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석유 쫓는 석유관리원 검사팀 동행취재
"국민과 함께 뛰어야 가짜석유 사라져" 당부

▲석유관리원 관계자가 화물차량에서 경유 샘플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석유관리원 관계자가 화물차량에서 경유 샘플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이투뉴스] "올해만 전국 휴게소 등에서 1735대의 유류제품 샘플을 채취했다. 전국 주유소(1만1000여개) 중 10% 이상의 기름을 간접적으로 점검한 셈이다. 직접 주유소 현장에 나가는 것까지 감안하면 매년 점검하는 주유소 수는 훨씬 많다." 최근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에서 만난 박경수 한국석유관리원 수도권북부본부 검사팀 차장의 설명이다. 

석유관리원은 매주 화요일을 '품질점검 서비스의 날'로 정해 차량이 많이 몰리는 곳을 중심으로 차량연료 품질점검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차량에서 직접 유류를 뽑아 가짜석유 여부 및 품질을 점검한다. 이동식 검사차량을 이용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이상유무를 통보해 준다.

보통 하루 현장검사에서 20건가량의 기름 샘플을 채취한다. 석유관리원 검사팀이 차량 차주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발품을 파는 방식이다. 차주가 허락을 하면 100~150ml 가량의 소량 기름을 뽑아내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분 남짓.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안내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가장 최근에 주유한 주유소와 본인 연락처 등 필요한 정보도 함께 요청한다.  

하루 20건의 샘플 채취가 적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석유관리원은 올해에만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및 자동차검사소에서 82회 검사를 진행했다. 전체 1735대 차량에서 샘플을 채취했는데 모든 차량이 각기 다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고 가정하면 이는 전국 주유소 10% 이상이다. 해마다 전국 주유소 10곳 중 1곳의 기름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직접 주유소 현장을 찾아 점검하는 것까지 더하면 실제 감시망에 포함되는 수는 더 많다.

▲기름을 채취하는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기름을 채취하는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최근 가짜석유는 경유에 등유를 섞은 가짜경유가 대부분이다. 가짜휘발유는 거의 사라진 추세다. 때문에 검사현장에서는 휘발유차량이 아닌 화물차량과 트럭 등 경유차량을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디젤차량은 가솔린차량과 달리 기름을 현장에서 쉽게 뽑아낼 수 있다는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가솔린은 폭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종의 역류방지장치가 있어 현장에서 바로 채취하기 어렵다.

20건의 시료 채취를 위해서는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차주가 본인의 차량 주유구를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상 혹은 번거로움을 이유로 거절하는 사람도 많고, 되려 성을 내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박경수 차장은 "간혹 짜증을 내시는 분들도 있는데 유쾌한 경험은 당연히 아니"라면서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고 계신다. 실제로 홈페이지 안내를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오늘 비가 왔더라도 검사는 해야 한다.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늘은 먹구름이 진하게 드리웠다. 

◆3개 시험항목 거쳐 15분 내 결과통보
채취한 시료는 이동식 차량에서 시험 및 분석을 거쳐 해당 차주에게 즉각 통보된다. 결과 안내까지는 10분 내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검사팀은 현장에서 온통 보라색에 집중한다. 가짜석유의 가장 큰 시그널이 보라색이기 때문이다.

등유에는 가짜경유를 막기 위한 조치로 2000년부터 식별제(유니마크 1494 DB)가 함유돼 있다. 이 식별제는 특정 발색시약을 만나면 보라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가짜경유 유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경유에 시약을 넣었는데 보라색으로 변했다면 등유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등유 혼합량이 많을수록 더 진한 보랏빛을 띈다. 순수한 경유에는 당연히 반응하지 않는다.

▲발색시약은 등유에 들어가 있는 식별제와 반응해 보라색으로 변하게 된다. 왼쪽 샘플이 일반경유, 오른쪽은 등유가 섞인 가짜경유. 시약을 넣은 전후 비교사진.
▲발색시약은 등유에 들어가 있는 식별제와 반응해 보라색으로 변하게 된다. 왼쪽 샘플이 일반경유, 오른쪽은 등유가 섞인 가짜경유. 시약을 넣은 전후 비교사진.

이와 함께 이동식 차량에서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C) 시험기와 황분시험기를 통한 검사도 거친다. GC는 액체를 360도 고열로 기화시켜 화학물질의 조성분포를 보는 시험법이다. 내부 성분을 일일이 쪼개 정상적인 기름 성분과 대조·분석한다. 황분시험기는 황 함유량을 보는 시험법이다. 선박용경유는 고황분이기 때문에 이를 섞어 가짜경유를 제조했다면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용경유에 선박용경유를 섞은 것도 다른 석유제품을 섞은 것이기 때문에 가짜석유다. 

만일 현장에서 채취한 기름이 가짜석유로 의심이 된다면 2차 정밀검사를 통해 진위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석유관리원은 제보받은 주유소 위치를 시작으로 역추적 단속을 벌인다. 가짜석유와 관련해서 석유관리원이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건의 규모가 클 경우에는 수사기관과 같이 공조하기도 한다. 협조한 차주에게는 최대 1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석유사업법은 석유제조업자를 처벌하는 것이기 주목적이기 때문에 차주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일절 없다. 

박경수 차장은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음주운전 단속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박 차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주운전 단속현장에서 불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본인이 떳떳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짜석유 단속현장이나 점검현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괜스레 강하게 거부하는 주유소 사업자나 차주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가짜석유 퇴치, 소비자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

▲김동하 대리가 그간 검사업무를 하면서 겪은 일화를 말하고 있다.
▲김동하 대리가 그간 검사업무를 하면서 겪은 일화를 말하고 있다.

김동하 석유관리원 검사처 대리는 가짜석유 검사업무만 10여년 가까이 수행한 베테랑이다. 과거 대전세종충남본부에서 3년, 수도권 남부본부에서 4년을 근무했다. 현재는 본사 고객만족팀에서 품질점검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동식 검사차량을 직접 운행하면서 지역본부 검사팀과 함께 전국 고속도로를 누비고 있다.  

김 대리는 차주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손사레를 치며 거절당한 경험이 많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차주들이 자신들을 차량제품 영업사업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화물차주 분들은 기름이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짜석유 등에 관심이 있는 분도 많지만 무관심한 분들도 있다. 이들에게 많은 거절을 당하곤 한다"고 말했다.

석유관리원을 소개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인에게 석유관리원은 생소하기도 하고, 한국석유공사와 헷갈리기도 쉽다. 그는 "스스로를 가짜석유를 단속하는 정부기관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러면 바로 이해하시고 도와주시려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지역본부 검사팀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짜석유 불법시설물 현장도 직접 단속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수사기관과 같이 현장점검을 벌인다. 불법시설물은 적발 즉시 주유소 등록취소 및 행정처분을 받는다. 그야말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이다.

그는 "당시 일행들은 주유소 사무실 안에 밸브를 여닫는 스위치를 만들어 가짜석유를 선별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면서 "우리가 신분증을 내밀고 점검을 요청하면 스위치를 올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신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차량에 담긴 가짜기름을 시작으로 확신을 갖고 단속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짜석유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강하게 의심이 들 경우 본인 차량에 담긴 기름을 직접 분석해 보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정비소에서 기름을 뽑아 달라고 하고 이것을 석유관리원에 제시하면 된다. 소비자신고에 한해서 품질검사는 무상이다. 이와 함께 의심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석유관리원 소비자신고센터(1588-5166)에 연락해달라"고 말했다. 

석유제품은 라벨이나 설명이 달려있지 않아 진위여부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도 했다. 김 대리는 "석유제품은 빵처럼 제품 뒷면에 정보가 표기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정량인지 혹은 정상인지도 알 길이 없다"면서 "100% 신뢰하면서 사는 구조이고, 반대로 말하면 속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정적인 위치에서 주유를 하시는 분은 한번쯤은 점검해 보셨으면 한다. 석유관리원과 국민이 같이 뛰어야 가짜석유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천=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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