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전력계통 위한 도매시장 재설계 방향 진단
제주서 15분 단위 실시간·보조서비스 시범 적용
재생에너지는 주력전원화 가격입찰제 도입검토

▲실시간 전력수급을 위한 계통 관제가 이뤄지고 있는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실시간 전력수급을 위한 계통 관제가 이뤄지고 있는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이투뉴스] 전력수급 하루전 현물시장(Day-ahead market)을 열어 다음날 1시간 단위 24시간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의 기존 전력시장제도가 빠르면 내년부터 15분 단위 실시간‧보조서비스시장 병행체제로 전환된다. 또 요건을 충족하는 일정규모 이상 재생에너지는 전력시장 입찰에 참여해 기존 발전기와 같은 전력거래가 가능토록 시장참여가 허용된다.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조금씩 비중을 높여온 재생에너지가 지난 20년간 꿈쩍도 하지 않던 도매 전력시장제도 개편의 방아쇠를 건드렸다. 낮밤에 따라, 기상‧기후여건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는 재생에너지가 점차 늘어나면서 전통 화석발전기 중심의 하루전 시장만으로는 실시간수급과 변동성 대응 및 참여자원 유인과 보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력당국과 발전업계에 따르면 곧 출범하는 윤석열정부가 2030년 전력믹스 목표를 수정해 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이고 그만큼 원전을 늘린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계통을 운영하려면 기존 시장 혁신은 불가피하다. 원전은 경제성‧안전성 문제로 출력조절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고, 재생에너지 역시 발전량 증‧감발이 안되는 간헐성이라 이를 보완할 유연성 전원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특히 매년 GW단위로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는 당장 2025년 전후로 계통운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력수요는 적은데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경직성 전원 비중은 높고, 유연성 전원도 더 이상 최소출력을 낮추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해서다.

이를 해결하려면 시장제도 개선은 물론 계시별요금제를 강화하고(야간부하를 낮 시간대로 이동), 양수‧ESS‧수전해 등 에너지저장이나 섹터커플링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진이 전력거래소 실시간시장팀장은 “주전원과 유연성전원의 적정구성으로 공급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면서 “전력‧열‧수소‧수송 등의 섹터커플링은 에너지통합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력시장 구조 재설계 방향 ⓒKPX 시장혁신처
▲전력시장 구조 재설계 방향

당국은 화석연료 발전기 기반의 기존 하루전 현물시장에 저탄소신자원 중심의 계약시장과 실시간현물시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도매시장 구조 재설계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외시장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3~5년 단위 장기계약시장이나 1개월 단위 단기계약시장도 아직 운영하지 않고 있다.

첫 단추는 올해부터 시범도입하는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으로 꿴다. 에너지시장은 기존 가격결정발전계획을 계통여건을 고려한 발전계획으로 전환하고, 그에 따른 전력거래량 낙찰로 실제 계통여건과 시장가격과의 괴리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발전기 자기제약이나 송전제약, 예비력 요구량 등 실제 계통여건을 반영하지 않았고, 하루전시장은 시장가격 결정에만 사용했다.

보조서비스의 경우 실제 예비력을 공급한 발전기가 보상을 받도록 예비력용량가치 정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연간 400억원 수준인 보조서비스시장 규모는 4000억~5000억원으로 10배 이상 확장될 전망이다. 연간 50조원 안팎 규모의 현행 도매시장에서 에너지시장과 용량요금은 각각 43조원, 7조원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보조서비스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앞서 작년 1월 정부는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에 관한 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완료하고 시행시기를 올 하반기로 못 박았다. 기존 하루전시장이 석탄화력에 불리하고 가스발전처럼 유연성 전원에 불리한 제도였다면, 실계통기반시장은 발전기가 실제 제공한 가치로 보상기준을 바꿔 양쪽의 유‧불리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주력전원화에 대비해 가격입찰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우선은 작년 10월부터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제도를 시범 도입해 하루전 예측량을 제출한 뒤 당일 공급량이 오차율 이내인 발전기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는데, 향후 이를 발전량입찰제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김진이 팀장은 “재생에너지는 급전지시에 따라 출력을 제한해도 별도보상을 받을 수 없어 계통안정을 위한 제어지시 협조 유인이 부족하다”면서 “송전망에 연결하는 대형 재생에너지는 입찰을 허용해 기존 발전기와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배전망 접속 소규모는 중개사업자가 모집해 집합발전소 형태로 입찰을 허용해 그에 따른 책임과 보상을 부여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시장 신설은 내년말 제주도부터 시작해 2025년부터 내륙계통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실시간시장은 시장가격을 기존 1시간에서 15분 단위로 단축해 가격을 세분화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하루전시장 이후 15분마다 전력시장을 개설해야 한다. 보조서비스시장은 유연성 제공에 대한 적정가치 보상을 위한 시장으로, 15분 단위로 시장을 개설해 비용효율적으로 유연성 자원을 확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하루전시장만 존재하는 현행 시장은 산불이 나도 가격이 그대로이고, 재생에너지 발전력이 과도해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형태”라면서 “향후 탈탄소화로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 실시간 변동성이 급증해 하루전시장만으론 밸런싱 유지가 어렵다. 실시간 가격기능이 작동하면 발전력이 부족할 경우 가격이 상승해 공급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시간시장과 함께 15분 단위 보조서비스 시장도 개설해 예비력도 상품으로 실시간 거래가 이뤄질 예정이다. 보조서비스시장은 10초 이내 응동해 5분 이상 출력을 유지하는 1차예비력(700MW)과 5분 이내 응동해 30분 이상 유지하는 주파수제어예비력(1000MW), 10분 이내 응동 30분이상 유지 2차 예비력(1400MW), 30분 이내 응동 3차 예비력(1400MW) 등으로 구성된다.

예비력용량가치정산금은 전년기준 단일 평균단가로 책정되지만, 보조서비스시장이 도입되면 단가기준이 아닌 시장가격으로 결정돼 예비력 부족 시 그 가치가 추가돼 가격이 상승할 전망이다.

한편 실시간시장은 재생에너지 변동성 등 수급여건을 반영해 정확한 전력의 가치를 산정하고 보상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설계되고 있다. 하루전시장은 기동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주로 화석연료 발전기들의 운용계획을 결정하고, 실시간 시장은 양수발전처럼 빠른 응동이 가능한 유연성 자원의 추가투입이나 실시간 출력조정, 예비력 미세할당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실시간시장의 경우 재생에너지 변동성이나 송전선로 불시고장 등 하루전 예측이 어려운 실시간 상황을 반영해 시장가격이 결정되므로 시장원리에 의한 실시간 수급균형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진이 전력거래소 실시간팀장은 “우선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를 대상으로 시범운영한 뒤 안정화 단계를 거쳐 전국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기준으로 한 미래 전력믹스 예시 ⓒ 전력거래소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기준으로 한 미래 전력믹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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