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021 국내화재 31건 전수집계 했더니…]
평균 가동월수 16.7개월 불과, 예방대책 공염불
정부는 팔짱 산업생태계·발전사업자는 '초토화'

▲최근 4년간(2017~2021) 국내에서 발생한 ESS화재 31건의 유형을 분석한 결과 태양광연계형이면서 LG배터리를 채택하고 완충상태에 있던 설비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한 발전소에서 기술진이 태양광ESS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최근 4년간(2017~2021) 국내에서 발생한 ESS화재 31건의 유형을 분석한 결과 태양광연계형이면서 LG배터리를 채택하고 완충상태에 있던 설비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투뉴스] 국내에서 발생한 ESS(에너지저장장치)화재 대부분은 ‘태양광연계형(PV+ESS)이면서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사용했고,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확인됐다. 또 화재발생 ESS의 평균 가동월수는 1년 5개월여에 불과했으며, 각 배터리 회사가 수천억원을 들여 설치한 각종 화재예방 조치도 후속 화재 차단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본지가 ESS전문기업들이 집계한 ‘2017~2021년 국내 ESS화재 발생 현황’ 자료를 입수해 이 기간 화재 31건의 유형을 살펴봤더니 용도별로는 태양광연계형이 21건, 피크부하저감용 4건, 풍력연계형 3건, 주파수조정용(FR) 2건 순으로 태양광연계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태양광연계형은 작년 7월 기준 전체 ESS배터리 보급량(8583MWh)의 절반가량인 4173MWh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전체 발생화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유독 높다(67%). 전문가들은 태양광연계형 대부분이 옥외 컨테이너나 임시건물을 사용해 환경이 열악한데다 배터리충전율(SOC) 상한을 80%로 제한한 옥내용과 달리 아직 90%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ESS 안전설비기업 한 관계자는 "태양광연계형은 배전계통에 직접 접속하고, 태양광발전 특성상 전력출력과 품질이 고르지 않다는 것도 간과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화재발생 ESS를 배터리 제조사별로 구분하면 LG화학이 전체 31건 중 18건·58%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삼성SDI가 10건·32%, 탑전지 등 나머지 군소업체가 3건·10%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들은 국내 보급 ESS의 약 70%를 삼성SDI가, 나머지 30%를 LG화학이 납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LG화학의 보급량 대비 화재 건수는 월등하게 많다.

화재발생 시간과 당시 배터리 상태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전체 31건 가운데 20여건의 화재 발생시간(소방서 신고기준)이 오후 4~8시에 몰려 있었다. 또 전체 화재 중 22건(70%)은 배터리가 가득찬 상태(완충)에서 방전을 앞두고 있다가 폭주하면서 불을 냈다.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방전할 때 발생한 화재는 각각 1건에 불과했다. 배터리는 전력을 최대로 흡수한 완충상태일 때 가장 취약하다는 게 정설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완충상태는 잔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기 직전 상태로 비유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취약한 셀에 과충전이 일어나거나 노화로 가장 먼저 약해진 셀이 문제를 일으키면 불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PCS(전력변환장치)쪽 문제였다면, 특정시간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불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태양광연계형의 경우 발전량이 많은 낮에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일몰 전·후에 방전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는 설비라는 애초설명과 달리 설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빈발하는 것도 우려를 낳고 있다. 전체화재 31건의 평균 가동월수는 16.7개월에 불과했고, 짧게는 상업운전한 지 6개월 밖에 안 된 새 설비가 불을 냈다. 통상 배터리는 충·방전 횟수가 많을수록, SOC 심도(深度)가 깊을수록 빠르게 성능과 효율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해외는 좀 더 보수적인 조건에서 안전을 우선으로 배터리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단기간에 REC가중치를 부여해 막무가내로 보급하다보니 용량 마진도 없는 배터리를 가혹한 조건으로 가동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그런 운영방식도 연쇄화재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소방서 소방대원들이 지난 6일 태양광연계형 ESS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홍성소방서 소방대원들이 지난 6일 태양광연계형 ESS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각종 화재 예방조치가 공염불이 되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잇따른 ESS화재로 인명사고가 우려되자 2019년 상반기부터 전국 설비에 대한 일체 점검과 안전설비 보강, SOC 하향운전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후 같은해 10월부터 배터리 제조사들도 각 사별로 수백~수천억원을 들여 랙(Rack)이나 셀 단위에서 감지된 화재 확산을 막는 주수식(注水式) 진화장비와 특수소화액을 설치했다.

하지만 그해 말부터 지난달 11일과 이달 6일까지 영천과 홍성에서 각각 발생한 4건의 화재는 이런 시스템을 완비한 곳에서 났다. ESS 안전장치 전문기업 관계자는 "전압이나 온도변화 감시만으론 화재를 근본적으로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SS시공사 한 관계자는 "자체 진화로 끝나 소방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LG배터리 관련화재도 3건이 추가로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ESS기업 한 임원은 "한달 새 두건의 화재가 추가 발생했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은 더 터질 것"이라면서 "만약 특정 배터리 문제라면 제조사가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제대로 규명하고 대처했다면 국내시장이 이 지경으로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전문기업 CTO는 "산업부 공무원들은 요즘 못 본 채 하거나 피하는 게 일이다. 다른나라는 같은 화재가 발생하면 많은 인력을 투입해 엄청 자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하는데, 우리는 그 많은 화재사고를 겪고도 아직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없다"면서 "탄소중립을 하려면 에너지전환을 해야하고, 에너지전환은 ESS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관련 R&D에 수백억원씩 쓰면서 꼭 해야할 일은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력시장가격(SMP)과 REC(신재생공급인증서)가격 하락으로 가뜩이나 경영난을 겪고 있는 ESS운영사들은 최근 화재 재발화 소식에 낙담하고 있다. 태양광연계용 ESS는 사업자수 1545개사에 설비용량만 4GWh가 넘지만 상당수가 차입원금 상환을 걱정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된 상태다. 

이와 관련 한국ESS협회(회장 박동명)는 9일 산업부 감사관과 신재생정책단장, 일부 여당의원실을 대상으로 경영난이 심각한 57개사에 대한 차입금 상환 일괄유예와 급등한 ESS보험료 지원, 화재 안전조치(SOC 조정) 실손실 보상, ESS화재 근본원인 조사 등을 요구하는 'ESS사업자 피해 긴급대책' 요청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협회 측은 "'High Risk, High Returm(고위험, 고수익)'이라고 ESS사업자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정부는 왜 2017년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에너지신산업 ESS보급이 크게 늘었다고 홍보한 것이냐"면서 "최근 재발하고 있는 ESS화재의 근본원인을 명확히 해 사업자 불안을 해소하고, 일방적으로 ESS운영 일반사업자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책임에 대해 명확한 피해보상 등의 대책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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