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허은녕서울대학교 교수한국혁신학회 회장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혁신학회 회장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탄소중립이 올여름을 달구는 화두로 떠올랐다. 작년말 이뤄진 우리나라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선언이 관련분야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탄소중립선언은 기후변화협약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며 에너지환경문제이기 전에 경제와 국제무역의 문제다. 1990년대 소련의 멸망과 WTO(세계무역기구)의 설립 이후 30여년간 진행돼온 자유무역 중심의 국제질서 지속에 제약을 거는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이자 변화요인으로 세계 선진 각국의 탄소중립선언을 이해해야 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무역을 통해 지금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우리나라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진행과 날로 나빠지고 있는 미-중 관계는 보호무역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국제무역질서의 변화를 더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주요 시장인 선진국들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어서 더더욱 심각하다. 

선진국들의 탄소중립선언을 살펴보면 또 하나의 축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규제의 대상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의 감축을, 2015년 12월의 파리협정이 세계 모든 국가의 자발적 참가를 요구했다면 2019년 유럽에서부터 시작, 진행되고 있는 탄소중립선언은 국가와 더불어 개별기업에 대한 규제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RE100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논의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에 시작된 온실가스관련 국제협약이 20여년이 지나 이제 무역장벽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선진국들이 지난 20여년간 개발해 둔 에너지기술 옵션을 이제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탄소국경세의 추진이나 RE100 및 ESG라는 플랫폼을 내세워 선진국이 장악한 금융분야를 활용해 규제하는 방법 등이다. 

그럼 우리나라가 가장 신속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강조한다. 미래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마련작업과 30년 이상 수명을 가진 건물에 대한 설계‧시공 혁신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나온 세계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 작년말에 나온 매켄지 컨설팅회사의 보고서가 제안하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주요 감축수단을 보면 가장 크고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전기화 및 청정발전(electrification & carbon neutral power)’이다. 즉 전기로 대체할 수 있는 열(보일러 등), 동력(자동차 등)을 모두 전기로 바꾸고 전기의 생산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없애는 방법이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목표달성의 40% 이상을 전기화로 달성한다고 언급되어 있어 전기화가 가장 중요하고 많이 활용될 수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전기화는 현재 있는 에너지원을 청정한 것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열과 동력을 모두 전기로 대체하면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가 많아져 전기의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늘어날까? 

우리나라의 경우 총에너지사용량 중에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그러니 나머지 80% 중 절반만 전기로 바꾼다고 하여도 현재의 국내 전력시스템, 즉 발전, 송전, 배전시설을 현재의 3배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야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발전시설이 3배 늘어난 다는 것을 쉽게 설명하면, 발전시설이 거의 군 단위, 구 단위마다 하나씩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엄청난 양의 송배전 시설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 언제 어떤 설비를 누구의 자본으로 건설할 건지 아직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위기 상황이니 1980년대 석유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만든 석유기금을 이제 하나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전력기반기금이라는 전기요금에 부과하여 만든 기금이 존재한다. 단지 이 기금이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건물 신축시 탄소중립 설계 적용해야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이라면서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에 탄소중립 설계를 적용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아파트만 그렇겠는가. 올해 국내에 지어지는 대부분이 건물이 수명이 30년 이상일 것임을 고려하면 2050년 탄소중립선언에 당장 대비책을 내어놓아야 하는 부처는 국토부다. 

아파트 수명이 30년 이상임은 자명한데, 그럼 2050년에 가서는 그 아파트 집주인들보고 알아서 하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아니, 건물의 변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라도 변경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건설회사야 분양만 잘하고는 잊으면 그만이겠으나 이를 담당하는 국토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음은 분명 문제다.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에서 신규로 구입하는 기자재 역시 마차가지다. 수명이 20~30년이 되는 기자재에 대한 투자가 자칫 좌초자산(stranded asset)화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장 국내 에너지 인프라를 확대할 계획을 수립하고, 과감하게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해 민간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전력기반기금을 확대하고 기재부, 산업부 모두 새로운 에너지인프라 건설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합의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의 참여 등을 통하여 지역별 스마트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하는 등 전 국민이 이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국토부 역시 산업부, 환경부와 함께 30년 이상 수명을 가진 건물들에 대한 과감한 설계변경과 탄소중립에 필요한 시공방식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과감한 기술‧시설 상용화 투자 및 자본투자규제를 완화해 기업이 새로운 환경친화적 기기와 시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잘못된 자본투자와 인프라 투자로 인한 좌초자산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도 결국 국가가 얼마나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구현해 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새로운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인프라 건설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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