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보일러로 인한 사고예방 차원서 2017년 도입
소비자 인식전환 성과 미미…실효성 제고방안 필요

[이투뉴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난방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집안의 난방과 온수를 책임지는 가스보일러는 중요한 필수품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매일 사용하는 가전과 다르게 유행도 타지 않고 소비자 관심에서 비교적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대부분 소비자는 가스보일러의 난방·온수 작동 유무만 확인할 뿐 얼마나 오래 사용했느냐는 큰 관심이 없다. 제품 특성상 휴대폰처럼 매일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도 아니고, 이사를 했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다보니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스보일러에 대한 정책이나 이슈 그리고 신제품에 적용된 다양한 기능에도 설비업자와 대리점이 관심을 기울일 뿐 소비자가 휴대폰이나 TV처럼 출시 후 제품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고 자발적으로 리뷰를 올리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보일러 제조사 역시 안전 등 기능적 가치보다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브랜드 마케팅의 비중이 크다.

보일러 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분 건 지난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친환경보일러 의무화 정책. 대기환경에 대한 사회적 이슈와 함께 정책적 차원에서 20만원 보조금 지원사업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대중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가스보일러가 소비자가 직접 찾아보는 제품으로 바뀌는 추세다. 

소비자는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과 제품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보일러실 문을 열고 사용하는 보일러의 브랜드와 언제 설치된 제품인지 확인하기에 이른다. 친환경보일러 보조금 지원은 무제한이 아니다. 20만원이라는 액수의 공통점만 있을 뿐 각 지자체 예산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별 편차가 크다. 소비자는 보조금이 소진되기 이전에 보일러를 교체하기 위해 집안의 보일러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인하고 교체시점을 파악해야 한다.

◆환경과 보조금으로 높아진 관심, 중요한 것은 ‘안전’
하지만 국산 가스보일러의 내구성이 한결 좋아지면서 15년, 20년이 지나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는 가정이 많다. 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바꿔. 특별히 고장이 나기 전까진 괜찮다’는 다소 안이한 소비자 인식도 여전하다.

▲합리적인 사용기간 제시를 통해 노후 보일러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기대됐던 가스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난방시공업자들이 수리하려는 가스보일러를 살펴보고 있다.
▲합리적인 사용기간 제시를 통해 노후 보일러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기대됐던 가스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난방시공업자들이 수리하려는 가스보일러를 살펴보고 있다.

이러다보니 보일러 교체시점을 어느 기간으로 잡아야 하는지를 소비자가 직접 판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노후 보일러를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성능저하와 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도입된 게 ‘권장사용기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7월부터 보일러 명판에 ‘권장사용기간 10년’을 표기토록 명시했다.

권장사용기간은 법적 의무화 규정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사용기간 제시를 통해 소비자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매년 가스보일러 CO중독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전까지의 대책으로는 실효적 성과를 거두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가스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는 십수년전부터 한국가스안전공사, 보일러 제조사, 배기통 제조사, 관련업계 간 논의가 이어져 온 사안이다. CO중독사고가 그 어느 사고보다 직접적인 인명피해율이 크다는 점에서 기준, 제도, 사용환경 등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안전대책 및 안전정보 제공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10년 넘은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이나 보일러 A/S 요원을 통해 홍보·계도에 나섰지만 소비자 인식 전환은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가스보일러를 만들거나 사용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가스보일러 사고는 전체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나 인명피해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린나이,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등 국내 보일러제조사들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 수십가지 안전 관련 기능을 통해 가스보일러의 안전성을 1순위로 삼는 이유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친환경보일러 보조금 지원으로 소비자가 교체를 고민하는 지금이 가스보일러 권장사용기간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일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도권에서 보일러 대리점을 운영하는 한 사업자는 “보일러 A/S를 요청하는 소비자에게 10년 이상된 제품은 안전 차원에서 바꾸시는 게 좋다고 얘기를 해주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부분 교체보다는 고장이 난 부품을 고치고 다시 쓴다. 어려워진 서민경기도 이런 추세를 더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권장사용기간이 보일러의 최대 수명기간 아냐
강상규 린나이 마케팅실장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강한 보일러는 집안에 있어도 일반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보다 완벽한 안전을 위해 보일러의 컨디션을 눈으로 확인하고 권장사용기간을 넘은 보일러의 경우 전문가의 사전점검과 상담을 통해 교체 시점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보일러도 자동차와 같아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열효율이 점점 떨어질 뿐만 아니라, 노후화로 인한 고장과 사고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실장은 “권장사용기간은 말 그대로 '권장'이라는 의미로, 제조사별 품질의 차이와 사용자 관리 수준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권장사용기간 자체가 보일러의 최대 수명기간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를 도입한 가장 큰 목적은 소비자 안전이다.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친환경보일러 사용 권장뿐만 아니라 소비자 안전을 위한 보일러 교체시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계도해야 할 당위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보조금 혜택과 환경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안전’은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곽채식 한국가스안전공사 안전관리이사는 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가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친환경보일러 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소비자 관심이 높아졌으나 한정된 예산으로 지자체별로 지원이 중단되는 사례가 빚어지는 만큼 보조금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곽 이사는 또 “최근 보일러 교체수요가 신축수요 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되는데, 자동차처럼 10년 이상 오래된 보일러를 대상으로 트레이드 인(보상판매)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을 전향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장사용기간제는 보일러 이전에 염화비닐호스(7년), 고압고무호스(5년), LPG압력조정기(6년), 퓨즈콕(5년), 이동식부탄연소기(5년) 품목에 적용됐다. 권장사용기간제를 도입하기 이전 매년 사고가 발생했던 LPG압력조정기, 고압고무호스, 염화비닐호스의 경우 제도가 도입된 이후 품목별로 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거나 80% 가까이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만큼 제대로 활용하면 효과를 거두는 게 입증된 셈이다.

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 도입은 노후된 보일러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와 유관기관, 관련단체·업계가 오랫동안 논의를 이어온 끝에 공감대를 이뤄낸 결과다. 보일러로 인한 인명피해는 전체 가스사고와 비교해 사망률이나 부상률이 매우 높다. 지난 5년간 전체 가스사고의 건당 사망률은 545건 중 55명으로 0.1명인데, 가스보일러 사고의 건당 사망률은 28건 가운데 20명으로 0.71명이다. 가스보일러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전체 가스사고에 비해 7.1배 높은 것이다.

'안전 대한민국'을 위해 가스보일러 권장사용기간제가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다. 실효적이지 못한 제도는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뿐이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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