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계획 막히자 자가용‧열병합용으로 우회
기존 전력망·발전기 좌초자산화로 분산전원 역행

▲LNG자가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인 SK하이닉스 청주 반도체 공장 전경 ⓒE2 DB
▲LNG자가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인 SK하이닉스 청주 반도체 공장 전경 ⓒE2 DB

[이투뉴스] 전력수요 감소와 신규 원전‧석탄‧LNG‧재생에너지 유입으로 적잖은 기존 발전기들이 운휴설비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다소비 대기업들이 앞다퉈 자가발전소나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전력수급계획 반영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이 가능한데다 온실가스 배출권 측면에서도 우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다.

기존 설비도 과잉인 상태에서 전체 전력수급에는 기여하지 않는 자가설비만 시장에 추가 진입해 산업 전체 효율을 떨어뜨리고 국민부담을 높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일 본지가 연료공급사들로부터 집계한 대기업 자가발전‧열병합 추진현황에 따르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쪽은 산업 활황으로 공장 증설이 한창인 반도체 업계다.

SK하이닉스는 청주와 이천 공장 증설을 명분으로 1100MW급 LNG발전소를 추진하고 있고,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도 1000MW급 새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룹사인 삼성물산을 통해 1000~1500MW급 타당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SK E&S를 통해 우회적 건설 제안을 받았으나 미국 배터리공장 건설에 많은 자금을 쏟아부은 뒤라 투자여력을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석유화학‧제철‧자동차사도 예외가 아니다. SK케미컬은 울산에 기존 석탄발전을 대체할 300MW급 열병합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현대오일뱅크는 300MW LNG발전소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연료공급사들로부터 제안서를 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직도입가스로 500MW급 자가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에쓰오일, 현대자동차, 롯데화학, 현대제철 등 내로라하는 전력다소비 기업들이 크고 작은 자가소비나 열병합 발전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전체 검토사업이 10GW(1만MW)에 달하며, 이중 구체화 된 프로젝트만 3~4GW 가량”이라면서 “이들기업 말고도 많은 사업자들이 유사업종 자가발전소 건설 추이나 증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공기업이나 민간발전사들이 공급한 전력을 사용하던 대기업들이 앞다퉈 자가발전소 건설에 뛰어드는 이유는 정부 정책 시그널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분산전원 장려를 이유로 집단에너지나 자가발전용 LNG열병합을 우대하고 있다.

전력수급계획 반영여부와 관계없이 사업허가를 내주고, 배출권도 기존 전력망에서 전기를 조달하는 것 대비 적은 계수를 적용해 온실가스 비용측면에서 실익이 크다. 여기에 연료공급사들의 직도입 물량 확대로 과거대비 연료비 부담이 준 것도 한 요인이다.

관건은 이런 흐름이 전체 전력수급 안정과 분산전원 확대, 효율 측면에서 바람직한가이다. 

발전사들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전력수요가 준 상태에서 기존에 계획된 신규 발전소들이 시장에 지속 추가 유입되면서 기존 발전기들의 가동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고 전력시장가격(SMP)은 kWh당 50원 수준으로 수렴되고 있다.

수도권 소재 LNG발전소 관계자는 "가스공사로부터 연료를 받는 발전사들은 아직 10년도 안 된 발전기들이 이자도 감당 못하는 수준으로 파행운영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대기업까지 자가발전으로 대거 빠져나가면 그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력이 부족하면 자가발전 확대가 바람직하겠지만, 지금은 기존 발전기들도 좌초자산화 돼 그 매몰비용을 다수 국민들이 지불해야 할 상황"이라며 "전체 산업 효율이나 한전의 전력구입비 증가 측면에서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분산전원 확대란 애초 정책 취지에도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검토되는 대부분의 자가발전·열병합은 이미 전력당국이 많은 비용을 들여 송전망과 발전소를 건설해 놓은 곳이다. 새 발전소 진입 시 그만큼의 잉여전력을 다른 수요지로 송전해야 한다.

여기에 자가발전소들은 만일의 자체 수급차질에 대비해 외부 전력계통으로부터 항상 동일 수전용량을 확보한다. 전체 수급에는 기여하지 않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외부서 전력을 조달받음으로써 전체 비용증가를 초래하는 구조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남부지역 북상조류 문제가 상당히 큰데, 새로 수요가 있는 곳에 발전소가 들어서는 게 아니라 이미 한전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곳에 자가발전소가 비집고 들어가 전력수요-공급 불일치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면서 "사업자들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기투자된 비용과 전체 운용효율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합적 관점의 전력계획 수립과 규제 합리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전력시장 전문가는 "정책은 비차별성이 기본인데, 시장을 장악한 정부가 전력과 집단에너지로 갈려 사업자들이 틈새만 비집도록 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전환 시대에 걸맞는 통합 체계를 마련해 전체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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