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전환공급까지 검토
러시아 조달 여의치 않은 상황서 상업화공급 난항

[이투뉴스]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기업들이 정작 핵연료를 조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고순도·저농축 우라늄(HALEU)을 수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의 농도를 낮춰 차세대 원자로 연료로 공급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주요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 수급위기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는 반면 현실적인 핵연료 수급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이 “HALEU 생산이 중요한만큼 생산량 증대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소형 원전을 옹호하는 이들은 짧은 건설기간과 높은 효율을 차세대 원전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화석에너지 의존도를 빠르게 낮출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어떤 소형 원자로든 고순도 HALEU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공염불이다. 개발사들도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주를 받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핵연료 공급자 역시 신규 원전 수주없이 러시아산 우라늄을 대체할 정도의 상업적 규모 공급망을 갖추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은 “지속가능한 시장 주도의 HALEU 공급처에 인센티브를 줘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고순도 우라늄 보유량 585톤 가운데 얼만큼을 핵연료로 할당할지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HALEU의 우라늄 농도는 20%수준이다. 대부분의 기존 원전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은 5% 농축분이다. 

현재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 로사톰(Rosatom)의 자회사인 TENEX사(社)만이 HALEU를 상업적 규모로 판매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산업에서 TENEX가 차지하는 중요성 탓에 로사톰에 경제작 압박을 가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원자로 개발사인 X-에너지와 테라파워는 러시아산 연료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 측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료문제는 없었다”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는 게 불편해졌다”고 밝혔다. 원자력은 현재 전 세계 전력생산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몇몇 국가들이 신규 사업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원전 사업은 높은 초기비용과 사업 지연, 비용 증가, 저렴한 재생에너지원과의 경쟁 등으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안전성과 효율을 높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이다. 미국 정부가 자금을 댄 차세대 소형 모듈 원자로 10곳 중 9곳은 핵연료로 HALEU를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원자로보다 연료 재주입 빈도는 적지만 효율은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상업적 규모로 건설되거나 가동된 적은 없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 대형 원자로를 대체할 유망 기술로 기대하고 있다. 에너지 이노베이션 리폼 프로젝트 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차세대 원자로의 균등화비용 손익분기점은 MWh당 60달러로 전통 원전(97달러)보다 낮다. 일부 전문가들은 HALEU가 대규모 생산체제를 갖출 경우 금액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기업들은 상업적 규모로 HALEU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실제 생산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아직 소형 원자로가 상업화 이전이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연료 공급사 센트러스 에너지사의 대니얼 포네먼 CEO는 “어느 누구도 연료원 공급처 없이 10개 원자로 주문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원자로 10개도 없는 상태에서 연료원에 투자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차세대 원자로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연료 공급처는 사업 결정 과정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연료 공급사들도 같은 입장이다. 

미 정부는 러시아의 HALEU 독점이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방해가 될 것으로 우려해 2019년 센트러스사에 시범 생산설비 시설을 짓는 계약권을 부여했다. 트러스는 러시아 지역 이외에서 유일하게 HALEU 생산 라이센스를 보유한 회사다. 하지만 올해 예정된 HALEU 생산은 또다시 내년으로 미뤄졌다. 지구촌 팬데믹으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 저장 설비를 제때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센트러스 측은 밝혔다. 

이 시설이 가동되면 5년 뒤 연간 13톤의 HALEU 생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에너지부가 2030년까지 미국내 원자로에서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 용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테라파워는 차세대 원자로의 첫번째 연료 주입에 15톤의 HALEU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국영 우라늄 채굴·농축 회사인 오라노사(Orano)는 HALEU 생산에 5~8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계약을 체결한 고객사가 있을 경우다. 오라노는 생산여부가 미국 정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오라노 측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 에너지부가 (연료) 수요량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럽 우라늄 농축회사인 우렌코(Urenco)사는 미국과 영국에서 HALEU 생산을 위한 사업지를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생산 허가권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미국 와이오밍주와 워싱턴주에서 차세대 원자로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테라파워와 X-에너지는 러시아를 대체할  연료 공급처가 나타나기 전까지 건설을 미룰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HALEU의 20% 농도는 핵무기 농도 90%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패키징이나 연료 운반 등 생산과 보완에 대한 특별허가가 필요하다. 연료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이 또한 긴 시간이 소요된다. 앞서 2016년 미국 정부는 7.1톤의 우라늄을 저농도로 희석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7억 달러를 HALEU의 공급 안정화와 차세대 원자로 연구를 위한 에너지부 컨소시엄 등에 할당했다. 지난달 백악관은 HALEU 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15억 달러 예산 확보를 의회에 요청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 원전은 우라늄 연료 사용량의 14%, 농축 서비스의 28%를 러시아에서 조달했다. 

조민영 기자 myjo@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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