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태양광ESS서 숙식하는 조영훈 대표의 울분
"나는 사정이 나은 편, 가정 파탄난 분들도 많아"

▲조영훈 대표가 자사 발전소에 설치된 재생에너지연계형 ESS를 둘러보고 있다. 400kW 태양광 설비에 1MWh ESS를 연계하는데, 자체 투자비를 제외하고 11억원을 장기대출로 조달했다. 카센터를 정리한 전 재산과 여동생으로부터 빌린 자금까지 쏟아부었지만 운영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게 조 대표의 하소연이다.
▲조영훈 대표가 자사 발전소에 설치된 재생에너지연계형 ESS를 둘러보고 있다. 400kW 태양광 설비에 1MWh ESS를 설치했는데, 자체 투자비를 제외하고 11억원을 장기대출로 추가 조달했다. 카센터를 정리한 전 재산과 여동생으로부터 빌린 자금까지 쏟아부었지만 운영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게 조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투뉴스] “태양광만 하려고 했지 ESS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REC(신재생공급인증서)를 5배나 준다고 하고, 신용보증기금도 정부가 독려하는 사업이라며 90%까지 대출해 줬다. 상환기간도 15년으로 늘려주더라. 12년 운영한 카센터를 정리한 전 재산과 여동생에게 빌린 돈까지 투자했는데,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에서 태양광발전소 400kW와 ESS 1MWh를 운영하는 조영훈(45) 모든태양광 대표의 원래 직업은 카센터 사장이다. 20대부터 정비를 배워 스물여덟에 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른 한 살에 자신의 가게를 낸 25년차 베테랑 정비사다. 전셋집 보증금과 대출로 시작한 일이지만 직원도 두고 수익도 나쁘지 않았다.

위기는 개업 3년차에 찾아왔다. 정비사들의 직업병이기도 한 허리디스크가 심해졌다. 그해 처음 수술을 받고 2~3년 주기로 세 번의 추가 시술을 받았다. 카센터를 쉴 수 없어 낫지 않은 상태로 일을 재개했다가 병이 도지면 다시 병원을 찾기를 반복했다. “몸도 아프고, 정비소 운영으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절”을 그렇게 9년이나 더 버텼다.

전기공사업자인 카센터 손님으로부터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은 건 그 즈음. 땅만 있으면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20년간 월 300만~400만원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목부(牧夫)였던 그의 부친은 고향인 안성에 1800여평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콩이나 깨를 심어 수확하던 땅이다. 현장을 둘러본 시공업체는 ‘발전소 부지로 조건이 좋다’며 사업을 부추겼다.

“원금과 이자를 내고도 월 최소 300만~400만원 수익이 난다는 계산이 나와 매달 아버지께 100만원씩 드리겠다고 했다. 아픈 몸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매달 가게 임대료나 월급, 부품값 결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품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용돈벌이로 소일거리나 하면 그런대로 살만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14일 안성시 미양면 신두만곡로 인근 한 태양광발전소. 연두색 철제 울타리를 열고 들어서자 왼편으론 회색 컨테이너가, 오른편으론 검정색 그늘막을 뒤집어 씌운 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광모듈이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일정 간격을 두고 남향으로 도열해 있다. 컨테이너는 1MWh 태양광연계형 ESS가 들어찬 시설이고, 하우스는 조 대표와 그의 부모님이 임시로 거주하는 집이다.

하우스 내부는 평범한 농촌마을 창고처럼 가재도구와 각종 공구, 경운기 등이 놓여 있다. 태양광 모듈 사이 빈 땅은 고추파종을 위해 이랑을 갈아 놓았다. 조 대표는 올해 대학생인 된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 처음엔 직접 발전소와 ESS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는데, 마이너스 통장이 불어나자 관리비라도 절감하자며 그대로 정착했다.

이날 3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는 조 대표의 얼굴은 시종 회한으로 가득찼다. 기대에 부풀었던 태양광 발전사업이 근심덩어리 ESS사업으로 뒤바뀐 건 태양광 시공이 한창이던 2018년 하반기다. 카센터를 정리한 자금으로 농지전용 부담금을 내고 한전 접속선로를 발전소까지 끌어와 한참 순조롭게 공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태양광 400kW 설치에 필요한 6억원은 13년 상환조건으로 대출을 했다.

대기업이 포함된 시공사들이 ESS 추가사업을 제안한 것도 이 때다. 정부가 REC 가중치를 5배 인정해 태양광사업과 별개로 월 150만원 가량 추가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엔지니어다보니 ESS 설비를 들여놓고 얼마든지 직접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문턱이 높던 금융도 거들었다. 이미 태양광에 적잖은 대출을 일으켜 추가대출이 어려웠으나 신보는 상환기간을 15년까지 늘려주는 특별대출을 약속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ESS를 유망 신산업으로 띄워 각종 지원정책을 쏟아냈다. 몇 번이나 망설였던 그는 우의가 각별했던 여동생에게 손을 벌려 7000만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지불했다. 여동생이 월세를 받던 오피스텔을 정리한 자금이다.

매달 ESS사업으로 발생하는 수익 중 100만원을 여동생 몫으로 주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그의 금융부채는 단박에 6억원에서 11억원으로 불어났다. 연리 2.8% 1금융권 대출인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물론 발전사업 자본금으로 쓰인 카센터 매각비용과 여동생에 빌린 돈은 별개다. 하지만 사업은 그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조영훈 대표가 안성 자사 태양광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다. 사업 초기엔 ESS 연계없이 이 발전소만 운영해 고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목표였다.
▲조영훈 대표가 안성 자사 태양광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다. 사업 초기엔 ESS 연계없이 이 발전소만 운영해 고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목표였다.

우선 RPS 장기고정가격계약 첫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다. "빚을 크게 내 일을 벌렸는데 원금회수가 안될까 간이 녹아내렸다." 조바심 끝에 이듬해(2019년) kWh당 141원에 발전자회사와 저가로 장기계약을 맺었다. 그 즈음 ESS사업장 화재는 더 잦아졌다. 조 대표 발전소도 예외가 아니어서 설비이상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알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한밤에 천안집에서 자다가 발전소로 달려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수익은커녕 원리금 상황도 버거운 현실에 그는 또한번 낙담했다. 안성사업장 태양광ESS는 REC로 월 600여만원, SMP(전력시장가격)로 300여만원 등 월평균 900여만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그런데 태양광ESS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딱 그 정도다. ESS 통신비, 전기료, 안전관리비 등을 포함시키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그는 지인의 정비소 비정규직으로 출근해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다.

조 대표는 “발전소에 살면서 설비를 직접 관리하는 인건비를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REC 5배라는 말에 사람들이 혼동하지만, 실제 그렇게 나오는 경우는 없을 뿐더러 오히려 손실을 5배로 봐야하는 게 함정”이라며 “그나마 나는 원리금이라도 내는 쪽이다. 장기계약에 실패한 적잖은 분들이 집을 처분하고 대출로 버티고 있다. 이미 문제가 커져 가정이 파탄난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ESS는 탁상행정이라고 말하기도 아까운 저급한 정책"이라면서 "따로 벌어서 이자만 메우다가 끝나는 상황인다. 관료들은 그렇게 성과를 올렸는지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짐이 너무 무겁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조 대표는 "너무 억울하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공정하게 경쟁해 망하는 거라면 상관없다. 같은 태양광이고, 같은 ESS인데 발전공기업만 자체수의계약으로 수익을 내고 시민들은 손해를 봐야하는 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공정이냐"면서 "ESS 품질보증기간이 끝나면 화재로 비싸진 보험료 부담까지 추가되게 생겼다. 큰 욕심없이 자연속에서 자연인처럼 전기를 만들며 살고 싶은 게 소박한 꿈"이라고 말했다.

태양광ESS 사업자들의 단체인 한국ESS협회에 의하면 이달 현재 73개 회원사 중 57개사 원금을 상환하고 있는데 올해말이 되면 그 비율이 90% 수준으로 늘어난다. 협회는 이중 상당수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대표는 "이율을 낮춰주고 원금 회수기간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급한불은 끌 수 있다"면서 "배터리 회사들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화재보험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명 한국ESS협회 회장은 "수소충전소 적자는 정부가 보전해 준다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책사업에 참여한 ESS사업자들의 어려움은 아무도 챙기지 않고 있다"면서 "대부분이 선량한 피해자들이다. ESS를 에너지전환의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성=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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