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주요국 전력산업 구조비교' 보고서 발간
"시장원리 무시 공공독점 적자원인, 지속불가능"

▲주요국 전력산업 구조 비교 ⓒ전경련
▲주요국 전력산업 구조 비교 ⓒ전경련

[이투뉴스] 대용량 소비자부터 소매부문 경쟁을 도입해 전력산업의 독점구조를 해소하고 한전의 송·배전 부문을 분리해 전력망의 중립성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1일 발간한 '주요국 전력산업 구조비교 및 시사점'이란 제목의 글로벌 인사이트 보고서에서 "한국도 경직된 전력산업 구조에서 탈피해 근본적인 개혁의 토대를 마련, 시장의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전이 경영위기에 빠져있고, 새 정부가 연일 규제혁신과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재계 대표 경제단체가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해외 선진국은 발전-송전-배전-소매를 일괄운영하는 독점회사에 대한 구조개편을 통해 경쟁적인 전력 도·소매 시장을 구축했다. 모든 나라가 발전과 소매부문 경쟁체제를 도입했고, 송배전망은 독립법인화 해 중립성을 확보했다.

반면 한국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3단계에 걸친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계획을 수립했으나 노무현정부 들어 격화된 노조의 반발로 발전부문에서만 부분적인 경쟁을 도입한 상태에서 중단돼 여전히 한전 중심의 공공독점 체제다. 

문제는 그 사이 해외 주요국이 역동적인 시장환경을 조성해 우리와의 격차를 벌렸다는 점이다. 전력산업 시장자유화 모델을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은 영국은 1990년 국영 독점회사에 대한 수직분리 및 수평분할을 시작해 1999년까지 소매부문 경쟁을 단계적으로 도입했고, 현재는 발전-소배 겸업사업자 및 소매사업가간 경쟁이 활성화된 상태다. 

그 결과 과점상태였던 소매시장에 소규모 사업자들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브리티시가스나 OVO energy사와 같은 소매사업자겸 혁신벤처기업이 등장해 신기술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내 송전회사는 3개사, 배전회사는 6개사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지역독점 해체로 이종산업 시장진출이 왕성하다. 2000년부터 소매부문 경쟁을 단계적으로 시작해 2020년에는 10대 민영 독점회사의 송배전망 법인을 분리시켰고, 현재는 도쿄전력 등 기존발전-소배겸업 10대 전력회사가 소매시장의 82%를 점유한 가운데 신규 소매사업자와 치열한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개혁이 중간에 좌절된 우리나라와 달리 20여년에 걸쳐 차근차근 구조개편을 추진한 것이 특징이다. 재작년 송배전망 분리까지 완료하면서 신규 소매사업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통신회사와 가스회사 등 이종산업 사업자들이 전력 소매시장에 진출해 다양한 에너지결합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개혁 정책에 따라 일본의 대표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화력발전부문을 통합하는 등 사업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에너지전환(Energiwende) 정책을 선도하는 독일도 1998년부터 일찌감치 시장자유화 모델을 도입한 국가다. 4대 민영 독점회사의 송전망을 분리독립시켜, 현재는 E.ON이나 바텐팔, RWE와 같은 지역기반의 발전-배전-소매 겸업 4대 회사와 다수 소규모 배전-소매 사업자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형성했다. 

독일의 대표 전력회사인 E.ON도 최근 발전부문을 매각하고 분산전원·에너지·효율·전기차 충전 등 소매신사업에 특화된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과 전력산업 구조가 가장 유사한 프랑스는 원전과 송전은 국유화하고 소매와 재생에너지는 시장경쟁을 추구하는 형태다. 시장자유화로 소매부문을 민간에 개방하고, 송전 및 배전부문을 별도의 법인으로 분사시켰지만 공기업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여전히 전력산업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Hercules Project'라는 EDF 구조개혁 프로젝트를 추진, 원전과 송전망을 국유화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전-소매-신재생 분야에서는 시장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소매부문에서는 시장경쟁이 주는 편익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2000년 송전망을 분리해 RTE란 국영송전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시장자유화를 통해 소매부문 경쟁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이들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OECD 37개국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송배전망과 전력 소매시장의 독점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다. 한국의 전력산업이 지난 20여년간 불합리하고 경직적인 규제로 정체돼 있는 사이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도 전력시장 자유화 작업에 착수했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규제개혁과 시장경제를 기치로 내건 새 정부는 에너지정책 방향을 ‘경쟁과 공정의 원리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 및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 확립’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단추가 바로 소매부문 경쟁도입이다. 소매경쟁은 에너지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인다. 신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수요혁신도 전력 소매독점 체제에서는 달성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대용량 소비자부터 단계적으로 소매개방을 추진해 에너지혁신벤처기업을 육성하고 ▶한전 송배전 법인분리 등으로 송배전망 중립성을 확보해 다양한 사업자간 공정경재 여건을 마련하되 ▶개혁과정에서의 시장혼란과 요금상승 우려에 따른 보호조치로 독일의 특별균등화제도나 영국의 장기전력조달제도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시장원리를 무시한 공공독점 체제는 한전 만성적자의 근본 원인이며 이러한 체제는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면서 "전력산업 개혁논의를 계속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보다 시장친화적이고 혁신주도적인 체질로 개선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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