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생태계 무너뜨리는 CBP체제
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글 싣는 순서] 
⑤ - 탄소중립과 LNG발전의 미래 
⑥ - 탄소중립과 전력시장의 당면과제
⑦ -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시장 그레이트 리셋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전력시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서 전력시장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탄소중립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각종 난제들에 대해 전력시장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나뉘어질 것이다. 

다른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전력산업 역시 석탄발전, LNG 발전 등 탄소에 깊이 의존해 왔기에 전력산업의 중추적 기능, 즉 전력수급을 담당하는 전력시장의 작동방식 역시 탄소문명에 종속되어 있음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의 실행을 위해서는, 그와 더불어 탄소중립 실행이 야기할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전력시장의 작동방식을 면밀히 살펴본 후 어떤 부분에 변화를 줄 것인지에 대하여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전력시장의 의미를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현물거래시장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전력거래가 이루어지는 이상, 전력시장은 발전사와 수요자 간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으로 구성될 수도 있고, 나아가 CfD(contract for difference)와 VPPA(virtual power purchase agreement) 등 가상의 재무적 전력거래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전력시장의 당면과제는 다양하다. 우선, 전력시장 작동방식을 온실가스 감축방법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된다. 크게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비용을 전력거래가격에 반영함으로써 가격 기능을 통해 전원을 결정하는 방식과 탄소자산의 발전량을 직접 제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의 방안은 자칫 전력구매비용 급등에 따른 전기소비자들의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 후자의 방안은 탄소자산에 대한 재산권 침해를 초래하므로 이를 위한 입법자들과 전력당국의 신중한 입법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전력시장의 가격결정방식을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실시간 전력공급의 변동성을 키움으로써 전력거래가격의 변동성 또한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현행 전일(day-ahead) 전력시장 방식은 전력거래가격을 전력거래일 전날에 예측치를 바탕으로 정함으로써 실제 전력수급 대응에 필요한 고해상도 실시간 가격신호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전력수급의 왜곡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변화를 거듭하는 전력수급의 실제에 적합한 전력공급원의 신규 진입, 나아가 첨단 전력기술의 도입을 막음으로써 전력산업의 낙후를 야기할 것이다.

당면과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전력시장 내 안정적 전력공급원인 탄소에너지 비중이 줄어들고 변동성 전원인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전력공급의 변동성 대응이 전력시장의 난제로 떠오를 것임이 분명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태양광, 풍력, 수력과 같은 자연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기에 전력시장은 자연에너지의 간헐성이 초래하는 기상 리스크에 갈수록 더 많이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상 리스크는 잠깐 구름이 끼었다 걷혔다든가 바람이 불었다 말았다 함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하는 미시적 리스크일 수도 있지만, 장기간의 기상 이변에 따른 거시적 리스크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전기의 저장이 매우 어렵고 전기수요의 조절수단도 보편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에 따라 전기의 수요와 공급은 매우 비탄력적이다. 그리하여, 그리 크지 않은 전력수급 불일치라도 주파수 급락에 의한 전력계통의 총체적 붕괴, 즉 블랙아웃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미시적 기상 리스크에 따른 변동성 대응이 결코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며, 전력시장 운영 측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실제로 우리 전력시장도 재생에너지 증가로 인해 원자력발전 등 기저전원의 출력조절 문제가 머지않아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거시적 기상 리스크는 더욱 큰 문제이다. 작년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재생에너지 모범 국가들이 장기간 기상이변에 따른 풍력발전량 감소로 인해 전기요금 급등을 겪었던 것이 거시적 기상 리스크의 최초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거시적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대비 없이 탄소자산을 퇴출해버린다면, 전력시장은 재생에너지의 변덕에 정면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전력시장은 탄소중립을 실행하기 위해 탄소자산을 줄여 나가는 방향과 탄소중립 실행이 초래하는 거시적 기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일정 부분 탄소자산을 유지해야 하는 방향에서 어떻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탄소문명을 탄소중립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부득이 탄소자산을 어느 정도는 안고 가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전력시장의 당면과제는 무궁무진하며, 그 하나하나가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탄소중립의 실행방안 마련에 앞서 신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매우 심각한 버그(bug)에 시달리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적 오류를 하루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 실행은커녕 전력시장의 근본체계가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영화 매트릭스 2편과 3편에서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스미스 요원이 바이러스처럼 무한 증식하자 매트릭스 세계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치명적 버그는 우리 전력시장에서 CBP(변동비 기반 시장) 체제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 전력시장의 아키텍트는 아마도 자신이 창조한 매트릭스 안에서 만인이 낮은 전기요금으로 안락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버그로 변이를 일으킨 후 마치 악성종양 혹은 자가면역질환처럼 본체인 전력시장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해 전력구매비용이 급등하자 이 버그들은 더욱 활개를 치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전력시장의 자체 붕괴를 막아내고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안정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이는 우리 전력시장의 미래, 나아가 전력산업 생태계의 사활적 이익(existential interest)을 걸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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