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경제학 박사)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경제학 박사)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요즘 언론을 통해 전력 공급비용, 전기요금과 관련된 통계가 자주 등장한다.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급격히 높아지고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와 관련된 비용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로 연결되는 문제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고 전기요금 또한 지금보다 몇 배 오를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한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기후변화에 동참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산업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다만, 현재 여건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보급확대에 추가적인 비용이 드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비용이나 통계수치는 상당히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슈를 선명히 부각하고 관심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 있으나, 과장된 숫자를 제시하는 주장의 공통점은 경제성 평가의 원칙을 무시하고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는 점이다. 국민부담 1000조원, 전기요금 인상 몇 배, 전력수요 급증, 온실가스 배출 제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수십억 kW 등이 요즘 자주 보이는 수치다.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는지는 전력산업 규모와 관련된 몇 가지 지표를 보면 자명해진다. 우리나라 총발전설비는 작년 기준으로 1억2770만KW다. 전원별로는 원전이 2330만, 석탄 3580만, LNG 4130만, 신재생 2010만 kW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설비는 40년 전부터 해마다 수백만kW씩 건설되어왔고 지금도 일부는 건설 중이다. 만약 전체 발전설비를 한꺼번에 새로 건설하더라도 200조원 정도면 가능할 것이다. 발전에 쓰이는 연료비는 최근 5년간 평균으로 계산해 보면 매년 20조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력시장의 거래규모는 연간 45조∼50조원 근처며, 여기에 송전과 판매비용을 더한 2020년 전력산업 총매출액은 56조원이다. 매출액이 아닌 부가가치만 따지면 더욱 적을 것이다. 우리나라 GDP 약 2000조원에서 전력산업의 비중은 크지 않다. 한전의 시가총액 또한 채 15조원이 되지 않으며, 자산가액이나 매출액보다도 훨씬 적다. 하루가 멀다하고 천조를 넘나드는 비용과 거대한 담론을 제공하는 전력산업이지만 실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인가? 15년간의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2034년에는 발전설비가 1억9300만kW로 지금보다 6500만kW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동안 폐지되는 설비를 감안하면 좀 더 많을 것이다. 계획에 따르면 이중 대부분을 태양광, 해상풍력, 가스복합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원별 공급비용을 보면 재생에너지가 아직 원전이나 화석연료에 비해 높다. 과거 10년 동안 태양광 공급비용은 3분의 1로 줄었고 앞으로도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해상풍력은 공급비용이 태양광의 2배 가까이 되나, 이 또한 장기적으로는 완만하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스복합은 상대적으로 설비비용이 저렴하다. 현재의 공급단가를 기준으로 매년 500만∼600만kW 규모의 신규설비를 건설하더라도 한해 10조원을 넘기 어렵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앞으로 전력공급 문제로 마치 나라경제가 거덜날 것처럼 주장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의 전원별 공급비용의 불합리한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는 달리 원전, 석탄 등 기존전원의 건설비는 상대적으로 낮은데 반해, 재생에너지 공급비용은 높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용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소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공급비용을 낮춰서 보조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비용논쟁도 수그러들 것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에 보조금 정책이 시행된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무작정 보급량만 늘릴 것이 아니라 공급가격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잦은 정책 변경과 과도한 목표 설정이다. 전력산업이 지난 수년 동안 오직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이라는 아젠다에 함몰됐다. 이제는 탄소중립이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비전과 목표는 좋으나 우리 전력산업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를 비판하는 쪽에서 반대 논리를 위해 엄청난 수치와 통계를 들이밀게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새로운 기술과 규제 수단이 자주 동원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녹색성장, 에너지 신산업 등이 있었지만 이제는 에너지저장(ESS)을 넘어 수소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중립이 선언되는 순간 무탄소 전원을 통해 산업도 수송도 모든 에너지를 무탄소 전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계속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으로 인해 전력 품질 문제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수소는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에너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기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이나 정치권은 입맛에 맞는 논리, 주장과 수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일견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편향되고 주관적인 주장이 많다. 통계지표나 경제성 분석도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딴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언론이나 정치집단, 이익단체, 전문가, NGO 등이 연일 자극적인 주장과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다. 의사결정자가 세세한 내용까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되고 검증된 기준과 프로세스다. 사람보다는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답은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사이 에너지산업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찬찬히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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