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글 싣는 순서] 
ⓛ - 탄소중립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② - 탄소중립과 전원믹스 (상)
③ - 탄소중립과 전원믹스 (하)
④ - 좌초자산의 법정책적 문제

[이투뉴스/박진표]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서 전력산업을 안정적으로 탈탄소화하기 위한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그저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개발되지 않거나 개발 중인 미래의 기술이 모두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또한 계획대로 진행되리라 믿기에는 국내의 개발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리라 큰 기대를 받고 있는 ESS의 확산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제시하는 전망과 다가올 미래의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할 것임은 시나리오가 가지는 한계에 비추어 명백하다.

그런데, 국가의 전원믹스를 결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법정 계획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배치되는 전원은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없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적어도 소극적 의미의 법적 구속력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일단 수립되면 원칙적으로 수립주기 2년 동안은 되돌릴 수 없다. 아울러,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명시된 발전소 퇴출계획은 적어도 발전공기업으로서는 쉽게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아무런 의구심 없이 전원믹스를 결정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것은 미래 전력수급의 안정성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반영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소 전부 또는 대부분을 퇴출하였는데, 정작 2050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만약 전력공급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탄소중립에 대한 바램과 열정이 한순간에 냉소, 어쩌면 환멸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수급을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지극히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수립해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원믹스 구성을 통해 전력의 안정적 수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이상적으로 수립되어 있다고 해서 이를 맹종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한다면, 국민들이 탄소중립에 대한 지지를 거두어들임으로써 탄소중립 아젠다 그 자체를 정치적으로 좌초시켜 버릴 수 있다. 이는 기후엘리트들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큰 실책이 될 것이다.

물론,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한 청사진에 불과하다고 해서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그러한 불확실한 부분을 배제해 버린다면, 정부가 전력산업에서 도전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의지를 표명하고 실행할 경로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의 대계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계획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딜레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제시한 대로 미래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면, 정말로 화석연료 발전소는 전혀 필요가 없을까?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여러 가정사항들이 완전히 충족될 것을 전제로 전원믹스 등에 대한 단일 계획만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정이 작든 크든 실제와 어긋나는 것을 전제로 한 복수의 계획을 함께 수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실제 현실간 괴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석탄발전소의 퇴출 여부와 신규 LNG 발전소 허가 여부를 해당 시점에 재생에너지 비율 등 시나리오의 가정사항들이 실제로 얼마나 충족되어 있는지, 망 구축 등 전력수급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전력시장 가격이 전기소비자에게 수용가능한 수준인지를 면밀히 검토한 후 그 검토결과와 연계하여 결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에 의할 경우 전원믹스 구성과 탄소중립 시나리오 간 상관관계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며, 또한 미래 재생에너지 비중을 과대 예측하여 전통 발전설비 조기 퇴출에 따른 전력수급의 불안정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관련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은 탄소중립 실행과정에서 국가가 특정 전원믹스 구성을 강제하는 것이 법정책적으로 타당한가 여부이다. 국가가 전원믹스를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권능을 부여 받은 이유는 전기의 보편적 공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힘과 자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규모 전력설비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민간 자본과 역량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조치였고, 국가는 대체로 이런 목표를 잘 달성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종래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수요 예측 실패를 별론으로 한다면) 비교적 적은 수의 전원과 검증된 기술을 전제로 하였기에 전원믹스에 관한 목표를 세움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탄소중립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탄소중립이 어떤 기술적 경로를 통해 이행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설비, 전력망이나 ESS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는다면, 혹은 수소발전과 관련된 여러 기술이 예정대로 개발되어 상용화되지 못한다면, 탄소중립의 경로뿐만 아니라 전원믹스 구성의 경로 또한 매우 불안정하게 된다. 또한, 전기사업자들이 의지해 왔던 국가의 권위가 잘 작동하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와 함께 발전설비가 되었든 송전망이 되었든 지역수용성의 불확실성도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버렸다.

이와 같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예측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에서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수단으로 전원믹스를 결정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까? 전원믹스의 변동성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정부가 특정 목표에 집착한다면, 전원믹스 정책이 특정 목표 달성 실패 또는 특정 목표에 내재된 위험요인 평가의 실패라는 리스크에 취약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파장은 지금 유럽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 차원에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과정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원믹스는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로 그 성격을 변경하고 전원설비의 선택은 사업자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정부의 역할은 평소 시장의 실패 위험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전력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대비책을 갖추는 것일 것이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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