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② 성전(聖典)과 칼 – ESG 자본주의 교리와 통치수단 
③ ESG 자본주의 – '기업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④ ESG 자본주의 – 시대혁명인가, ESG 워싱인가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ESG는 ‘기업의 목적(corporate purpose)’에 관한 현대 기업재무론과 회사법의 해묵은 논쟁을 재점화했다. 기업의 목적 논쟁은 크게는 ‘기업이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그리고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서로 연관되지만 동일하지 않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의 목적 논쟁은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심오한 철학적 논의이면서 그와 동시에 경영권을 누가 차지해야 하는가라는 헤게모니 싸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초기 논쟁은 1930년대초 벌리-도드 논쟁(Berle-Dodd debate)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초는 에디슨, 록펠러, 카네기와 같은 전설적인 창업자들이 퇴장하고 그 뒤를 이은 관리자들이 창업자들의 유산으로 남은 거대기업의 경영자로 등극하는 시대였다. 이들 관리 경영자들(소위 전문경영자들)은 거대기업의 막강한 재력과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단지 돈을 많이 벌어 주주들을 배만 불리는 것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돌프 벌리(Adolf Berle)와 가디너 민스(Gardiner Means)가 <현대 기업과 사유 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1932년)이라는 저서에서 간파하였듯이 그 무렵 거대기업은 주식 상장 등에 과정을 거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었기에 광범위하게 지분 분산이 이루어진 주주들의 기업 경영에 대한 영향력은 실질적으로 매우 약화된 상태였다.

벌리 변호사는 법적으로 기업은 그 주주들을 위해 이익을 창출한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메릭 도드(Merrick Dodd) 하버드 법대 교수는 기업이 주주들뿐만 아니라 근로자들과 공공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반론을 펼쳤다. 위 논쟁은 이해관계자 중심주의(stakeholder primacy)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미국 거대기업의 힘이 커질수록 경영자들의 힘이 커진 반면, 주주들은 그저 주식이나 사고파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이해관계자 중심주의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여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기보다는 기업의 경영권이 (주주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두루 고려할 수 있는 경영진에게 있다는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의 성격이 큰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후 경영자 자본주의에 짓눌려 사멸한 줄 알았던 주주자본주의에 부활의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은 시카고대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이다. 그는 1970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주주들이 기업을 소유하므로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주주의 이익을 늘리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6년 후 경제학자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과 윌리엄 메클링(William Meckling)은 <기업 이론(Theory of the firm)>이라는 논문에서 기업의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일 뿐이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주인인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을 발표하였다.

대리인 이론은 회사법, 경제학, 기업재무론, 기업지배구조 등 분야에서 엄청난 파급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주주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기업들이 내내 들어왔던 선진적 기업지배구조의 이론적 뿌리도 여기에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부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시장을 지배해 왔던 미국 기업들이 독일과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 격화로 인해 쇠퇴하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경영환경에서 사적 이익과 위신을 위해 과잉투자와 불필요한 지출을 일삼아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주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바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이후, 그리고 세계화와 맞물려, 돈을 추구하는 금융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누려 왔다. PEF(private equity fund)라 불리는 사모펀드가 대규모 자금을 차입하여 증권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매수한 다음 대량 해고 등을 통해 지출을 줄여 고액배당을 받고 알짜 사업부문이나 자산을 재매각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기법이 등장하였고, 현재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차입매수의 과정은 1980년대 말 KKR의 RJR 나비스코 인수를 다룬 <문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이라는 논픽션에 너무나 잘 묘사되어 있다). 막대한 규모의 매각차익을 노려, 기존 경영자의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공개매수 방식으로 기업인수를 강행하는 적대적 인수합병(hostile takeover) 사례도 빈번하였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이사를 해임하는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세계화의 시대답게 외국인 주주들이 가끔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나타나 경영진을 쩔쩔 매게 만들기도 한다. 급기야 주주자본주의에 완벽하게 적응한 일부 경영자들은 자신의 인센티브를 기업의 단기 이익에 연계시키기에 이르렀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의 저서 <폴트라인(Fault Lines)>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앞두고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주택시장 붕괴 가능성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리스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사람들이 진작에 다 잘렸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많은 시민들이 집을 잃고 실직하였지만, 정작 사태를 유발한 월가 CEO들은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나갔다. 2010년 BP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역시 안전보다 기업의 비용절감을 우선하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프리드먼의 기고 이후 50 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 기업구조조정 활성화, 경영진의 비효율 제거, 경제성장과 같은 주주자본주의의 명백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과거의 열광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듯 하다.

전세계에 주주자본주의 복음을 선포해 왔던 미국에는 이제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같은 사회주의자 혹은 급진좌파들이 득세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가 보인 결점과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성찰과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체제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탄생한 ESG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에게 사회적 책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그 의도대로 작동하여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까?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