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국가와 사회 탄소중립 실행비용 공동부담해야"

[글 싣는 순서] 
③ - 탄소중립과 전원믹스 (하)
④ - 좌초자산의 법정책적 문제
⑤ - 탄소중립과 LNG발전의 미래 (다음연재)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현재 전력산업에서 기후엘리트들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타깃은 석탄발전소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석탄발전소에게 장래 그리 머지않은 때에 전부 퇴출되어야 한다는 신탁을 내렸다. 비록 석탄발전소가 그간 안정적·경제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온 기저전원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신조 아래서는 파괴되어야 마땅한 탄소문명의 대표적 유물일 뿐이다. 그런데, 석탄발전사들이 탄소중립은 시대적 숙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신탁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만약 석탄발전사가 이미 석탄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충분히 회수한 경우라면 과감하게 전환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 이들 발전사에게 다른 발전사업 기회가 부여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전력시장에 진입하였거나 곧 진입할 예정인 석탄발전사의 경우에는 도저히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석탄발전사 경영진이 석탄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댄 자본가들에게 배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 회수를 완료하지 못한 석탄발전설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탄소중립 실행을 위해서는 몇몇 석탄발전소에 대한 강제적 폐쇄 조치가 요구될 것이다. 석탄발전소에 대한 강제적 폐쇄 조치는 해당 사업자의 재산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침해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강한 공익적 필요가 인정되어야 한다. 현재까지의 전세계적 시류에 비추어 볼 때, 기후위기 대응이 공익적 가치임은 쉽게 부인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단지 공익적 필요만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며, 법률에 의한 정당한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일부 기후엘리트들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발전소에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환경법의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 의할 때, 석탄발전사가 퇴출 손실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은 환경오염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가 그 오염을 방지하고 환경을 회복하며 피해구제비용을 부담하는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다. 얼핏 생각하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석탄발전소가 퇴출 손실을 지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현재 발생한 기후위기에 대한 주된 책임은 과거에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내뿜은 미국과 유럽 기업들에게 있는 이상, 그 책임을 우리 발전사들에게 온전히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의아하다. 이제 막 전력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하려는 발전소가 책임을 질 이유는 더욱 없다. 무엇보다도, 온실가스는 정상적인 활동에서 발생하는 물질이다. 온실가스의 주된 배출원은 석탄발전소뿐만 아니라 공장, 자동차, 비행기, 제철소 등 다양하다.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의 경우 오염원인자와 책임부담자가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

사실 온실가스 배출을 유인하는 최종 원인은 탄소문명을 살고 있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있다. 탄소문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상, 온실가스 배출행위를 일반적인 환경오염물질 배출행위와 동질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더욱이, 신규 석탄발전소의 진입은 정부에게도 원죄가 있다. 정부는 제5차 및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당시 빠듯한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안정적 수급관리와 충분한 예비력 확보를 위해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적극 유인하였다. 이런 정부 정책을 신뢰하여 전력시장에 진입한 사업자를 이제 와서 기후악당이라고 비난하거나 외면해 버린다면, 상호 협의를 통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해지고 사업자들을 탄소중립에 저항하는 반군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탄소중립 전선은 지리멸렬한 법적 공방의 참호전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러므로, 공동부담의 원칙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탄소중립 실행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것이 장기적 시각에서 탄소중립의 이행가능성을 제고하는 길일 것이다.

한편, 정부와 전력시장 운영자가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도입을 검토 중인 석탄발전 선도시장 방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석탄발전 선도시장은 연간 석탄발전 허용총량에 제한을 두는 석탄발전상한제 하에서 원칙적으로 가격입찰을 통해 개별 석탄발전기 또는 석탄발전사의 발전량을 정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관련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석탄발전상한제 실행을 위해 별도시장을 개설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음에 따라 선도시장 개설의 법적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가격입찰을 통해 발전량을 정하게 되면, 이미 감가상각이 상당 부분 완료된 발전기일수록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어 더 많은 발전량을 낙찰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위발전량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많은 노후 발전기가 더 많이 가동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발전사별로 가격입찰을 하게 될 경우,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석탄발전기가 발전량을 제한당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헌법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은 석탄발전기가 전력시장에서 계통한계가격(SMP)으로 보상을 받도록 하되 온실가스 배출권비용 또는 탄소세 부담을 통해 시장경쟁력을 잃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이변이 없는 한 LNG가격과 석탄 가격의 구조적 괴리가 매우 커 석탄발전이 가격경쟁력을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서 이 방안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자칫 석탄발전사에게 막대한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지나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도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발전사와 판매사가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이다. 계약의 형태는 정부승인차액계약(vesting contract)이나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이 될 것이다. 계약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해 개별 발전기의 발전량을 할당하고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다면, 석탄발전사는 구조적 초과이윤을 얻을 수는 없지만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며 약정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도 단계적으로 감축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장래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고 전력계통 운영에도 문제가 없다면, 예정보다 조기에 석탄발전소를 퇴출시키면서 잔존가치에 대해 보상을 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늦어지거나 전력계통 운영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계약기간을 연장하되 이미 투자를 회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보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급변이 안정적 전력수급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 방안은 전력수급의 안정성 제고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전력산업이 탄소중립 대전의 최전선이 된 이유는 전력산업이 재생에너지를 통해 가장 용이하게 탈탄소화를 실행할 수 있는 산업부문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엘리트들이 자신의 숭고한 신조를 위해 탄소문명의 유산을 무작정 파괴하도록 요구하기보다는 재산권 보장과 적법절차원칙을 요구하는 헌법원칙에 입각하여 탄소문명을 전환해 나가는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 보다 현명하지 않을까?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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