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국 KEI 컨설팅 전무

▲장현국 KEI컨설팅 전무
▲장현국 KEI컨설팅 전무

[이투뉴스/장현국] 전세계 195개국이 참여한 파리기후협약(2015년)은 당사국에게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수립 등 글로벌 저탄소 에너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70여개국 이상이 ‘2050탄소중립(Net-zero)’ 목표를 선언했다. 100% 재생에너지만으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RE100 캠페인에는 구글, 애플, LG에너지솔루션 등 글로벌 300여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국가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세 도입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세계 움직임이 하루가 멀다하고 달라지고 있고, 그만큼 에너지다소비 국가인 우리나라의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80% 이상은 에너지사용에서 비롯되므로, 가장 확실한 기후변화 대응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체제를 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에너지 공급안정성이 전제되지 않는 경제활동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기존 전통에너지에 대한 투자 또한 당장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기존 전통에너지원은 투자비 회수기간이 길고, 전환대상이 되는 청정에너지원은 급속한 기술혁신을 거듭하고 있으므로 전통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많은 불확실성을 갖는 장기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과정에서 청정에너지원(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에너지저장장치, 수소경제, 에너지효율개선, 수요자원활용 등)에 대한 투자나 조합은 국가별로, 또는 기술적이거나 자연환경, 문화적 환경 등이 상이하므로 같을 수 없다. 또한 에너지공급안정성 확보를 위해 기존 전통에너지원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청정에너지원에 대한 투자가 조화롭게 지속 되어야 한다. 특히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 짧게는 20~30년(가스발전소), 길게는 60년(원전)의 내용연수를 지닌 발전설비 대규모 투자와 청정에너지 투자를 어떻게 균형적으로 가져갈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쉽지 않다.

자칫 석탄화력이나 가스발전, 원전 등의 전통에너지원에 수십조원을 쏟아 붓고 10년 이내에 조기 퇴출을 결정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과정에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에너지전환 시대이다. 자산은 특정 목적을 갖고 탄생하며, 그 가치는 본연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일반적인 자산가치의 평가방법은 해당 자산의 미래 현금창출능력의 현재가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산의 미래 현금창출능력은 환경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며, 어느 시점에서 어떠한 전제조건아래 평가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전통에너지에 수십조원 쏟아붓고 10년내 조기퇴출 할수도"

일반적으로 좌초자산이란 환경변화에 따라 예상치 못하게 급격하게 평가절하된 자산으로 경제적으로 제 기능을 못하게 된 자산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예상치 못하게 급격하게 평가절하된다’는 의미는 해당 자산의 미래 현금창출능력이 기존에 예상했던 능력보다 급격히 악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면 연매출 1조원을 기대했는데, 1000억원도 어렵게 된 상황을 말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에너지산업 자유화 및 민영화 과정에 자주 거론되던 개념이 기후시대인 최근 들어 석탄발전 조기 퇴출 과정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즉,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이나 에너지전환 정책의 추진에 따라 언제까지나 문제가 없을 듯 했던 기존자산이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조기 폐기되거나 이용률이 급락하게 되는 상황이 예상되며, 궁극적으로 해당 자산가치가 급락하게 되는 상황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이 천연가스 가격 하락을 초래해 석탄발전의 좌초자산화를 부르고 재생에너지로 가는 가교연료(Bridge fuel)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중립 선언이 잇따르면서 가스발전의 가교역할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청정에너지 조합의 급격한 단가경쟁력 확보로 천연가스 활용도는 2035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공급설비는 대규모 좌초자산 신세가 될 공산이 크다. 2030년대 중반부터 활용도가 급격하게 낮아질 경우 가스발전설비 뿐만 아니라 인수기지나 배관망 등 가스공급설비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천연가스를 바라보는 눈이 미국과 크게 다르진 않다. 가교연료로서의 역할은 인정하지만 그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추가 발전소나 인수기지, 배관망 등 천연가스 관련 설비투자는 꺼리는 분위기다. LNG인수기지 건설이나 미국산 LNG수입을 불허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203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의 가스인프라 공급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선 가교에너지로 주목받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한 좌초비용 증가 가능성도 적잖다. 에너지전환 혹은 기후변화 대응과정에 천연가스 일변도의 대응전략 대신 다양하고 유연한 청정에너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을 유도하고 대신 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은 늘릴 예정이다. 특히 LNG는 2020년 41GW에서 2034년 61GW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폐지되는 석탄 30기중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한다. 이런 가운데 중앙급전 발전기 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석탄열병합도 앞다퉈 LNG 연료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말 기준 석탄열병합 설비용량은 2.6GW에 달한다.

  "천연가스 활용도 2035년 정점으로 급격히 감소 가능성"

탄소중립 시대에 LNG의 가교역할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2034년까지 여전히 LNG발전을 늘리는 계획은 문제가 있다. 이미 2050 탄소중립이 선언된 상황이고, 미국이나 유럽은 2030년대 중반 LNG관련 설비의 좌초자산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내용연수가 최소 20~30년인 설비를 2030년 중반에도 여전히 집중해 짓는다. 탄소포집 및 활용기술(CCUS)이 저렴한 가격에 상용화 되면 모를까, 현재로선 LNG역시 전망이 어둡다. LEDS 구현 과정에서 천연가스의 가교역할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일부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짧을 수 있고, 그럴 경우 LNG를 근간으로 하는 발전소 인수기지 등의 공급인프라에서 대규모 좌초비용이 유발될 수 있다.

대규모 발전설비는 한번 투자로 최소 20~30년 일정한 이용률을 실현해야 투자비가 회수된다. 그래서 투자결정 시 과도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준공한 지 5년 이내 설비가 2035년 전·후로 좌초자산이 된다면 어떻겠는가. 발전 및 가스설비 투자비 회수 문제 뿐만 아니라 LNG장기도입계약의 TOP(Take or Pay, LNG물량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해당 거래대금은 지급해야 하는 의무) 발생 등으로 좌초비용이 눈덩이로 불어날 수 있다. LNG발전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질문에 필자는 시원하게 답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에는 정부가 수급계획에 신규LNG를 포함시키면 너나할 것 없이 안정적 사업으로 간주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시대인 현재 정부가 LNG발전설비의 신규진입을 허용하면 민간자본이나 투자자들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예전처럼 서로 진입하려 할까? 작금의 상황과 분위기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정부가 다양한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투자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진입용량까지 일정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LNG발전의 가교역할을 십분 활용하더라도 현재처럼 불확실성이 높을 땐 몇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장기수급계획 수립 시 기후변화 대응속도나 기술혁신 등 미래 환경변화에 의한 좌초비용 최소화가 우선 고려돼야 한다. 이와 함께 LNG발전설비 조기 퇴출가능성 혹은 이용률 급락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도 중요하다. LNG발전 좌초비용을 모두 투자자 부담으로 귀속시킬 경우 신규투자가 일어나지 않거나 고율의 투자수익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전력공급의 안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미 법률로 규정된 차액계약제도(전기사업법 제34조 1항)의 활용 검토다. 차액계약제는 불확실성이 높은 에너지전환시대에 공급안정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전기판매사업자와 발전사업자간 계약을 통해서다. 다만 아직 국내서 활용된 사례는 없다.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장현국 KEI 컨설팅 전무 hkjang@keicltd.com

[장현국 전무는… ] 한·미 공인회계사.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을 거쳐 작년부터 KEI컨설팅에서 전무로 에너지와 공공요금을 다루고 있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 위원, 가스요금 도매물가심의위원,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 위원, 9차 전력수급 워킹그룹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RPS 운영위원회, 가스요금 도매물가심의위원, 가스공사 투자심의 위원으로 에너지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