR) 4GW를 포함해 7GW의 예비력을 확보하므로 설령 같은상황이 발생해도 순환단전까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다만 이상기후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정부와 함께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는 "에너지전환의 방향은 결국 민영화 내지는 자유시장 체제를 전제하는 것 아닌가 한다"면서 "텍사스 사태와 별개로 아직 미완인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 재정립과 공기업 고유사업에 대한 정체성 확보부터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발전공기업 지분 100%를 보유한 한전은 구조적으로 국민을 위한 기업인지, 주주를 위한 기업인지 정체성을 물어야 한다. 이는 전환의 민주성과도 인과관계가 있다"며 "한전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하겠다고 하고 농어촌공사 역시 신재생사업자가 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가조직은 고유하게 맡겨진 영역을 벗어나면 안된다. 한전의 지금 할 일은 기후변화시대에 걸맞은 전력계통 인프라 확충과 재생에너지 간헐성 해소 및 비용 내재화"라고 꼬집었다.

황태규 GS EPS 상무는 "서로 손가락질 할 문제가 아니다. 텍사스 사례처럼 모든 전원은 각자 약점이 있고 그걸 어떻게 보강할지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졌으면 한다"면서 "다만 항상 어려운 건 대비하는 건 미래이고, 비용지불은 현재여서 누구나 돈을 지불하기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마 텍사스가 미리 나섰다면 과잉투자 논란이 제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상무는 시장자유화 논의에 대해서도 "우린 2018년 폭염 때 오히려 요금을 깎아줬었다. 이런 역사적 전통을 내려놓고 가격경쟁이나 효율화를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오히려 이 문제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체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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