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전력계획 운전모의 시뮬레이션서 대다수 정지
건설해도 설비 커 감발운전…송전선 없어 무용지물
"정치권 기술적 이해 낮은 상태서 공약 남발" 지적

▲9차 전력수급계획 목표년도인 2034년 봄 경부하 때의 일주일간(목요일~수요일) 전원별 발전량과 순부하(Net Load) 운전모의 그래프. 토요일부터 원전 정상운영에 차질이 발생해 일요일의 경우 거의 모든 원전 운영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
▲9차 전력수급계획 목표년도인 2034년 봄 경부하 때의 일주일간(목요일~수요일) 전원별 발전량과 부하 그래프. 토요일부터 원전 운영에 차질이 발생해 일요일의 경우 양수발전기를 모두 가동해도 거의 모든 원전의 운영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 사진-신고리 3,4호기

[이투뉴스] 야당 대선후보들과 원자력산업계 바람대로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 한 신한울 3‧4호기를 계획대로 건설한다 해도, 단위용량이 크고 출력조절이 어려운 원전설비 특성상 이들은 물론 기존 원전조차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결과가 나왔다. 

앞서 야권은 “탈원전은 망하러 가자는 얘기”(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라거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원자력에너지가 필수적”(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이라며 연일 현 정부 탈원전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조차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에 맞춰 충분히 재고해 볼 수도 있다"(2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고 여지를 남기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12일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전기위원회 위원)로부터 입수한 ‘9차 전력수급계획 운전모의 결과’<그래프>에 따르면, 정부 장기 정책계획대로 원별 비중이 변화하면 연중 전력수요가 가장 적은 2034년 봄 휴일(4월 중순, 일요일)에는 사실상 모든 원전의 가동중단이 불가피하다. 태양광·풍력이 최고 45GW안팎의 전력을 생산하는 가운데 출력을 일부 제한하고 가스발전(59.0GW)과 양수발전기(6.5GW) 가동을 각각 최소‧최대로 조절해도,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해 19.4GW에 달하는 원전을 세우지 않고선 수급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이번 분석에서 홍익대 연구팀은 9차 전력계획 발전원 구성비를 토대로 2017년 기상데이터를 활용해 2034년의 태양광 및 풍력 월별‧시간대별 평균출력을 도출했다. 또 같은해 부하실적(전력수요) 데이터로 추정한 미래 순부하(Net-Load) 패턴에 이를 대입해 미래 수급상황을 모의했다. 건설을 시작한 신규 양수발전소가 추가로 운영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부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고 부하변동을 따라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LNG·석탄 일부를 최소출력으로 가동하면서 원전은 전출력으로 지속 가동한다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에서도 원전은 토요일엔 전체의 절반 가량, 일요일에는 대부분을 가동할 수 없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출력 조절이 어렵고 기동‧정지에 수일이 소요되는 국내 원전 설비특성을 감안하면, 봄철 내내 기존원전의 파행운영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9차 전력계획에 의하면 2034년 발전원별 설비용량은 원전 19.4GW, 석탄 29.0GW, LNG 59.0GW, 신재생 77.7GW, 양수 6.5GW 등으로 2019년과 비교해 원전은 3.8GW, 석탄은 7.9GW 각각 줄지만, 신재생은 62.0GW, LNG는 19.4GW 증가한다.

이런 상황에선 야당이나 원자력산업계 주장대로 신한울 3‧4호기를 추가로 건설해도 가동하지 못하는 원전만 늘어나는 셈이다. 설비용량이 기당 1.4GW에 달하는 신규원전은 이런 경직성 문제를 해소한다해도 단위 설비용량이 커 전력당국으로부터 출력감발을 요구받을 처지다. 

연구팀은 2030년 원전이 20.4GW 운전하는 가운데 석탄과 재생에너지가 각각 10.9GW, 25.0GW로 발전하고 양수가 6.0GW 운영되는 상황에 신고리 3호기처럼 1.4GW 원전이 탈락(고장)하는 경우의 주파수 영향을 검토했다. 그 결과 최저주파수가 59.59Hz까지 떨어져 정부 고시기준(59.7Hz)을 위반했다. 같은 계통으로 엮인 원전 2기가 동시 탈락할 경우에도 최저주파수는 기준값(59.2Hz)을 밑돌아 59.14Hz까지 주저앉았다. 과도한 주파수 하락은 대정전을 초래한다. 신뢰도 고시를 충족하려면 기존원전도 출력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국내 원전은 작년부터 특수 경부하 때마다 임의로 출력감발 운전을 벌이고 있다. (본지 2020년 5월 18일자 1면 '전력계통 초유의 원전 출력 감발',  2020년 9월 28일자 추석연휴 닷새 간 원전 2기 또 감발운전 기사 참조) 하지만 이에 대한 안정성 검토나 관련 규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원전 출력감발 놓고 안전성 논란 참조)  

전영환 교수는 “2030년 재생에너지 30.0%와 원자력 23.9% 목표에서도 재생에너지 변동성과 간헐성, 원전 경직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력망 운용에 매우 어려운 문제”라면서 “원전을 줄이지 않으면 그만큼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30년 이후를 생각하면 대형 원전을 추가건설하거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해도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수송할 전력망이 없어 신규 송전선로를 추가 건설하지 못하면 원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당국에 의하면 동해권 전력망은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 생산전력을 수송할 여력도 없어 지금도 출력제약이 빈번하다. 여기에 신한울~신경기 HVDC를 추가 건설해도 신규 석탄과 원전, 재생에너지 증가분조차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아직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관한 구체적 계통여건을 검토한 적은 없지만, 2.8GW를 새로 수송하려면 송전선로를 추가 건설하고 그에 따른 연계계획도 새로 짜야한다는 말들이 오간다"면서 “10년 이상 걸리는 송전선로 건설과 지역사회의 낮은 수용성으로 봤을 때, 앞으로 대형원전이나 석탄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간 미국내 조기폐쇄 원전 현황 ⓒ석광훈, 美 에너지정보청(EIA) 2021.5.
▲최근 5년간 미국내 조기폐쇄 원전 현황 ⓒ석광훈, 美 에너지정보청(EIA) 2021.5.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전 세계적인 전력시장 패러다임 변화와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좌초자산화 우려가 높은 신규원전 건설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에 의하면, 영국은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사이즈웰.B 원전 출력을 50% 낮춰 운영했다. 풍력발전 전력공급 비중이 24%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기당 설비용량이 1.3GW인 이 원전이 고장으로 불시 정지할 경우 그 공백을 즉각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인디언 포인트 2,3호기(각 1040MW)와 두웨인 아놀드(601MW) 원전 등 모두 7기의 원전이 최근 5년간 운영허가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재생에너지 증가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전력계통에 생산전력을 실어 보내면, 보상이 아니라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 시장제도(Negative Price, 마이너스가격제) 탓이다. 석 위원은 “재생에너지는 변동비가 0원이라 버틸 수 있지만, 원전은 감발할 경우 비용이 발생하므로 차라리 폐쇄하는 게 낫다고 발전사업자가 판단한 것”이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많은 주(州)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고,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차 심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 측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주장에 대해 "전력시장과 전력계통의 패러다임 변화로 경제급전 원칙이 재생에너지 최우선으로 모두 바뀌었는데, 기술적 이해도가 낮은 정치권이 국내외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치평론 수준으로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다”면서 “전력계통 전문가들의 조언을 제대로 듣고 이를 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신한울 3,4호기는 이제 탈원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께 왜 더이상 원전을 건설하면 안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면 여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위원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원전은 안정적이고 거대한 발전원이고, 태양광이나 풍력은 그렇지 않은 발전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국내 언론이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중국조차 2030년까지 원전의 10배 이상으로 재생에너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