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발전설비 구축속도 및 계통보강 여부 관건"
EU에너지위기는 재생 변동성과 지정학 위기 겹친 탓
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글 싣는 순서] 
④ - 좌초자산의 법정책적 문제
⑤ - 탄소중립과 LNG발전의 미래 
⑥ - 탄소중립과 전력시장의 구조개편


[이투뉴스/박진표] LNG발전은 석탄발전과 마찬가지로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머지않아 좌초되고 말 운명인가? 아니면 탄소문명과 탄소중립문명을 순조롭게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얼마 전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수립 당시 있었던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엘리트들은 LNG발전 또한 본질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탄소문명의 유산임을 강조하며 탄소중립의 실행을 위해 조속하게 퇴출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가 불가피하고 지역수용성, 경제성, 전력계통 등 문제로 재생에너지와 수소의 신속한 확산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LNG발전을 석탄발전과 함께 퇴출시키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LNG발전의 운명은 (전기수요의 파괴를 가정하지 않는 이상) 재생에너지, 수소 등 탄소중립발전이 지역수용성이나 경제성 문제를 얼마나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하여 탄소중립 발전설비가 얼마의 속도로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구축될 것인지, 아울러 탄소중립 발전설비 중심으로 구성된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보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등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탄소중립발전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 급속하게 확산되더라도 LNG발전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이 재생에너지와 수소보다 더 신속하고 더 경제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경우, LNG발전이 생존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심지어는 석탄발전까지 극적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는 기후변화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탄소중립문명의 도래를 하루 빨리 맞이하기 위해 이교도의 잔재에 불과한 탄소자산들을 모조리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기후엘리트들이 제시하는 탄소중립문명의 유토피아적 미래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탄소자산들을 어느 정도 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볼 것인가?

현실의 온갖 역경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는 것은 분명 멋지고 훌륭한 스토리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은 이러한 위대한 개척자들의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 개척자들은 멀고먼 미래의 꿈을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당장의 현실에서 실행가능한 것들을 하나하나 추구함으로써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물론,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혁명적 방식을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공산주의 실험들, 예컨대 모택동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이 증명하듯이 그러한 시도들은 대개 유토피아의 미래상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인간의 선형적 예측의 한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은 개울 건너편을 단번에 뜀박질하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향한 과감한, 어쩌면 무모한 뜀박질은 자칫 우리를 상상하지도 못한 불확실성의 물결에 휩쓸리게 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 국면은 유럽의 풍력발전 급감이라는 재생에너지 변동성 사태에 의해 촉발되어 불운하게도 지정학적 위기가 겹쳐 발생한 것이다(그 지정학적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 각축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간 헤게모니 경쟁이다). 탄소중립을 향한 거대한 문명의 전환은 마치 탈피 중인 동물이 천적에 취약하게 되듯이 인류의 생존을 여러 위기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에너지공급은 단지 그 중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적 제약을 깨닫는다면, LNG를 비롯한 탄소자산의 무조건적 축출은 안타깝게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EU 택소노미, 그리고 K-택소노미에 천연가스 내지 LNG가 포함된 것은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탄소중립 발전설비가 경제성과 지역수용성을 갖추게 되고 전력계통 문제도 해결된다면, 그때는 LNG 발전에 대해 그간 노고를 치하하면서 아름다운 퇴장을 두 손 들어 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LNG 발전 역시 여러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 비록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더라도, 국가정책의 지향점이 탄소자산의 신규 건설을 억제하는 데에 있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탄소자산을 건설하는 것은 상당한 법적 리스크를 부담하는 일이다. 그로 인해, 세속에서는 탄소중립 시대가 되면 필연적으로 좌초자산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LNG발전소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탄소중립정책으로 불확실한 가동연한 내에 신규 LNG발전소에 대한 투자비용을 회수할 있다는 전망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하여 전력계통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한 LNG 발전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배터리 방식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경우 비용이나 안전성 문제로 인해 본격적인 투입시점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그린플레이션과 자원 수출국의 원자재 수출 제한이 본격화되는 경우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LNG 발전의 변동성 대응 역할에 대한 불충분한 보상구조는 신규 LNG 발전소 투자회수 전망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위험 요인들은 전환기에 국내 전력공급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한편 유연성자원으로서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LNG발전의 건설을 불확실하게 함으로써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전력계통 운영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만약 LNG발전이 탄소중립을 향한 전환기에 가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에 따른 전력시장 교란으로 에너지전환에 대한 강력한 역풍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

LNG발전이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위험은 LNG가 상대적으로 가격변동성에 취약한 자원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LNG수급이 지구 곳곳의 지정학적 위기에 매우 취약할 수 있음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앞으로 본격화될 미-중-러 사이의 헤게모니 전쟁은 당분간 글로벌 LNG시장을 사실상 전쟁상황으로 내몰 우려가 크다. 이러한 악조건에 대한 뾰족한 해법이 있을까? 아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해법은 전력시장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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