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어느 대통령이든 취임한 후 공기업 먼저 타깃으로 잡는다. 방만경영 한다며 호통치면서 혁신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도 똑같다. 일종의 ‘군기 잡기’로 보면 된다. 공기업을 때리면 언론과 기업 등 다수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기업 경영효율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녀사냥으로 흘러선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너지공기업에 다니는 한 임원은 최근 대통령실 및 기획재정부에서 앞장서고 있는 ‘공공기관 잡도리’에 대해 이렇게 평가절하했다. 어느 정권이든 취임 초기 공기업 방만경영 문제를 터뜨려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장·감사가 물러나도록 압박하는 사례가 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정이 제대로 안 풀릴 때 여론전환 및 시선돌리기 용도로도 곧잘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공공기관 부채가 지난 5년 간 급증해 작년말 기준 583조원에 달하는 데도 불구 조직과 인력은 크게 늘었다"며 공공기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발언에 이어 공공기관을 평가 관리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역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기재부는 한전 및 발전자회사, 지역난방공사, 토지공사 등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하는 등 갈수록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정부에 공기업의 부채규모가 83조원 가량 늘어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해광업공단, 석탄공사 등 자원공기업의 경우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거나 부채비율이 300%를 넘을 정도로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빠짐없이 경영성과급을 챙겨갔으며, 지방이전하면서 지은 청사 역시 호화찬란하다. 비판 받을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부실과 비효율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다.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원공기업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측근이 휘둘러 온 에너지자급률 제고라는 미명 아래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다녔다. 또 집값이 오를 때마다 신도시 개발과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정책목표를 내세워 LH를 압박했던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 역시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들은 마땅한 대상이 없는데도 불구 지원해 줄 중소기업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비정규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많은 공공기관이 이들을 정규직화하거나, 자회사를 만들면서 인원이 크게 늘었다. 원료비가 올랐는데 요금을 올리지 못해 적자가 쌓였다. 결국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비효율, 성적부진은 정부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공기업 수장이나 종사자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NO’라고 말하지 못한 것과 제대로 된 사업성 평가 없이 조직 확대만을 꾀하는 풍토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조장한 측면이 크다. 사업의 종류에 따라 공공성을 중시할지 아니면 시장성을 강조할지 정하지 못한 채 정권 입맛에 따라 평가기준이나 요구사항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공공기관이 따라가면 정부나 공기업 모두 편하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공공기관이 효율적이지 못하고 방만하게 운영하면 민영화하거나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하면 된다. 꼭두각시로 만들면 거기서 또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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