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가격 정상화 및 비상상황 수급관리 전무"
"에너지위기 단기간에 안끝나, 대국민 메시지 필요"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달 24일 의왕시 소재 전력거래소 경인지사를 방문해 센터 운영현황과 여름철 전력수급 대응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산업부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달 24일 의왕시 소재 전력거래소 경인지사를 방문해 센터 운영현황과 여름철 전력수급 대응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산업부

[이투뉴스] “각국이 비장하게 올겨울을 대비하고 있는데, 한국은 왜 이런 얘기가 전혀 안 들리나요? 최소 국민들이 에너지절약이나 비상상황에 대한 각오라도 하게 해야지요.” (에너지기업 한 CEO) 

글로벌 에너지수급 위기와 그로인한 공기업 재정부실을 사실상 손놓고 있는 윤석열정부를 향해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수급위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요금현실화로 국민들의 수요관리를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4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글로벌 천연가스(LNG) 현물가격은 올초 대비 2.3배, 석탄은 2.5배 각각 상승했다. 기간을 2년으로 넓혀 이 기간 최저가와 비교하면 LNG는 30배, 석탄은 8배 이상 뛰었다. 국내 전력공급의 60%이상을 감당하는 핵심 연료들이다.

상황은 악화일로다. 러시아로부터의 LNG도입이 요원해진 유럽국가들이 대체물량 확보경쟁에 뛰어들면서 웃돈을 주고도 물량을 구하지 못하는 가스대란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스발전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미래가 예측불허인 적이 없었다. 장기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해도 가격은 별개 문제”라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가격상한이 능사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각국은 공급-수급-수요관리 측면에서 전시상황에 준하는 대응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독일은 석탄화력 4.3GW를 재가동하기 위한 비상령을 선언했고, 영국은 4분기 적용 전기료·가스료 상한선을 4월 대비 각각 86%, 114% 인상토록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영국 전기료와 가스료는 한국의 약 6.8배, 3.6배로 뛴다.

고강도 에너지소비 절약은 기본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겨울철 가스부족에 대비해 내년 3월까지 회원국들이 LNG사용량을 15% 감축토록 제안했고, 이집트는 공공시설 조명조도 제한과 정부건물 소등으로 전기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는 여름철 전력수요 증가에 대응해 비트코인 채굴업자들의 전력사용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기업과 시민에 에너지절약을 호소하는 쪽이다.

이와 달리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무풍지대다. 이달초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전사들과 에너지공기업들을 만나 연료 재고현황을 파악하고 “비상 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초유의 위기에 정부가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비상선언을 하고 한시적으로 석탄발전 상한제 같은 제도 포기를 결정해야 할 때”라며 “준전시 상태로 보고 전력시장에서도 초과이윤 회수 등의 긴급조치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손을 놓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가격 정상화를 수급위기 극복의 첫단추로 꼽는다. 과거 고유과 상황과 질적으로 다른 위기이므로 전기료와 도시가스료 원가 반영으로 소비절약 신호를 줘야한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이번 겨울이 지나도 향후 4~5년은 혹독한 가스공급 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한전·가스공사 역시 천문학적 적자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며 "가장 먼저 할 일은 전기료와 도시가스료에 원가를 반영해 소비자나 기업이 스스로 사용량을 감축하고 효율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시그널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석 위원은 도시가스 보급률이 세계 2위(85%)인 우리나라가 유럽만큼 이번 에너지위기에 취약하다면서 "그간 취해 온 도시가스 요금 보조를 중단하고 대신 주택단열개선과 저소득층 보호로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독일은 내년부터 2026년까지 563억유로를 투입해 건물에너지 효율 개선에 나서고, 네덜란드도 2030년까지 전체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250만호의 주택효율 개선을 추진한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는 "정치적 결정과 판단에 의존하는 에너지수급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리처럼 전국적인 가스배관망과 초고압 전력망 인프라를 갖춘 나라는 없다. 지금껏 과잉투자돼 왔고 나름 잘 관리돼 왔다. 하지만 유럽처럼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줘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공무원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받아 그 목표 달성에 여념이 없다. 지금은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 서로 좋다 나쁘다 싸울 때가 아니라 국가 전체 에너지시스템의 효용이 최대화되는 지점을 찾아 경제와 에너지시스템의 논리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